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암면 출생 행정학 박사 전 전라남도 행정부지사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세한대학교 석좌교수

보름 쯤 뒤면 즐거운 추석 명절 연휴다. 중추절은 우리나라 고유 전통 명절로써 그 역사성이나 시기 특히 근·현대사에서 가장 크고 성대한 명절로 꼽힌다. 그래서 말도 많고 이야기꺼리가 된다.

몇 년 전, 필자의 모교 문학지 창간호에 게재되었고 몇 차례 강연 시에 인용했던 내용이지만 발췌하여 영암신문 독자들께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전통적 개념의 각종 추도행사와 명절 때 모든 남매들이 참석하는 큰 행사를 도맡아왔다. 그리했던 관행을 깨고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택한 것이다.

지난해 추석은 강원도 지인의 집에서 3박4일로 계획을 세우고 준비해왔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이 제공되었기에 가능한 계획이다. 4형제 내외와 내 사위 그리고 특별히 이번에는 결혼 후 광주 시댁에서 시댁 식구들과 함께 살고 있는 여동생이 합류했다. 명절 때면 항상 시댁에서 그 가족들과 함께했던 관행을 양해를 얻어 이번 친정행사에 합류한 것이다. 3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협조해준 매제와 여동생 시댁 어르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연휴 전날 광주에서 역 귀성한 여동생과 2층에 거주하고 있는 둘째 제수씨 그리고 아내와 함께 점심 직후 교통혼잡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떠났다. 내가 살고 있는 3층 단독주택에 10년여 전부터 3형제가 1,2,3층에 함께 살고 있다. 3층에는 장남인 내가 건축 초기부터 부모님 모시고 거주해 왔으며, 2층의 절반은 둘째가 차지하고, 1층의 절반에서는 막내가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3형제가 한 집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면서 별 불편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

며칠 동안 머무르며 먹고 마실 식재료 등으로 꽉 차버린 자동차 안의 빈틈에 세 여인을 태우고 신나게 달렸다. 오랜만에 친정식구들과 추석명절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있는 여동생은 벌써부터 흥분 그 상태다. 도시를 떠난다는 홀가분함과 가족 모두가 한 자리에서 추석 명절을 함께할 것이라는 기대가 피곤함을 모르게 했다. 변해가는 들판의 황금색과 산을 뒤덮고 물들어가는 나뭇잎들이 가을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서둘러 출발했던 탓에 교통 혼잡없이 평상시와 비슷한 소요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가지고 온 짐을 정리하고 다른 식구들을 기다렸다. 직장을 마무리하고 오는 가족들은 예상대로 저녁10시 경 도착하여 열 명의 식구가 함께 모였다. 가져온 짐을 풀어 놓으니 이삿짐을 방불케 한다. 열 식구가 이처럼 많이 소비할 수 있겠느냐는 나의 걱정 소리가 있었으나 별로 귀담아 듣는 이는 없었다.

잠자리에 들려하는 생각은 제일 연장자인 나의 몫이고 나머지는 웃음꽃을 피우기에 시간가는 줄을 몰라 한다. 이튿날은 추석명절 연휴 첫날이다. 아침에 밖에 나와 보니 시리도록 맑고 밝은 파란 하늘과 폐부를 찌르는 신선한 공기... 이런 환경에 우리가족 모두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감사하고 행복했다. 운동과 산행 팀으로 나누어 출발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함께 식사하고 이어지는 환담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우리들의 건강, 자녀들 문제, 사업과 관련 얘기 이어 종교와 정치 등 끝이 없다. 정치 문제가 화제에 오르니 갑자기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단순할 줄 알았던 가족들의 정치적 견해가 의외로 차이가 있었다. 활발한 토론이 이어지고 설득하려 하고 이해시키려 하며 심지어는 우리식구 중 누가 누구와 인연이 있는지 밝히라는 등 열기가 높아지고 있었다.

이쯤 되면 장자인 나의 역할이 필요하다. 각자 의견은 다를 수도 있으며 그 의견을 개진함에 있어 제약이 가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금년에 있을 선거가 갖는 시대적 요청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면서 앞으로도 있을지 모르는 정치토론에 임해주기 바란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감사한 것은 대체로 장남인 나의 의견이 발표되면 우리 식구들은 대부분 수긍하며 스스로를 자제하고 따라준다. 내일 이른 아침 추석차례를 위해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습관처럼 새벽에 일찍 깨었다. 추석 아침차례 모실 때 식구들에게 전해 줄 메시지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성경 잠언 전체를 통독하며 ‘깨달음’이라는 주제로 준비했다. 짧지만 가족들에게 마음에 새겨질 수 있는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역시 여성들이 일찍 일어나 차례를 준비했다. 가득 차린 상 주위에 우리 열 명이 둘러앉고 가족예배 순서대로 진행한다. 준비한 메시지 내용대로 ‘깨달음’이란 사물의 본질이나 이치를 생각하고 궁리하여 알게 되는 것으로 그 깨닫는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 적시에 깨닫는가 하면 한참 후에 깨닫기도 한다. 뒤늦게 깨닫게 되면 후회가 따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적시에 깨닫기 위해 먼저 깨달은 사람에게서 배우며 그래서 위인전을 읽고 멘토를 찾고 경륜 있는 사람들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마무리로 잠언에 있는 말씀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라는 말씀으로 끝냈다. 박수와 환호성으로 나를 추켜 세워주며 아침차례를 끝내고 음식을 나누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두 분 모두 고향 영암선산에 모셨지만 명절에 찾아뵙는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간단치가 않다. 그동안 서울 장남 집에서 추도예배 형식으로 모셔왔다. 다소 후손들의 편의위주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자손들의 우애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생전에 그 분들이 몸소 보여주셨던 가족 사랑과 절약정신을 좀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차례를 끝낸 우리는 그날이 일요일이기에 모두 그 시골동네에 있는 교회를 찾아 예배에 참석했다. 조그마한 시골교회에 우리 어른일행 열 명이 들어가니 목사님이 흠칫 놀라셨다. 우리 가족들과 비슷한 일정으로 이 지역에 와 있는 다른 이들도 찾아와 교회당이 가득 찼다. 목사님은 흐뭇하셨는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은 지금 우리교회를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고 하시면서 귀한 설교말씀을 전해주셨다. 교회를 다녀 온 우리식구들은 또다시 두 팀으로 나누어 운동과 산행으로 오후 시간을 시작했다.

3박4일의 연휴를 마치고 돌아왔다. 각자의 위치로 돌아 간 동생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함께해 준 동생들과 제수씨들 그리고 많은 준비물과 봉사와 헌신을 마다하지 않은 수고에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답이 왔다. 광주에 있는 여동생은 “오빠! 저에게는 즐거운 명절이고 추억이 많은 날이었음다. 정말 감사함다. 건강하시고 내년에도 불러주삼” 다른 동생들도 답이 왔다. “형제우애, 신선하고 맑은 공기로 에너지 충전, 형님 덕분에 가족 모두 행복 했음다....”등등

명절 연휴로 인한 후유증으로 평소보다 이혼 청구율이 3배나 높아졌다는 등의 보도를 접하면서 우리의 전통 명절 보내는 스타일에 변화를 시도해 본다면 어떨까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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