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들 수십년 맺힌 가슴의 응어리 풀어줘

영보 형제봉 만세운동 사건 관련자 6명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됨으로써 단일사건으로는 최대 규모라는 점에서 영암의 항일운동이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이번에 건국 포장에 추서된 인물은 신용주(1906, 덕진 운암), 최병수(1906, 덕진 영보), 최동림(1941, 덕진 영보), 최판열(1911, 덕진 영보) 등 4명이다. 또 대통령 표창에 신용점(1910, 덕진 운암), 신일선(덕진 노송) 2명이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로 확정됐다.

건국포장에 추서된 신용주 선생은 최규옥 전 덕진농협 조합장의 외조부로 1933년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1993년과 1995년 보훈처 심사를 받았으나 6·25 당시 농민 동맹원 경력과 독립운동 활동 후 행적 불분명으로 보류됐다가 이번에 독립유공자로 추서됐다.

최병수 선생은 2015년 8월 일본대사관 앞에서 분신 사망한 최현열 열사의 부친으로, 1933년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1934년 3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형을 받았다. 6·25한국전쟁 당시 영암군 내무서장으로 부역한 경력 등으로 그동안 보훈처 서훈심사도 받지 못했다.

최동림 선생은 영암향교 최연창 전 전교의 부친이다. 1933년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1934년 3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형이 확정됐다. 하지만 사망경위와 광복 후 행적 불분명 등의 이유로 1993년과 2010년 심사가 보류됐다 역시 이번에 명예를 회복했다.

최판열 선생은 1933년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6월을 선고받았으며, 1993년과 1995년 보훈처 심사를 받았다. 그러나 6·25당시 후보당원 활동경력과 독립운동 후 행적 불분명으로 서훈이 보류돼 왔다.

대통령 표창에 추서된 신용점 선생은 건국포장을 받은 신용주 선생의 동생으로 1933년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았고, 1934년 2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공소기각으로 1심대로 확정됐다. 독립 운동이후 행적 미상으로 그동안 심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신일선 선생은 교보생명 창업자인 신용호 회장의 큰형님으로 1933년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2010년 보훈처 서훈심사를 받았으나 독립 운동이후 행적 불분명으로 심사가 보류됐었다.

신용주·신용점 선생 등은 지방의 소작권 이전 횡포에 항거, 소작쟁의 만세와 노동가를 부르며 시위행진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형을 받았다.

또 최동림, 최동환, 최병수 등은 무산자 자제의 야학교육에 대한 사회의 불합리함을 타파하기 위해 항일의식과 사회주의사상을 고취하는 활동을 하고, 소작쟁의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형을 받았다.

국가보훈처 자료에 따르면, 영보 항일운동 관련자 중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그동안 7명이다. 1990년 애족장에 문사훈(영암 장암), 최동환(금정 아천), 최규창(군서 동구림), 1992년 건국포장에 최석호(덕진 영보), 2000년 대통령 표창에 박수봉(덕진 운암), 박유성(덕진 운암), 최규철(덕진 영보) 등이다.

그러나 전남대 김홍길 교수의 연구자료에 의하면, 1990년 애족장 김동규(미암), 문성선(영암 장암), 2010년 건국포장 신원범(덕진 노송), 2002년 건국포장 최기섭(군서 동구림), 2006년 건국포장 이창회(영암 망호) 5명이 영암농민항일독립운동 관련자로 파악되고 있다.

이에 따라 영암농민항일독립운동으로 국가에서 인정받은 독립유공자는 기존 12명에서 2018년 6명을 추가하여 18명에 이른다.

이번 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서훈 결정은 지난해 정권 교체이후 영보 형제봉만세운동 사건을 재조명하기 위해 펼쳐진 세미나 개최, 유족회 결성 및 기념사업회 창립 등 활동의 첫 성과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6월 8일 ‘독립유공자포상 심사기준’을 개선하여 3개월 이상 수형기준을 완화하고, 행적이 불분명하더라도 결격사유가 확인되지 않으면 포상키로 했다. 특히 사회주의 활동 참여자도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하지 않으면 포상하기로 했다.

영암항일독립운동유족회 최윤호 회장은 “최병수·최동림 선생 등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분들이 독립유공자가 된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고, 앞으로 영보 농민항일운동 참여자들이 더 이상 사회주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될 것이다”고 환영했다.

최 회장은 “이번 독립유공자 포상으로 영보 형제봉사건이 영암농민항일독립운동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나머지 분들도 독립유공자로 추서되도록 힘쓰겠다.”며 “단일사건으로 10명 이상이 국가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일이 드문 일이다. 영보와 영암을 항일운동의 성지로 널리 알리기 위한 활동과 기념사업도 추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보형제봉 사건을 농민항일운동으로 재조명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온 우승희 도의원은 “독립운동 후손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었던 수십 년 맺힌 응어리를 풀어 드리게 되어 기쁘고 보람 있다”며, “후손들의 연세가 많기 때문에 나머지 분들도 빨리 독립유공자로 인정되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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