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구정봉 정상에서 제사를 지낸 것으로 추정되는 도자기 파편이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암문화원은 지난해 11월 백성을 기근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지방 수령이 주관했던 기우제(祈雨際)가 월출산 구정봉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을 기록한 영암향교에 보관중인 ‘오예의’(五禮儀)를 처음 확인하고, 이번에 월출산 구정봉에서 지표조사를 벌여 이 같은 사실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구정봉 기우제 축문의 한 내용을 보면, “(중간 생략)내가 부덕함에 부끄럽나니 이 땅의 관리가 되어 군을 다스리는 재주가 모자라고 재앙을 그치게 하는 정성이 없어 이곳에 큰 가뭄이 이르렀으니 빌 바가 없음을 압니다. 전각이나 성 밖이 모두가 적나라하니 노들에는 푸르름이 없고 사령은 베품이 없으니 백성들은 어찌 고생한가. 감히 비루한 정성을 다하여 이 홀과 폐백을 드리어 밝은 제사를 지내니 바라건대 여러 재앙이 없으소서.”

신라 시대에는 명산대천에 제사를 대사, 중사, 소사로 나누어 지냈는데 경주 부근의 명산에서는 대사를, 오악에서는 중사를, 월출산에서는 소사가 치러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고려 시대에는 산천제를 대·중·소사 등으로 구분하지 않고 국가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월출산에서도 국가가 주관하는 국제(國際)를 거행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적 제사가 월출산 어디서 이뤄졌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는데, 이번에 구정봉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을 영암문화원에서 기록과 유물을 통해 처음 확인한 것이다. 또한 기우제로 선택된 구정봉(738m)은 천황봉(809m)과 향로봉(744m)에 이어 제3봉 임에도 불구하고 월출산 제1봉의 위상을 확인해주고 있다.

구정봉은 예로부터 김극기 김시습 임억령 기대승 정철 백광훈 김수항 정약용 등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월출산을 주제로 시를 지을 때 천황봉보다 구정봉을 주로 언급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월출산의 주봉을 구정봉이라 기록하고 있는데, 이번 조사에서 재차 확인했다는데 또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큰바위얼굴’의 구정봉이 갈수록 신비스런 존재로 다가선 느낌이다. 월출산의 가치를 또 한번 되새겨준 이번 조사가 결코 헛되지 않기를 바라고, 지역의 관광자원으로 십분 활용되길 기원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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