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ㆍ스포츠 역사ㆍ인물
'호남의병 역사공원'
영암에 조성돼야
도, 13억 투입 33만㎡ 역사공원 추진
'의절의 고장 영암' 사업 대상지 최적
영보정 농민항일운동 등 전국서 주목
최초의 여성 의병장 양방매 배출도
구림 3ㆍ1운동 기념탑 해마다 3ㆍ1절에는 구림 청년계원들이 주관이 돼 구림 3ㆍ1운동 기념탑 앞에서 1919년 당시 만세운동을 했던 선배들을 기리며 독립선언문 낭독과 만세삼창 그리고 만세 행렬을 재현하고 있다.

전남도가 호남 의병의 구국 충혼을 기리고 의병 역사를 정립하기 위한 ‘호남의병 역사공원’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그 사업 대상지로 영암군이 최적지로 꼽히고 있다.

전남도는 최근 김영록 전남지사가 의병들의 충혼을 기리고 교육·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호남의병 역사공원을 조성하라는 특별 지시에 따라 올해 1억원을 들여 ‘호남의병 역사공원 기본계획 연구용역을 실시키로 했다. 연내에 용역을 마무리하고 내년 실시설계에 들어갈 예정이며 소요예산 13억원은 2020년 국고 지원을 건의할 방침이다.

호남의병 역사공원은 33만㎡ 부지에 건물 연면적 1만 6천500㎡ 내외로 기념관·전시실·테마파크·상징조형물·학예실·교육관·편의와 놀이시설 등이 들어선다.

사업 대상지는 역사적 상징성·접근성·부지 확보와 개발 용이성·주변 관광지와 연계성 등 다양하고 객관적인 평가지표를 용역으로 확정하고 시·군 공모를 거쳐 선정키로 했다.

전남도의 이 같은 호남의병 역사공원 구상은 임진왜란에서부터 3·1운동 이전까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의병이 외세의 침탈에 맞서 싸웠음에도 유적·사료 등의 조사·연구가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관련 유적 및 사료가 많은 영암군이 가장 적합지로 부각되고 있다.

영암역사연구회(회장 조복전)에 따르면 영암은 항일운동이 인근 어느 지역 보다 격렬했던 곳으로 정부에서 추서한 독립유공자만 40여명에 이른다.

또 한일강제 합병직전 의병전쟁은 금정면 일대를 중심으로 국내에서 최후의 격전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에서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순국했으며, 영암출신 가운데 정부가 수여하는 독립유공 훈장을 추서받은 김치홍·유시연·조치덕·정관오·양방매 등 5명이나 있다. 양방매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의병장으로 알려져 있다.

3·1운동 때는 1천여 명의 군민이 만세운동에 참여했고, 이를 주도했던 조극환 등 18명은 실형을 받고 감옥생활을 하거나 태형 등을 받았다. 영암군은 1919년 3·1운동 당시, 영암읍 오일시장 만세운동과 구림 회사정에서 일제에 맞서 만세운동을 전개한 구국 항일운동을 기념해 매년 재현행사를 벌이고 있다.

학생들의 항일운동도 매우 활발하게 전개됐다. 영암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은 3.1운동 당시 태극기 제작과 함께 “조선 국사를 가르치라”며 동맹휴학을 감행, 당시 일본인 교장이 자살했고, 광주·목포 등지의 유학생들은 성진회와 독서회를 통해 학생들의 항일의식 고취에 나섰다.

김민규, 조극환, 유혁, 한동석 김상학 등을 중심으로 한 신간회 영암지회의 활동과 비밀결사운동도 주목을 끌었다.

특히 유혁, 곽명수씨 등이 주도하여 덕진면 영보정에서 일으킨 농민항일운동은 시위대 중 100여명이 체포되고, 이 가운데 74명이 재판에 넘겨져 최고 5년까지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당시 조선·동아 등 신문에 ‘영보촌 형제봉 사건’으로 80여 차례 보도되면서 전국의 이목을 끌었다. 지난해 국가보훈처는 이 마을 출신 최병수·최동림·신용주·신용점 선생 등 6명을 독립유공자로 추서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사회주의 계열이라는 이유로 서훈에서 배제됐지만 심사기준이 달라지면서 뒤늦게 유공자가 됐다. 보훈처는 ‘사회주의 활동 참여자도 북한의 정권 수립에 기여하지 않았으면 포상한다’고 심사기준을 바꿨다. 이로써 ‘영보 형제봉 사건’ 관련 독립유공자는 모두 15명으로 늘었으나 재판에 회부된 74명 전원이 서훈을 받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단일 사건으로 서훈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사례는 독립운동사에서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동환, 최석호 등이 비밀단체인 영구회를 조직하고, 영보마을 중심으로 야학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면서 ‘처의 후회’라는 연극을 공연하는 등 항일사상을 고취하기도 했다.

낭산 김준연 선생도 1920년대 국내 항일운동의 중심적 인물로, 우리나라 사회개혁운동과 민족주의 및 사회주의운동을 전개했다.

이외에도 을묘왜변 때 의병장 양달사 형제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전몽성·몽진 형제 등도 국난극복을 위해 나라에 몸을 바친 영암의 항일투사로 잘 알려져 있다.

평생을 구한말 의병사 연구에 매달려 온 이 지역출신 향토사학자 고 신희범씨(덕진면 운암리 3구)는 생전에 “항일 의병장으로 활동한 심남일과 강무경(영암출신 국내 첫 여성 의병 양방매의 남편)의 통솔아래 수많은 영암의병들이 1908년 8월 26일, 금정면 사촌과 덕진면 영보 뒷산에서 당시 영산포에 주재 일본 헌병대장 고도 히라야마와 영암 수비대장 구쓰모토 대위 그리고 부하 수십명(약 80명 가량)을 사살한 것은 영암의 위상을 크게 드높인 일대사건이었다”며 “영암인의 기개를 전국에 떨친 8월 26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반드시 기념사업을 전개하여 후세들에게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윤호 영암농민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장은 “영보 형제봉 만세운동은 당시 전국 최대 규모의 농민독립항쟁 사건으로 150여명이 경찰에 체포 연행됐다.”면서 “단일사건으로 10명 이상이 국가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일은 드문 일이다. 영암이 항일운동의 성지로 널리 알리기 위한 기념사업이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복전 영암역사연구회장은 “영암은 예로부터 충의 예절이 바르고 영암인의 얼이 살아 있는 곳으로 인물이 많이 배출된 곳이었다”며 “이러한 정신을 이어 받아 인근 어느 지역보다 항일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순국하신 분과 감옥생활을 하신 분들이 많은데 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추모사업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무이며, 영암인의 자긍심이다”고 말했다.

유인학 4ㆍ19혁명공로자회장은 “선열들의 피눈물 나는 항일 투쟁이야 말로 민족정신을 기리고 영암을 의인의 고장으로 승화시키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고귀한 역사유산이다”고 말했다.                                   

문배근 기자  mbg1121@hanmail.net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배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