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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신 중 재

덕진면 노송리 송외마을生
전 광주시교육청 장학사
전 광주 서광초등학교 교장
한국전쟁피해자유족 영암군회장

고등학생 때, 내 별명이 촘베였다. 얼마나 얼굴이 검었으면 콩고의 흑인정치가 이름이 붙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정도로 검은 얼굴은 아니었지만 별칭이라서 피부색이 조금 검어 과장되게 빗댔던 것 같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농장 실습지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축사에 짐승들을 돌보느라 머슴살이처럼 농사일을 하며 학비감면을 받았기에 다른 친구들보다 얼굴이 검을 수밖에 없었다. 가정에서도 얼마 안 되는 농토로 소농(小農)이었으나 연로하신 조부모님과 어머님의 몫으로는 농사일이 버거우셨기에 휴일이면 내 손길을 필요로 했다. 그때마다 농장에서 쏟아지는 자외선은 내 얼굴을 더욱 검게 태웠던 것 같다.

교직 햇병아리 시절, 너무 어린 나이이어서 좀 더 나이 들게 보이려고 포마드 기름을 머리에 바르고 머리칼을 뒤로 넘겼다. 남보다 넓은 이마에 까만 얼굴이 어른스러워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두 번째 발령지는 영암군에 인접한 6학급 규모의 G초등학교이었다. 그 학교에서 가까운 Y마을에서 하숙을 하고 있을 때, 유일한 총각선생이라서 아가씨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것 같다. 제랑(弟郞)이라도 삼고 싶었던지 그녀의 언니는 광주에서 공부하고 있는 동생이 집에 내려오니 “학교에 가서 6학년 까무잡잡한 선생님의 얼굴이나 한 번 훔쳐보고 오너라.”라고 권했던 것 같다.

그녀는 호기심에 교실 안에서 수업하고 있는 나의 얼굴을 처음 보았는데 도저히 맘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20대 젊은 총각선생님의 얼굴이 왜 저렇게 검을 수 있을까? 언니의 호의적인 선전이 틀렸다.’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단다. 그 이듬해 그녀 여동생을 담임하게 되어 학예발표회 하던 날, 나는 그녀 얼굴을 처음 보았다. ‘저 정도의 얼굴을 지닌 여인이라면 장래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호감을 가지고 마음에 두었다. ‘내 짝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불우한 가정환경에 우울한 젊은 날을 보내고 있어 늘 그늘지고 검기까지 한 얼굴을 지녔지만, 그녀는 가정이 부유하고 많은 형제간들 틈 속에서 자라서 늘 명랑하고 밝은 얼굴을 지녀서 내가 더 호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 내 마음이 얼굴에 나타났는지 편지가 오가고 월출산 자락이 데이트 장소를 제공해준 은덕으로 까만 내 얼굴과는 상관없이 3년의 세월은 서로 마음을 여는 사랑의 끈이 우리를 부부로 만들었다.

연분의 고리는 자식 넷, 기르고 가르쳐 필혼시킨 세월이 강산을 다섯 번이나 변화시켰다. 그 곱던 아내의 얼굴에 잔주름을 선물했고, 나도 희끗희끗해진 머리 깔과 얼굴의 잔주름이 늘어만 간다. 삶의 아름다운 계급장이러니 한다. 이따금 머리 염색 부탁을 하면 “반백의 노인이 더 멋있던데요.”라며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리는 아내가 고맙기 그지없다.

요즈음 검찰청 현관 저지선에 걸음을 멈추고 서서 사진기자들의 카메라 앞에 얼굴을 추켜든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된다. 하나 같이 준수하고 잘 생긴 얼굴들이다. 당당하게 서서 플래시를 받는 얼굴들, 수억 내지 수백 억 짜리 얼굴들이다. 배임, 횡령, 알선수뢰, 그런 범죄형의 얼굴이 내 눈에는 그저 당당한 지도자의 얼굴로만 보일 뿐이다. 그들이 거기서 비열함을 애써 감추고 떳떳한 체 플래시를 받고 서 있는 동안 나는 그들의 혐의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나라 최고의 정치인과 한 여인, 젊은 시절 미소 띤 밝은 얼굴과 웃는 얼굴은 참 귀엽고 예뻤던 것 같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그들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 알 수가 없다. 순수하고 착하게 욕심 부리지 않고 살았으면 얼마나 곱게 늙어갈까…,

아브라함 링컨은 ‘사람은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진실하게 살아 보려고 한결 같이 노력한 사람의 얼굴에는 분명 진실한 표정이 깃들 것이다. ‘인간의 얼굴은 그가 가지고 있는 덕의 일부다.’라고 미국 여류작가 올코트가 말했다. 얼굴은 그 사람 과거 생활사와 정신의 기록이며 역사라고 본다. 삶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도 모두 내 작품이며 천사의 얼굴을 짓게 하고 악마의 얼굴을 짓게 하는 것도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본다. 천국은 네 마음속에 있다고 예수님은 갈파하지 않았던가.

남에게 비춰진 내 얼굴은 어떤 얼굴이었는지, 내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은 거울이 아니라 내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난 무수한 사람들 앞에 비춰진 내 얼굴은 어떻게 보였을지, 내 얼굴이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여 주었는지, 거짓되고 악독하게 보였는지, 한 번 더듬어 보아야겠다. 아름다운 마음가짐 없이 아름다운 얼굴은 없을 것이다. 진실하고 착한 고운 마음이 아름다운 얼굴을 만들지 않을까 한다.

내 이웃이 내 얼굴에서 화평을 찾아 기쁘고 즐거움을 맛볼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며 살고 싶다.

신중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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