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낭주골
2,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구림마을과 ‘회사정’
서 일 환

서호면 산골정마을 生
전 광주우리들병원 행정원장
광주전남의료발전협의회장
상무힐링재활병원 행정원장

영암군 군서면의 비둘기 숲에 깃든 공동체라고 하는 ‘구림(鳩林) 마을’과 나주시 노안면의 숲이 우거져 새의 낙원이라 불리는 금안동(禽安洞) 마을, 정읍시 칠보면의 유교와 선비문화가 살아 숨쉬는 ‘무성(武城) 마을’ 등은 호남 3대 명촌(名村)으로 손꼽힌다. 명촌은 풍수적으로 산과 물이 좋은 곳으로 사람이 살기 좋아 인물이 많이 배출된 곳을 말한다.

월출산 기슭에서 빨래를 하던 처녀가 떠내려 오던 오이를 먹고 임신을 하였다. 처녀가 아이를 낳자 부모는 부끄러워 국사봉 갈대밭에 아이를 버렸다. 다음날 비둘기 떼가 품고 있던 아이를 데리고 와서 길렀다. 아이가 열두 살 무렵 출가하여 도선국사가 되었다는 전설로 인해 비둘기 구(鳩)자와 수풀 림(林)자를 써서 구림이라고 한다. 구림마을에서 왕인박사, 도선국사, 최지몽, 최경창 등 많은 인물이 배출됐다.

왕인박사는 논어(論語) 10권과 천자문(千字文) 1권을 가지고 왜국에 건너가서 아스카 문화의 시조가 되었다. 도선국사는 신라 말과 고려 초의 풍수지리설의 대가로 태조 왕건의 탄생을 예언했다. 최지몽은 삼한의 통일을 예지했고 고려의 개국공신으로 63년 동안 여섯 임금을 섬겼다. 최경창은 조선의 삼당시인이자 조선의 8문장으로 홍랑과의 아름다운 사랑을 남겼다.

삼도순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이 구림마을 출신의 현덕승에게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를 보냈다. 한석봉이 스승 신희남을 따라와 구림마을 죽림정사에서 글을 배워 조선 최고의 명필이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는 영암으로 유배 와서 1년 만에 풀려났다.

구림마을 뒤쪽에 있는 월출산은 호남의 소금강이라고 하며 20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국보 제13호 무위사 극락보전, 국보 제50호 도갑사 해탈문, 국보 제144호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최초의 한문소설을 지은 매월당 김시습은 ‘남쪽 고을의 한 그림 가운데 산이 있으니, 달은 청천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 오르더라.’라고 월출산을 극찬했다. 구림마을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도자기에 유약을 바른 시유도기를 생산했다.

구림 대동계는 1565년에 박규정, 임구령 등이 발의하여 어려운 일이 있으면 힘을 합치고, 규약을 어기면 훈계하고, 향약을 보급하기 위한 동계(洞契)로 시작됐다. 임진왜란으로 미풍양속이 문란해지자 향촌민을 결속하기 위해 다시 복구했다. 박규정은 구림 대동계의 창설의 주역이며 식년시에 급제하였으나 출사를 거부하고 은둔했다. 임구령은 광주목사를 역임했고 임억령의 동생이자 최경창의 장인이다.

구림마을의 회사정(會社亭)은 향약을 실천할 목적으로 조직된 구림 대동계의 집회 장소로 창건됐다. 회사정은 조선 인조 때인 1646년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건립했다. 회사정은 1919년 4월 10일 항일 독립운동이 벌어진 곳이다.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어 주춧돌만 남았으나 1986년 복원했다.

구림의 회사정은 덕진의 영보정, 장암의 장암정과 함께 영암의 대표적 향약 집회소이다. 구림 회사정은 광주광역시 관광협회에서 화순 물염정, 담양 식영정, 완도 세연정, 나주 영모정, 광주 호가정, 곡성 함허정, 장흥 부춘정과 더불어 유서 깊은 8대 정자로 선정했다.

서일환  @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