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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밥상머리 교육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이 있었고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 있었습니다.(중략)

고기반찬 가득 찬 저녁 밥상머리에
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
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반찬이 없으니
인생에는 재미라는 영양가치가 없
습니다.

박 석 주

덕진면 운암리生
전 농협중앙회 영암군지부장
전 서울공판장장
전 영암군농협쌀조합법인 대표이사
농우바이오 사외이사

공광규 시인의 ‘얼굴 반찬’이라는 시다. 이 시는 돈과 경쟁으로 요약되는 자본주의가 결국에는 핵가족화를 넘어 가족의 해체를 낳았다는 현실을 잘 묘사하고 있다. 부모들은 흩어져 돈 벌이에 나서고, 자녀들은 진학이나 취업준비 등으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원을 분주하게 오간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끼리 서로 얼굴 대하기가 힘든 상황을 시인은 글로 풍자한 것이다.

최근에 발표된 여러 연구결과는 가족과의 식사가 단순히 배만 채우는 자리가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에서는 아이들이 책을 읽을 때보다 10배 가까운 어휘를 가족과 식사하면서 배운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옥시토신이라는 행복 호르몬은 가족과 함께하는 식탁에 있을 때 가장 많이 분비된다는 사실도 증명되었다. 식사횟수는 흡연과 음주 및 마약 경험율과 반비례한다는 컬럼비아대학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핵가족을 피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오죽하면 ‘기러기 아빠’ ‘갈매기 아빠’ ‘나 홀로 지방에’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을까.

‘격대교육(隔代敎育)’이란 말이 있다. 대가족을 이룬 전통사회에서 육아와 훈육을 생업과 가사에서 물러앉은 조부모가 맡는다는 뜻이다. 조부모는 한 세대를 건너뛰는 관계인만큼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감정표출 대신에 느긋하고 절제된 자세로 손자를 대한다. 격대교육의 장점이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이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은거하며 손자를 직접 가르친 이야기며, 한양에 올라와서도 16년 동안 150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잘한 일은 칭찬하고, 잘못됨에 대하여는 추상같이 꾸짖은 일화는 격대교육의 좋은 사례라 하겠다.

할아버지의 교육과 관련된 필자의 어릴 적 일화다. 필자는 예닐곱 살 때까지 할아버지의 사랑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식사도 늘 할아버지와 함께 했다. 그때 식사시간에 무릎을 꿇고 앉는 자세나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드신 후에라야 음식을 먹는 등의 예절을 배웠다. 특히 밖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할 때는 남을 흉보거나 욕지거리를 입에 담지 말라고 늘 당부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농한기가 되면 사랑방에 서당을 열어 주변 마을에서 청년들을 모아 한학을 가르치셨다. 어느 날 필자는 친구들과 노는데 정신이 팔려 공부시간에 늦은 일이 있었다. 천자문을 공부하는데, 생각이 노는 곳에만 팔린 나는 ‘신령 령(靈)’자를 ‘신념 념’이라 발음했다. 할아버지께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으며 눈물콧물을 흘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난 2008년, 영암군은 천(千)명의 국내외 인사들이 한 글자씩 쓴 붓글씨를 모아 월출산 기슭 왕인공원에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 조형물을 세웠다. 그때 나에게 배정된 글자가 ‘신령 령(靈)’자가 아닌가?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천분의 일 확률로 하늘나라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가르침을 주신 글자를 배정받다니, 할아버지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에 다시 한 번 가슴이 뭉클했다. 물론 그 뒤로도 갖가지 기회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가장 큰 가르침은 할아버지의 밥상머리 교육이었다는 점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은 평생 갈 것 같다.

요즘 필자부부는 맞벌이 하는 딸을 위해 두 살배기 손자를 돌보고 있다. 아내의 고생은 말할 것도 없고, 필자 또한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는 게 사실이다. 그 대신 귀여운 손자의 말과 재롱에 우리 집은 언제나 웃음꽃이 넘쳐난다. 자식들 기를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육아(育兒)에 조금은 무관심했었다. 그러나 손자를 키우다 보니 사랑이 샘솟는다. 그래서 기쁘고, 정성을 들여 아이를 보살피게 된다.

한편, 그 일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하루는 손자와 장난감을 정리하며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바구니에 인형 하나를 던져 넣었다. 그 뒤로는 손자 녀석이 내 행동을 본받았는지 던지지 않아야 할 물건도 마구 던지는 바람에 행동을 고쳐 주느라 애를 먹었다. “애들은 보는 대로 배우는 것을 잊으셨어요?”라는 딸의 핀잔도 달게 받아야 했다. 손자들을 정성으로 돌보다 보니 보람도 있다.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겠지만, 어린이집 선생님이 “손자가 또래 아이들보다 말을 조리있게 잘하고 다른 원아들을 배려하는 마음도 깊어요”라고 칭찬하니 마음 뿌듯했다.

대가족 제도 속에서 과거의 교육이 ‘주입과 회초리’였다면 지금의 교육은 ‘소통과 사랑’이다. 그러니 여러 사정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살더라도 가족의 생일이나 기념일만큼은 함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식사만큼은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원칙을 세우면 더욱 좋겠다. 함께 한 ‘얼굴밥상’은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인생의 재미와 의미가 넘치는 영양가 높은 밥상이 될 것이다. 만약 조부모와 손자손녀가 함께 사는 경우라면 그 식탁의 의미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독자가 할아버지, 할머니시라면 오늘 바로 떨어져 지내는 손자손녀와 영상통화 한 번, SNS를 통한 메시지라도 주고받아 보자.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가 사랑을 나누어 주는 법을 안다.

박석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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