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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리 암각매향명과 구림마을 정원명석비
서 일 환

서호면 산골정마을 生
전 광주우리들병원 행정원장
광주전남의료발전협의회 회장
상무힐링재활병원 행정원장

‘전설 따라 삼천리’에 서호면 엄길리 철암산(鐵岩山) ‘글자바우’ 전설이 소개됐다. 백제의 왕인박사가 군서면 구림마을 상대포(上臺浦)를 떠나 왜국으로 가던 도중 마지막으로 고향을 돌아보며 철암산 글자바우에 글을 남기고 떠났다는 전설이다. ‘전설 따라 삼천리’는 1965년부터 1983년까지 18년 동안 우리나라 각지의 풍습과 전설을 발굴하여 소개한 문화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백제 근초고왕은 아직기(阿直岐)를 통해 말 2필을 왜국 오진왕(應神王)에게 선물했다. 아직기가 백제로 돌아오자 왜왕이 학덕이 높은 학자를 요구했다. 구림마을 출신인 왕인(王仁)이 추천되어 논어(論語) 10권과 천자문(千字文) 1권을 가지고 왜국으로 건너갔다. 왕인은 왜국 오진왕의 태자인 토도치랑자(兎道稚郎子)의 스승이 되어 백제의 문화를 전수하여 오스카문화의 시조가 되었다.

왕인이 일본으로 떠나면서 철암산 ‘글자바우’에 남겼다는 문자는 1344년 고려 충혜왕 때 음각한 ‘매향명(埋香銘)’으로 밝혀졌다. 매향명은 매향의식을 비석이나 바위에 새겨 놓은 것을 말하며 ‘매향비(埋香碑)’라고도 한다. 매향은 계곡에서 내려오는 육수(陸水)와 바다에서 올라오는 해수(海水)가 만나는 곳에 내세에 미륵불의 세계에 태어날 것을 염원하며 향나무를 땅에 묻고 글자를 새기는 미륵신앙이다. 매향의식은 바닷가 사람들이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고 왜구들의 침입으로부터 안녕을 기원하는 풍습으로 전해진다.

엄길리 암각매향명(奄吉里 岩刻埋香銘)은 비석이 아닌 자연암반에 좌측에서 우측으로 총 21행 129자가 음각(陰刻)되어 있다. 보존상태가 좋아 일부 몇 자를 제외하고 대부분 판독이 가능하다. 명문(銘文)에 매향의 시기와 목적은 물론 발원자와 화주까지 가록되어 있어 고려시대의 매향풍속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엄길리 암각매향명은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아 보물 제1309호로 지정됐다.

1965년 도로확장 과정에서 구림마을 상대포 인근 논 속에 묻혀 있던 기둥 모양의 자연석에 글자를 새긴 매향비를 발견했다. 당나라 연호인 정원(貞元)이라는 글자가 있어 구림 정원명석비(鳩林 貞元銘石碑)라고 한다. 4행 44자의 글자는 마모가 심해 완전한 판독은 어렵지만 ‘정원(貞元) 2년 병인’을 판독한 결과 786년 통일신라시대 원성왕 2년에 세워진 것으로 밝혀졌다. 전남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매향에 관한 매향비로 기록됐다.

2,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군서면 구림마을은 ‘두 마리의 용이 품은 마을’이라 하여 명당 중에 명당으로 손꼽힌다. 풍수지리설의 비조이자 고려의 정신적 지주인 도선국사가 탄생하여 왕건의 탄생을 예언했다. 천문과 복서의 대가이자 고려의 개국공신인 최지몽이 태어나서 왕건의 후삼국 통일을 예언했다. 청백리이자 삼당시인 최경창이 태어나서 홍랑과 아름다운 사랑을 하였다. ‘격황소서’(檄黃巢書)를 지은 신라의 문장가인 최치원과 후백제 견훤의 책사인 최승우가 상대포에서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구림마을과 엄길리 사이에 위치한 상대포는 월출산을 뒤로 하고 영산강을 앞으로 하는 배산임수의 지형으로 신라시대 국제항구로 이름을 떨쳤다. 상대포는 우리나라 최초로 유약을 바른 시유도기(施釉陶器)가 생산된 곳으로 10여 개의 가마터가 발견됐다. 상대포는 현준호가 일제 강점기에 진행한 학파농장 간척사업으로 인해 옛 포구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우리는 문화재의 보고이자 역사의 박물관인 서호면 엄길리와 군서면 구림마을을 지키고 보존해야 한다.

서일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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