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중 재 덕진면 노송리 송외마을生 전 광주시교육청 장학사 전 광주 서광초등학교 교장 한국전쟁피해자유족 영암군회장

우리 가문 신비(慎妃, 慎씨의 본관은 거창, 덕진면 노송리에 집성촌)의 전설입니다.

조선 10대왕 연산군은 어머니 폐비 윤씨가 흘린 피로 인해 갑자사화(甲子士禍)를 일으킵니다.
또 다른 폐륜 중 하나는 전국에서 미인들을 뽑아 ‘흥청’이라 이름붙인 기생, 장녹수를 비롯해 극해 달하는 ‘흥청망청’ 향락으로 날을 삼으니 정사(政事)는 딴전이었고,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를 말리는 충신 하나 없었고 간신배들은 오히려 그의 방탕을 부추겨 당리당략에 혈안이 되었다니, 이런 연산군의 폐륜을 보다 못한 성희안은 박원종, 유순정 등과 거사일을 정하고, 거사 전야 좌의정 신수근(慎守勤)을 찾아 그의 마음을 떠 보니, “매부를 패하고 사위를 왕으로 세우는 일에 동조할 수 없소.”하며 단호히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대쪽 같은 그 성미? 매부나 사위나 별반 다르랴! 만약 반정에 실패하면 폐가망신이 아닌가? 반정의 공기를 이미 감지하기라도 하셨단 말입니까? 아니면 먼 훗날 선비로서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정신이었을까요? 이를 눈치 챈 박원종이 얼굴을 붉히며 일괄하기를, “딸을 택할 것인가? 누이를 택할 것인가?”하며 간교한 말을 했습니다.

반정군은 좌의정 신수근의 동조 없이 진성대군의 집으로 몰아닥치니 다급해진 진성대군 안절부절 못하며, “말 발굽소리가 들리지 않소. 나를 죽이러 오는 것이 아니요? 저들에게 죽으니 차라리 자결하겠소.”

허겁지겁 자결할 검을 찾으며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신씨 부인이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우리를 해하러 오는 것이면 말머리가 우리를 향해 있을 것이고, 말꼬리가 우리 쪽을 향해 있으면 서방님을 호위하러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현명한 부인 신씨의 말은 옳았습니다. 순간적인 판단은 자결하려는 남편 진성대군을 구했습니다. 위기의 순간을 넘긴 그는 영문도 모르는 채, 반정군의 호위를 받으며 궁궐로 들어갔습니다.
뛰는 가슴이 아직 진정되지 않은 신씨 부인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을 또 다시 접하게 됩니다. 아버지와 신수영, 신수겸 두 숙부가 반군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습니다. 앞이 깜깜하고 두려움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억울하지만 그 분들이 희생되셨기에 남편은 왕이 되고 자기도 왕비가 될 것이니, 슬픈 울음도 기뻐서 웃을 수도 없는 참으로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 아니었을까요?

소문도 없이 느닷없이 걸머쥔 용상에 앉은 임금을 반정 공신들이 강력하고 집요하게 대들며 목을 죄어 옵니다. 자기들이 앞세운 허수아비 왕이기에 거칠게 항의하며 대듭니다.

“역적, 신수근의 딸을 어찌 국모의 자리에 그대로 두려고 하십니까?” 왕좌에 앉자마자 계속되는 폐위 종용에 시달리던 중종 임금은 자신의 난처한 사정을 중전에게 털어 놓고 맙니다. “중전! 내가 비의 자리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오.”

“마마! 왕위만 보존할 수 있다면 신첩이야 어디 간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부디,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몰래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의연하게 대처합니다. 지아비가 왕위에 오른 지 7일 만에 궁궐 밖으로 퇴출되는 폐서인 신씨. 어린 나이에 부부의 연을 맺고 첫 정을 나누며 애틋한 사랑을 키웠던 중종과 신비, 사랑도 지키지 못한 중종, 그저 힘없는 어린 임금에 불과했으니…. 초라하게 쫓겨난 폐비 신씨, 거처를 인왕산 아래에서 친정으로 옮긴들 무슨 낙이 있었겠습니까? 서슬 퍼런 반정군의 감시 속에 그녀가 보고 싶어도 궁으로 부르지 못한 불쌍한 임금. 권력은 쥐었지만 휘두르지 못하는 나약한 임금. 폐비가 보고프면 누각에 올라 인왕산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삼킨 중종, 진정이었을까요? 여염의 알콩달콩 사는 부부가 더 부럽지 않았을 런지요. 이 소문은 폐비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어 말머리와 말꼬리 방향으로 낭군 목숨 살린 기지를 또 발휘. 사랑하는 임 보이는 인왕산에 올라 평소 입었던 붉은 치마를 바위 위에 걸치는 전설을 만듭니다. 행여 임 오실까? 기별 보내실까? 날 저문 줄도 모르고 흐르는 눈물 훔치다가 어둠 깔려 하산하니, 그리운 서방님은 그 치마 바라보며 달콤하고 애틋했던 사랑일랑 진정 달랬단 말인가요?

한을 품고 돌아가신지 180년 만에 효심 지극한 영조대왕 단경왕후(端敬王后)로 추존하는 은덕 베푸시니 탄복할 따름입니다. 천하호령 38년이라. 무엇이 그리 두려웠을까요? 열두 명의 젊은 여인들, 치마폭에 덮였었는지, 스물이 넘는 자식들을 얻으면서 애틋했던 이팔청춘의 정을 잊을 수 있었을까요?

‘말 한마디 지혜로 목숨 건진 일등공신. 조강지처 신비. 불쌍한 그 여인’을 어찌 잊을 수 있었단 말인가요? 야속한 중종. 무정한 임금이시여…
불초 33세손, 두 손 모아 단경왕후의 명복을 비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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