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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월출산’과 천년고찰 ‘도갑사’
서 일 환

서호면 산골정마을生
전 광주우리들병원 행정원장
광주전남의료발전협의회 회장
상무힐링재활병원 행정원장진면

도갑사(道岬寺)는 군서면 도갑리에 있는 사찰이다. 도선국사실록(道詵國師實錄)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신라 말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기록됐다. 도갑사는 도선국사가 신라 헌강왕 때 당나라를 다녀와서 어린 시절을 보낸 문수사 터에 창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처녀 최씨가 냇가에 떠내려오는 참외를 먹고 아이를 잉태했다. 아버지는 부끄러워 처녀의 몸으로 낳은 아이를 국사봉(國師峰) 갈대밭에 버렸다. 그런데 비둘기들이 날개로 아이를 감싸서 길렀다. 어머니가 문수사 스님에게 아이를 맡겨 기르도록 하였다. 아이가 자라서 도선이 되었고 도산이 태어난 곳을 구림(鳩林)마을이라고 한다.

도선(道詵)은 신라 말과 고려 초의 승려이자 풍수지리설의 원조이다. 전남 영암군 구림마을에서 태어나서 15세에 영암 월암사에서 출가하여 구례 천은사, 남원 선원사, 공주 동학사, 하동 쌍계사, 김천 청암사, 상주 청계사, 서울 봉원사, 파주 보광사 등을 창건했다. 광양 옥룡사에서 ‘인연으로 와서 인연이 다하여 떠나는 것이니 슬퍼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입적했다.

도선이 ‘지금부터 2년 뒤에 반드시 고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라고 예언하여 왕건이 태어났다고 한다. 소를 끄는 농부로 나타나서 태조 이성계의 궁궐을 무학에게 알려줬다고 한다. 고려 8대 임금 현종은 대선사(大禪師)로, 15대 임금 숙종은 왕사(王師)로, 17대 임금 인종은 국사(國師)로 추봉했다. 도선이 풍수지리설과 음양도참설을 기록한 ‘도선비기(道詵秘記)’는 전해지지 않는다.

도갑사는 조선 세조 때 신미대사(信眉大師)와 수미왕사(守眉王師)가 966칸의 대가람으로 중창했다. 신미는 충북 영동 출신의 승려이며 문종으로부터 선교도총섭, 세조로부터 불제자의 최고 존칭인 혜각존자(慧覺尊者)라는 칭호를 받았다. 수미는 영암 출신의 승려이며 세조로부터 판선종사에 임명됐고 왕사로 책봉됐다. 신미와 수미는 훈민정음 창제와 보급에 앞장섰고 세조의 어명으로 해인사 대장경을 인출하여 전국에 배포했다. 또한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기록한 월인석보(月印釋譜)의 편찬에 참여했다.

조선 성종 때 창건된 도갑사 해탈문은 국보 제50호로 지정됐다. 도갑사 해탈문은 건축의 안정감을 주기 위해 기둥 중간의 직경이 가장 크고 위와 아래로 갈수록 직경이 점점 줄어드는 배흘림기둥으로 구성됐다. 정면에는 ‘월출산도갑사(月出山道岬寺)’, 뒷면에는 ‘해탈문(解脫門)’이라는 현판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필로 쓴 도갑사 해탈문 편액을 때어내고 대흥사 해탈문의 원교 이광사 글씨를 모각한 편액으로 교체됐다.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미륵전의 주불(主佛)인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은 보물 제89호로 지정됐다. 신라시대 양식과 고려시대 형식을 결합하여 불상(佛像)과 후광(後光)이 하나의 돌에 조각되어 마애불과 같은 기법으로 만들었다. 마애불은 바위에 새긴 불상이고 미륵은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의 부처이다.

도갑사는 정유재란, 병자호란,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 대부분 소실과 복원을 반복했다. 또다시 1977년 대화재로 해탈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과 요사채가 소실됐다. 1981년 대웅보전을 시작으로 옛 전각들을 복원했다. 국립공원 월출산, 국보 제144호 마애여래좌상, 왕인박사(王仁博士) 유적지, 구림(鳩林) 전통마을, 기찬랜드, 세발낙지, 어란(魚卵), 대봉(大峯), 무화과(無花果), 달마지쌀 등 영암은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 천국이다.

서일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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