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중 재 덕진면 노송리 송외마을生 전 광주시교육청 장학사 전 광주 서광초등학교 교장 한국전쟁피해자유족 영암군회장

2016년 12월 17일, 한국전쟁희생자 영암군합동위령제를 모셨다. 제사 끝 무렵 희생자들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의 길에 대한 안내를 했다. 그리고 2017년 1월부터 매주 토요일, 상담 요청이 있는 마을을 돌며 200여 분의 희생자 유족들을 만나 68년 전,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한국전쟁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접했다.

처음 방문한 곳은 학산면의 어느 마을이었다. 노인 두 분이 우리를 맞았다. Y노인은 그 당시를 회상하며 울먹였다.

“나는 당시 열한 살로 마을 앞에서 친구와 놀고 있었는데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이 나타나 증조할머니부터 식구 열여덟 분을 묶어 산 밑으로 끌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들키면 나도 잡혀갈 것 같아서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숨었습니다. 부모님도 모두 잡혀가 식구는 한 사람도 없으니 정말 무서웠습니다. 그 때 마치 이웃 마을에 사시는 외할머니가 오셔서 덜 썩어 발효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엄 짐 속에 바작을 깔아 숨겨 먹을 것을 며칠 동안 가져다 주셔서 살아남았습니다.” 

어느 날은 덕진면 한 마을회관에 20여 명의 동네 분들이 모였다. 한국전쟁 당시 공권력에 의해 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명목으로 내 삼촌을 죽음으로 몰아세운 사실, 그의 형이라고 민간인 내 아버님을 총살한 이야기, 우리 가족들이 당했던 고통들을 털어 놓았다. 그리고 8년 전 진실규명으로 명예를 회복시켜 드리고, 3여 년 동안 법정싸움 끝에 승소하여 배상받았던 일들을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자 칠십 중반의 아저씨 한 분이 말을 더듬거렸다.

“6.25사변 때, 피난을 가다가 예순여섯의 할아버지와 산달을 맞아서 만삭이 된 배를 움켜쥔 마흔 네 살의 어머니를, 어린 나이에 시집가서 조카를 막 품에 안은 스물세 살의 꽃다운 큰 누님이, 막 피워 보려고 머문 꽃송이 같은 스무 살 작은 누나가, 보송보송 솜털도 가시지 않은 여섯 살 베기 남동생을 무슨 죄가 있다고 모두 총살했는지? 원통하고 억울하고 분합니다. 하늘도 분노할 일이 아닌가요? 나는 당시 여덟 살로 총을 맞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나도 식구들과 함께 총에 맞아 죽었더라면 이런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어머니가 총을 맞고 쓰러져 피를 흘리는지도 모르고 그 옆에서 겁에 질러 부둥켜 앉고 한참을 누워 있다가 총소리가 잠잠해서 일어나보니 이미 숨을 거두셨더라고요.” 같이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런 일이 있었던 며칠 후, 그 아저씨를 만나 가정사를 듣게 되었다. 어머니를 잃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열두 살 연하의 아내를 만나 정상적인 가정을 꾸렸으나 몇 년 전, 사업에 실패하여 어렵게 살고 있는데 나를 만나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면서 막걸리 몇 잔에 불쌍한 큰 누님 이야기를 또 꺼냈다.

“큰 누님이 그렇게 억울하게 돌아가신 뒤, 매형은 재혼을 했는데 교장까지 지낸 ‘류○○’씨이라네.” 내 귀를 의심했다. 이 분은 나의 초등학교 1학년 은사님이 아닌가? 그럼 은사님의 부인? 사모님?
한국전쟁으로 인해 전국에서 100만 명이 사살되었고, 전남지방에는 21만 명, 영암군에서는 만 여 명이 피해를 입었다. 희생자 가족들은 연좌제 때문에 벌벌 떨며 숨소리조차 죽이며 살았다. 한국전쟁이 나에게만 큰 아픔인 줄 알았는데, 여러 유족을 만나다보니 나보다 더 참혹한 시련을 당하신 분들이 많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겪은 일을 몇 분들에게만 안내해 드리려고 했는데, 상담 횟수가 늘어나니 생각을 바꿨다.

금년 3월에는 영암군유족회 총회를 열어 회원도 확보하고 간담회도 한 차례 가졌다. 170여 명의 유족들 부모 형제자매의 죽음을 보거나 아는 증인들을 만나 사실확인서도 작성해 변호사 사무실에서 인증을 받아 배부해 드렸다. 진실이 묻히고 왜곡되지 않도록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다.

오는 11월 19일(월) 10시부터 영암군민회관에서 한국전쟁 당시 희생당한 영령들의 혼을 달래기 위한 합동위령제를 모신다. 영암군청에서 위령제 모실 예산도 지원한다. 많은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억울하게 희생되신 영령들을 위무하고 맑은 술 한 잔을 올린다.

한국전쟁 희생자들의 진실을 규명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일에 미력한 힘이지만 최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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