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재(重宰) 덕진면 노송리 송외마을生 전 광주시교육청 장학사 전 광주 서광초등학교 교장 광주시 미술대전(서예) 초대작가

“내숙아! 올해에는 복 많이 받고, 공부 잘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 세뱃돈을 주시면서 하신 덕담이 지금도 귀전에 생생합니다. 내숙(來淑)은 내 아명이었습니다. 이웃마을의 벼슬이 높고 부자로 살았던 사람의 이름을 고모할머니가 붙어주셨다고 합니다. 그의 운을 닮으라는 염원에서 지어 주셨던 같습니다. 그러나 이름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할 때가 종종 있어서 ‘왜 하필이면 여자들 이름으로 지어 주셨을까?’ 하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손수건과 함께 가슴에 달린 이름표에는 ’신중재’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이었지만 계급장이라도 단 듯이 기뻤습니다.

성년이 된 후 족보에서 내 이름을 찾아보았습니다. 집안에 내려오는 33세손 항렬은『宰』이고, 34세손 항렬은『重』인데 다음 항렬자로 내 가운데 이름자를 썼으니 자식들의 이름은 항렬을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시주하기를 바라며 아내에게 아이들 이름을 묻더란 것입니다. 항렬을 무시하고 옥편에서 좋은 글자를 선택하여 부르기 쉽게 지어 불렀는데, 스님은 아이들 사주와 한자 이름을 해석하고 나더니, “장남의 이름은 좋지 않으니 반드시 개명해야 합니다.” 시주를 받고 홀연히 떠났다며 아내가 걱정스런 투로 말했습니다. 듣고 보니 꺼림직 했고, 나처럼 자식에게서 원망을 듣고 싶지 않아 유명하다는 작명가를 찾아가 물으니 장남의 이름이 정말 좋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장래를 생각하여 좋은 이름으로 개명해 주었습니다.

공직을 퇴임할 무렵이 되니 자식들을 필혼시키는 일이 나의 큰 과제였으나 어렵사리 4남매를 퇴직 전에 다 결혼시켜 내 임무는 완수했다고 생각했는데 손자 볼 때가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어 은근히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던 차, 장남이 며느리의 잉태소식을 전했습니다. 온 천하를 얻은 듯 기뻤습니다. 새로 태어날 아이에게 만큼은 우리 부자가 이름 때문에 겪었던 고통은 없어야 할 터인데 하면서, 고민을 거듭하다가 서점에 들러서 성명학 책 몇 권을 샀습니다. 우선 내 이름부터 그 책의 작명법에 대입하여 살펴보면서 의문점을 풀기로 했습니다.

한편, 자식들 이름도 나쁘면 개명할 생각이었습니다. 그 책에서는 이름 첫 음절은 음성법칙에 따라 중복되지 않아야 하고 충돌하는 음이 없이 부르기가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자로 풀이 했을 때 획수를 따져 홀짝을 맞추어야 하며, 뜻이 그 사람 운에 걸맞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세력에서는 그 사람 사주의 오행(금목수화토)을 살펴보아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이름에 보완해 주어야 좋다고 했습니다.

내 이름을 살피니 그 동안에 항렬 때문에 불편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애착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나온 세월과 조금은 걸맞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자식들의 이름도 살펴보니 장남을 제외하고는 그런대로 잘 지었다는 판단이 되어 개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에게 기대하고 이루고자 하는 희망을 포함하기에 될 수 있으면 그 사람을 대표할 수 있는 이미지를 붙여 짓는 것이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 태어날 손녀의 이름을 작명하기 위해 그 책들을 심도 깊이 연구했습니다. 첫 손녀가 세상에 나오는 기쁨을 맛보고 며칠이 지나, 이것저것을 따져 가장 걸맞다고 판단되는 좋은 이름 두 개를 지어 주며 자식 내외에게 고르라고 했습니다. 선택한 이름은 ‘무리나 인류에게 상서로운 사람이 되라.’는 뜻이 담긴 서윤(瑞倫)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막둥이도 장가 간지 3년이 지난 후에야 딸을 낳았습니다. 그 둘째 손녀는 수현(秀炫) ‘빼어나게 빛나라.’라는 뜻을 담아 지은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내가 이름을 지어 주어서 그런지 손녀들에게 더 애정이 갔습니다. 할아버지가 염원하는 것처럼 이 사회에서 꼭 필요로 하는 인물들이 되어 주기를 바래봅니다. 

성당 다니는 사람들이야 본명을 부르지만 이젠 나이가 들어 친구나 후배도 이름 부르기가 쑥스러워 그 사람의 직업에 최고 직책을 넣어 불러 주곤 합니다. 주말이면 늘 같이 다니는 낚시 동호인 형님들이 있습니다. 선배인 그들은 나를 ‘신교장’이라고 부릅니다.

그 호칭이 죄송해서 제안을 했습니다. “제가 어찌 형님들에게 교장이라는 호칭으로 불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지 마시고 우리 서로 아호를 부르면 어떻겠습니까?” 좋은 제안이라고 하여 형님들의 호를 여쭈니, 일석(一石), 청송(靑松), 남송(南松), 내 호는 일찍이 서예 스승님이 덕송(德松)으로 지어 주셨는데, 내 고향이 덕진면(德津面) 노송리(老松里)이기도하지만, 덕스런 소나무가 되라는 의미가 더 크게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라서 그렇게 지었을까? 자연과 벗하는 소나무와 돌이 아닌가? 인연 중에 이 같은 인연이 또 어디 있을까?’ 개구리 울음소리와 우리들의 덕담소리가 고요했던 저수지 둑에 메아리 쳤습니다.

일본작가 에모토 마사루는 『물은 답을 알고 있다.』의 저서에서 “한 마디의 긍정적인 말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병에 물을 담아 두고 ‘고맙습니다. 사랑, 감사’ ‘망할 놈, 미친 놈’ 등의 여러 글자를 써 붙이고 영하 20℃로 얼려보니 전자의 유리병에 물은 아름다운 육각형 결정체가 보였지만 후자의 유리병에는 시꺼먼 구멍이 뚫려 있었다고 했습니다.

사랑한다고 써붙인 우유병의 우유는 쉽게 썩지 않고 오래 가지만 욕을 써놓은 우유는 빠르게 썩더라는 것입니다. 가축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면 맛있는 육질의 살이 빨리 오르고, 곡식이나 채소도 튼실한 열매가 많이 열리고, 소출이 늘어난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들입니다. 우리의 몸은 70%가 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음파에 더 잘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염원을 가지고 소원을 빌거나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피그말리온 효과’처럼 좋은 뜻이 담긴 글자로 이름을 지어 사랑의 음파를 울려 준다면 그에게서 좋은 열매가 맺힐 것 같은 기대가 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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