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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전투
신 중 재

덕진면 노송리 송외마을生
전 광주시교육청 장학사
전 광주 서광초등학교 교장
한국전쟁피해자유족 영암군회장

반일감정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자고 나면 새로운 뉴스에 신경이 곤두선다. 걱정스럽다. 한일전 스포츠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승리하게 되면 그 쾌감이 배가되지만 패하면 분노는 한층 더 심해진다. 하물며 일본은 지금 경제전쟁을 일으켜 한일경제 질서를 무너트리려고 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반일 정서에 불을 붙인 격이 되었다. 만나는 사람마다의 대화꺼리는 당연히 얄밉고 무례한 일본인들이다. 총리 아베를 욕하며 ‘사지도 말고, 가지도 말자.’ 한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자며 불편했던 역사적 사실들의 글이 생산되어 배달된다.

요즈음 항일 관련, 영화 관람객 수를 살펴보니, 1위에 1천270만명 ‘암살’, 750만명 ‘밀정’이 이끌어 냈다. 659만명이 본 영화 ‘군함도’를 관람하고 나서 일본은 더욱 용서할 수 없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엊그제는 ‘항거 유관순 이야기’를 너무 리얼하게 보면서 내 마음속에서 지독한 일본인들이 더 미워졌다. 그러던 차, 시기적절하게 개봉한 ‘봉오동 전투’를 아내와 관람하고 가슴에 걸린 체증이 내린 듯 후련했다.

이 영화는 ‘봉오동 전투’의 승전내용을 주로 다뤘으나 본고에서는 전후 상황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조금 더 살펴보려고 한다. 1919년 3·1운동 이후 우리 민족의 항일투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특히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조직된 독립군은 일본군을 끊임없이 공격해 커다란 피해를 입혔다. 그들 기개는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유고문(大韓獨立軍諭告文)에서 다음과 같이 천명한 바 있다.

“당당한 독립군으로 몸을 포연탄비중(砲煙彈雨中:자욱한 총포의 연기와 빗발치는 탄환)에 던져 반만년 역사를 광영되게 하며 국토를 회복하여 자손만대에 행복을 줌이 우리 독립군의 목표요, 또한 민족을 위하는 본의(本意)다.”

이러한 항전의식과 민족의식만으로 독립전쟁이 수행되는 것이 아니었다. 첫째, 많은 무기와 병참을 조달하는 일이었다. 독립군의 무기는 체코군 무기, 러시아제 5연발 군총, 단발총, 미국제, 일본소총, 중무기, 기관총, 속사포, 총알 등 고가를 지불하고 구입하였다. 당시 연해주와 남북만주의 한인사회와 국내 동포가 군자금을 헌납한 민족의 혈세였다. 더욱이 독립군의 무기 확보보다 시베리아에서 구입해 서북간도의 독립군 진영까지 운반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중·소의 엄중한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뇌물로 관헌을 매수해 죽음을 무릅쓴 운반 작전의 전개였다. 둘째, 독립군의 전투력 향상을 위해 피나는 훈련이 필요했다. 셋째, 독립군의 효율적인 항일전 수행을 위하여 여러 곳에서 각기 편대로 조직된 군사통일을 추진하는 일이었다. 막강한 일제 침략군과 독립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각 독립군간 연합작전과 완전한 통합항전이 절실한 과제였다.

독립군은 1920년 6월 4일 새벽, 두만강을 넘어 일본의 헌병순찰대를 공격했다. 이에 일본군은 독립군을 추격하면서 두만강을 넘어 삼둔자(三屯子)까지 들어와 그곳에 사는 어린이부터 노인, 부녀자들까지 한인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집을 전부 불태워 마을을 모두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죄 없는 그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렇게 무참히 죽여 도저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독립군은 이때 침입한 일본군을 잠복·공격하여 커다란 타격을 입힌다.

삼둔자 전투로 위기를 느낀 일본군은 독립군을 공격하여 섬멸할 계획을 세우고 6월 7일 새벽 3시 30분, 두만강을 넘어 독립군의 근거지가 있는 봉오동을 일거에 공격하고자 작전명령을 내린다. 일본군의 대대적인 공격이 있을 것을 예상한 홍범도 장군은 자신이 이끄는 대한독립군 뿐만 아니라 최진동의 군무도독부, 안무의 국민회군 등과 함께 연합부대를 만든다. 이윽고 일본군이 두만강을 넘어 대대적으로 공격해 온다. 독립군 부대는 봉오동 주민들을 모두 대피시키고, 일본군을 사면이 야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삿갓을 뒤집어놓은 것과 같은 지형으로 된 천연 요새지이며, 입구로부터 25리 떨어졌고, 하·중·상동의 마을이 30∼60호씩 모여 있던 곳을 은밀히 잘 이용한다. 독립군은 겁 없이 덤벼드는 일본군을 봉오동 골짜기로 끌어들여 기습적으로 공격하기 위해서 치밀하고 기발한 작전계획을 신중하게 논의한다. 쉽게 유인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공격과 후퇴를 거듭하면서 속임수를 쓴다. 사자가 연약한 사슴을 쫓듯이 좌우도 살피지 않고 그들은 맹추격해 온다.

잡힐 듯 말 듯, 산세의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신출귀몰하게 약을 올리며 독립군들이 매복해 있는 산골짜기 중앙의 사정권 안으로 유인하는데 성공한다. 공격하기 좋은 좁은 골짜기에 갇힌 신세가 된 일본군들은 공격을 받기 시작하면서 사방을 둘러보니 산꼭대기에 포진하여 공격해오는 포탄과 총알을 피할 수가 없어 속았다는 생각을 할 때는 함성과 함께 산천을 무너뜨릴 기세로 원한의 총을 쏘아대니 속수무책으로 갈기갈기 찢겨지고 쓰러져 죽어가는 모습이 정말 통쾌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157명이 사망하였고, 중상자 200여 명, 경상자 100여 명에 달했다. 반면, 독립군은 4명이 전사했고, 중상자 2명 생기는데 그쳤다.

일본군은 독립군을 오합지졸일 것이라고 얕잡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를 빼앗겼고 부모형제까지 잃은 필사의 투사들이었다. 잘 훈련된 애국지사들을 어찌 오랑캐 일본군들이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결국, 일본군에게 충격을 준 봉오동 전투는 ‘독립전쟁’을 감행하여 일제 수난을 극복하려는 독립군에게 큰 광영을 던져 주었다. 지휘관 홍범도는 ‘한일합방’ 전후, 독립군의 명장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벌인 선조들 항일의 피가 우리 몸에 흐르고 있다. 지금 일본과의 경제전쟁을 어떻게든지 이겨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때보다는 지금이 더 어렵지 않다고 본다. 우리 국민들 모두는 슬기로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다음 세대에 부끄럽지 않게 말이다. 정치가들은 말을 함부로 하여 국론을 흩트려서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며,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나라에 해가 되는 언행을 하면 앞으로 역사의 준엄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신중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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