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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을 바로 알고 제대로 쓰자
최 경 천

구림서 낳고 영보에서 자람
전 KBS광주총국 아나운서 부장
전 호남대학교 초빙교수
국제로타리3710지구 사무총장

지난달에 나는 이 낭주골에서 ‘대중가요 가사 유감’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다른 달에 비해서 반응이 더 좋았다. 틀린 줄도 모르고 마구 노래를 불렀다며 유익한 지적이었다는 평이었다. 내친김에 지난달에 이어 이 달에도 틀린 줄도 모르고 함부로 쓰고 있는 생활 속의 우리 말 몇 가지를 들춰보고자 한다.

지금 벼 수확이 한창이다. 지난 여름은 견디기 어려운 폭서였지만 ‘쌀농사’는 풍년이란다. 쌀농사-신문이나 방송에서도 태연히 쓰고 있다. 그러나 바른말은 '벼농사'이다. 수도작의 도(稻)는 ‘벼 도’이다. 벼농사를 해서 수확한 벼를 도정해야 ‘쌀’이 된다. 밭에 배추씨를 심었으면 ‘배추농사’이지 ‘김치농사’는 아니다. 관행적으로 ‘쌀농사’로 일관하지 말고 '벼농사'로 써야 한다. 벼를 수매할 때 ‘쌀’을 수매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신문 광고에 부고(訃告)가 실린다. 내려쓰는 고지이면 맨 왼쪽 끝에 으레 쓰는 글이 ‘부의와 조화는 정중히 사절 합니다’이다. 조의금과 조화는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쓰는 ‘정중(鄭重)히’는 적절하지 못하다. 이를 아가사창(我歌査唱)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삼가 사양할 때 그 부고를 보는 사람이 해야 할 말이다. ‘정중히 사과를 하는군!’

방송에서 진행자가 방송 사고에 대해서 사과를 할 때 ‘~정중히 사과 드립니다’하면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시청자나 청취자가 할 말이다. 형식적으로, 마지못해서 건성으로 사과를 하면서 ‘정중하다’면 되겠는가.

아가사창(我歌査唱)은 ‘내가 부를 노래를 사둔이 부른다’는 뜻이다. 책망을 들을 사람이 도리어 큰 소리를 칠 때도 이 말을 한다. 행사를 알리는 초청장이나 초대장에서도 쉽게 보는 글인데 ‘정중히’보다는 공손이 사양(초대)한다는 뜻으로 '삼가 사양(초대)합니다' 정도면 무방하지 않을까.

수십 년간 국민 모두의 드링크제로 유명한 O제약의 'XXX'는 피로 회복제의 대명사이다. 그러나 실은 이 드링크는 피로를 회복하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 아니라 ‘피로를 해소하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다. 피로회복이라는 말, 그 자체는 ‘도로 피로 해진다’는 뜻이다. 명예회복은 ‘실추된 명예를 되찾는 것’이고 실지(失地)회복은 ‘잃었던 땅을 되찾는 것’이다. 그러니 피로회복은 ‘피로를 되찾는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워낙 굳어졌기에 어울리지 않겠지만 지금부터라도 '피로 해소제'로 해서 드링크제의 생산취지를 ‘회복’해야 하겠다.

요즘 특별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 ‘~세요’를 아무 대나 붙여 쓰고 있다. 상대에 대한 높임말로 ‘~이쁘세요’ ‘58살이세요’ ‘2500원이세요’ 식이다. 치과의원에서 치아치료를 받는데 의사(간호사인지도 모름)가 ‘아프실 것입니다’라는 뜻을 ‘아프세요’라고 말한다. 벌떡 일어나버리고 싶었다. 존댓말 또는 높임말에 압박이 되어 아무데나 ‘~세요’를 붙인다. 높임말을 쓸 때는 항상 생각하고 써야 한다.

10월 6일 한 방송사의 뉴스특보 때 화면설명을 하는 기자가 ‘~상황이시구요’라고 말했는데 상황을 높여 말할 필요는 없다. 10월 7일 어느 방송사에서 광주·전남의 고교생을 대상으로 명사의 특강을 방송했는데 방송 마무리에 학생들의 소감을 들었다. K여고 재학생이 질문을 하는데 ‘저희 나라’라는 말을 연거푸 했다.

자기의 나라나 민족은 자기 마음대로 낮춰서 말할 수 없다. 국제무대에서 몇 억 인구의 나라나 몇 십만 인구의 나라나 똑같은 자격을 갖는다. 나라의 권위와 존엄을 생각할 때 자기 기준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이전의 다른 방송에서는 저명인사나 고위 공직자도 ‘저희 나라’라는 말을 하는데 진행자가 ‘우리 나라로 해주십시오’ ‘저희 나라라는 표현은 삼갑시다’라고 완곡히 짚고 넘어갔다. 진행자가 알고 있기에 다행이었다.

아까 여고생의 경우도 진행자가 바로잡아 주든가, 자막으로 고쳐주든가 아니면 녹화 프로그램이니까 삭제할 수도 있다. 청소년들에게 높은 국가의식을 심어주는 명사의 특강에서 고등학생이 이 말을 태연하게 말하는 모습을 볼 때 바늘에 찔린 듯, 유리조각을 맨발로 밟는 듯 마음이 아팠다.

'프랑'이나 '스폰'도 한심스럽다. 프랑은 프랑카드를 줄여서 하는 말 같은데 ‘플래카드’(또는 현수막)가 맞는 말이고, 스폰은 ‘스폰서’로 써야 한다. '영부인'은 남의 아내에 대한 경칭이다. 대통령 부인만 영부인이 아니다. 동료의 부인, 선후배의 부인을 높여 말할 때도 영부인이라 한다.
우리 말(글)을 바로 알고 제대로 쓰면 개인의 품격이 돋보인다. 남이 쓰니까 가리지 않고 무턱대고 쓸 일이 아니라 가려서 쓰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겠다.

최경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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