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중 재 덕진면 노송리 송외마을生 전 광주시교육청 장학사 전 광주 서광초등학교 교장 한국전쟁피해자유족 영암군회장

칠순잔치를 자식들이 계획했다. 구정연휴가 끼어 차례 지내기 전에 돌아올 수 있는 5박6일 태국 파타야 가족여행 코스였다. 이 나라는 프로 골퍼인 작은 딸이 전지훈련을 자주 다녔던 곳이라 지리에 밝고 통역이 가능하여 자유여행을 진행하였다. 무안공항에서 태국 방콕으로 가는 J항공기에 저녁 9시 탑승했다. 고도가 높아지니 기류 영향으로 움직임이 심해 불안했으나 6시간 동안 어두움을 뚫고 무사히 비행해 방콕공항에 도착하니 새벽이었다. 개인택시로 2시간 고속도로를 달리니 파타야 숙소가 나왔다.

불교 유산과 야자수 나무, 볼거리, 먹을거리들이 풍부하여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관광객이 북적였다. 생동감 넘치는 도시였다. 우리나라는 아직 겨울이지만 이곳 기후는 조금 더울 정도였다. 조용하고 깨끗한 넓은 방이 쾌적하여 심신이 편안했다. 관리인들은 미소로 인사하고 아주 친절했다. 맑은 물이 수영장에 계속 공급되고 인공폭포의 고운 물소리는 물속에 몸을 담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죽이 척척 맞는 자식들은 이른 아침부터 골프장으로 향하느라 부산했다. 우리 부부는 끈 떨어진 연처럼 조금은 불안했으나 우리만을 태운 한국인 개인택시 기사가 안내하니 시간에 쫓기지 않고 마음이 한가롭고 안정되어 편안한 시간이 되었다.

처음으로 찾은 곳은 농눅 빌리지였다. 세계 10대 정원으로 선정될 만큼 인정받는단다. 큰 규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코끼리 트레킹도 했다. 육중한 코끼리 등에서 무게 중심이 움직일 때마다 허리가 휘청거리고 세 사람을 태운 코끼리가 안쓰러웠으나 작업이 끝나고 맛있는 먹이를 얻어먹기 위한 노력이겠지? 주위환경이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다음 코스는 태국전통 의상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그들만의 특유한 음악에 춤추는 몸놀림은 세계 최상이라고나 할까? 코끼리 재롱 쇼에서는 조련사가 잘 훈련시킨 코끼리 농구, 축구, 코에 안기는 사람들, 팁까지도 챙기고 인사하는 코끼리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재미있는 이틀의 시간을 보내고 태국에서만이 맛볼 수 있는 바닷가 맛 집에서 그들의 향이 배어난 음식들과 생맥주 한 통이 주문되었다. “우리 식구들이 저걸 어떻게 다 마실 수 있을까?” 식사가 끝날 때는 자식들의 주량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 날에는 태국전통 마사지를 받고 몸을 풀었다. 2시간 동안의 손놀림에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뿐했다. ‘연약한 여인네의 손가락 힘이 그렇게 셀까? 맥을 짚어 주무르니 뭉친 혈이 풀려 시원할까?’ 저녁은 한인촌에서 된장국에 한식과 삼겹살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난생처음 나이트클럽을 따라 나섰다. 주위를 살펴보니 내 또래의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젊은이들 틈에 끼어 담배 연기가 자욱했지만 음악에 취한 건지 술에 취한 건지 덩실덩실 춤까지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둘째 딸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아빠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받으실 것입니다.” ‘생일기념 팡파레가 울려 퍼지려나?’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출입문 쪽을 얼핏 쳐다보니 여행을 함께하지 못했던 장남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이지 않는가? 내 눈을 의심했고, 아내는 술이 취해서 헛것이 보인 모양이라고 했다.

“작은 누나가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며, 아빠에게 바치는 귀한 선물이 되어 달라는 청을 거절하지 못해 구정 전에 처리해야 할 회사 일을 급히 마무리하고 극비리에 날아 온 것이 13시간이나 걸리네요.”

우리 식구들은 세상을 다 얻은 듯이 기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었다. 이국인들이 부르는 노래와 춤은 우리 식구들을 축하해 주는 것 같은 착각을 했다. 우리 가족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옆 테이블의 중국인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는 손가락 없다더니, 4남매에서 장남이 빠진 여행은 김빠진 맥주처럼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고 아쉬웠는데….

술자리가 끝나고 숙소에 돌아오니 새벽이었다. 달리는 기차가 멈추지 않고 달리듯이 식지 않는 기쁜 기분이 다시 연장되었다. 식구들은 준비해 온 노래방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고 모두 막춤을 추며 갖가지 쇼를 했다. 이튿날 동영상 파일을 살피니 배꼽 빼는 코미디 쇼가 따로 없었다. ‘얌전했던 내 자식들이 어찌 이런 끼를 발휘했단 말인가?’ 정말 놀랬다.

장남이 참여한 남은 일정에 밤의 엄청난 반전이 있는 알카자쇼, 게이 바 ‘환락의 메카’라고 할 수 있어 다른 곳에서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신선한 문화충격을 받게 되었다. 산호섬을 향하면서 부둣가에서의 페러세일링은 내 나이 70, 배에 묶인 낙하산을 타고 공중을 날아보는 아찔한 순간의 스릴과 쾌감, 제트 보트를 운전해 속도감도 맛보았다. 유리알같이 고운 모래, 에메날드 빛의 맑고 청정한 바다에서의 해수욕은 내 생애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1967년도에 방영한 ‘팔도강산’ 영화 한 장면이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 했다. 나의 칠순잔치처럼 노부부가 회갑을 맞아 팔도에 사는 자식들을 찾는다. 속초에 사는 딸집에서 막걸리 살돈이 부족한 딸과 사위는 아버지 주량에 맞추어 물을 따서 대접하는 장면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딸도 몰래 울고, 노부부도 딸 내외가 부엌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안쓰러워 울었다.
회갑연 당일에는 그 사위가 막걸리 두 병과 배를 한 척 산 계약서를 들고 행사장에 들어와서 장인께 인사하고, 막걸리를 대접한다.

“그 때 막걸리에 탄 물은 정성을 탔기에 오늘 사온 이 막걸리보다 훨씬 더 꿀맛이었다.” 
최희준의 팔도강산 노래 가락이 귓전에 맴돌며 내 마음을 전한다. ‘잘 살고 못 사는 게 마음먹기 달렸더라.’ 사랑하는 내 자식들아! 현재 삶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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