박 석 주 덕진면 운암리生 전 농협중앙회 영암군지부장 전 영암군농협쌀조합법인 대표이사 농우바이오 이사·감사위원장

지난 7월 말 둘째 딸 가족이 미국 시애틀에 터를 잡아 살고 있어서 여름 한 달을 함께 지내기 위해 출국했다. “커피의 도시 시애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낯선 기내방송을 들으며 열 시간 비행 끝에 무사히 도착했다. 공항에는 사람들이 넘쳐 나 입국 수속에만 세 시간이 걸려 겨우 딸과 외손자를 반갑게 만날 수 있었다. 인천공항의 재빠름에 익숙한 탓에 그들의 늑장 서비스가 한심하고 부아도 났지만, 나 이외에는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이것이 미국의 문화구나!”라는 생각이 미치자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공항에서 딸의 집까지는 한 시간 거리이다. 고속도로를 달려 집에 오는 도중 도심을 지날 때 잠시 고층건물이 눈에 띌 뿐 주택과 상가는 대부분 목조 단층 판잣집이다. 내륙 깊숙이 파고든 항구에는 컨테이너 선박이 줄을 서고 좁은 만(灣)에는 호화요트들이 빼곡히 정박해 있는 모습을 보고서야 내가 서울을 벗어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딸네 집 앞 산책길을 20분만 걸으면 이내 끝없는 바닷가에 이른다. 또한 두 시간만 교외로 달리면 만년설로 뒤덮인 3천 미터를 넘는 로키산맥 영봉들이 시야를 가린다.

인구 70만의 도시, 시애틀은 요즈음 ‘작은 도시, 큰 기업’의 신화를 이룬 기적의 땅이라 불리며, 세계인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위치상 미국 서부의 최북단으로, 캐나다의 밴쿠버와 인접한 워싱턴 주의 주도(州都)일뿐 아니라, 스타벅스 커피와 아마존, MS, 보잉 항공기 회사 등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의 본사가 자리한 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미국 경제잡지 포천(fortune)이 정한 500대 기업 중 무려 31개사의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나아가 1만여 개의 첨단 IT 기업에 20만 명이 일하고 있으며 소프트웨어 인력이 10만 명이나 되어 미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도시이다. 또한 자연재해가 없어 미국 내에서 살기 좋은 도시 순위 5위 안에 든다. 일자리가 많다 보니 계속적으로 젊은 인구가 유입되고, 천혜의 자연환경과 산업시설이 관광자원아 되어 관광객이 늘어난다니 이 또한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시애틀의 ‘작은 도시, 큰 기업’ 신화는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처음은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무로 비행기를 만들던 1900년대 초 보잉은 산림자원이 풍부한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고 한다. 또한 1970년대 스타벅스와 MS가 입지하면서 세계가 주목하는 역동적인 창조도시로 도약하였다. 1990년대에는 인터넷 공룡 유통업체 아마존의 설립으로 그 신화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기업융성의 바탕은 무엇일까? 도심지에 있는 스타벅스 제1호점의 매장에 들어서면서 “어떻게 이 좁은 공간에서 세계를 향한 꿈을 이루어 낼 수 있었을까?” MS 본사의 초고층 빌딩 군(群)을 바라보며 “윈도우 성공신화의 핵심인 그 창의적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왔을까?”
여행 내내, 그리고 귀국한 뒤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이었다.

그 해답을 <작은 도시, 큰 기업>의 저자 모종린 교수는 ‘시민들의 문화’라고 말한다. 시애틀의 스타벅스 등 도시와 초일류기업의 관계를 분석하면서 “성공신화의 핵심은 결국 창의적 아이디어가 사업화되고, 세계적 기업이 되도록 뒷받침하는 문화와 산업 생태계에 달려있다”라고 말한다. 결국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을 존중하는 ‘시민문화’가 핵심이다. 그는 “아이디어의 사업화나 성장을 위해서는 시민들의 작은 일상에서부터 끊임없는 혁신을 추구하는 법 제도나 시민의식이라는 문화적 인프라가 성숙한 곳이 바로 시애틀이다”라고 강조한다. 나 또한 한 달간의 시애틀 여행에서 시장경제와 기업존중 마인드가 지역발전에 가장 절실한 성공 요소임을 깨닫게 되었다.

문화와 산업 생태계의 혁신을 추구하고 창의적인 인재를 기르기 위한 교육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우리 기성세대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시장경제와 기업의 창의적인 발전은 지역발전과 국가발전의 초석이다.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기업의 유치와 발전에 너나없이 모두 지혜와 힘을 모을 때이다.

오늘도 시애틀의 공원에는 아이들이 방과 후에 잔디구장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각종 운동을 맘껏 즐기고, 박물관과 생태공원에는 부모와 함께하는 어린이들로 늘 붐비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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