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진면 노송리 송외마을生 전 광주시교육청 장학사 전 광주 서광초등학교 교장 한국전쟁피해자유족 영암군회장

엊그제 이사를 하면서 오래전 냉장고 속에 넣어 두었던 진두찰환을 발견했다. 지난날 혈압 때문에 자주 먹었던 환이다. 이것을 보니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할아버지는 날씨가 좀 쌀쌀해지고 가을비라도 내리면 영락없이 매년 하시는 병이 도지신다. 수건을 머리에 칭칭 감고 방바닥과 씨름을 하셨다. 앓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를 예뻐하시던 할아버지께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며 위로의 말씀을 드릴뿐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드실 단방약 준비에 잰 발걸음을 하셨다. 앞산과 뒤뜰로 진두찰 풀을 찾으려고 시간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 풀은 진득찰이라고도 하는데 엉거시과에 속하는 희첨이라는 한해살이 풀이다. 떼어도 떼어내도 계속해서 징그럽도록 달라붙는 사람에게 진득찰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풀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소녀들 치마 끝에 달린 레이스처럼 귀여운 연노랑색 꽃이 가을이면 가냘프게 핀다.

어머니는 이 풀을 마치 산삼이라도 된 듯, 뜯어 오셔서 정성껏 다듬은 뒤에 깨끗이 씻어 할아버지가 평소에 즐기시던 감주로 정성껏 담그셨다. 하룻밤이 지나면 그 정성은 빛을 발한다. 그 감주를 몇 그릇 잡수신 할아버지는 온 집안을 뇌성벽력과 먹구름으로 몰아치다가 갠 하늘처럼 시나브로 조용하고 맑은 얼굴을 지으셨다.

나는 공무원 건강검진에서 본태성 고혈압 판정을 받았다. 이 사실을 어머니께 말씀드리니, “엄니가 니 약은 맹그러 줄께. 걱정마라.” 그 날 이후로 어머니는 진두찰 채취에 또 전념하셨다. 오래 보관해두고 먹어야 하니 그것을 환으로 만들어 주셨던 것 같다. 물리학자가 새로운 사실이라도 탐구한 것처럼, 의사가 희귀한 병을 치료하는 약이라도 찾아낸 듯, 내 병도 할아버지와 같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으시고 매일 식후 반 줌 정도씩을 10년이 넘게 먹으라 하셨다.

세월이 흘러 광주로 전입해 온 어느 가을이었다. 언제 진두찰환 만들 준비를 해 두셨던지, 약이 떨어졌지 않느냐며 전화를 하셨다. 내가 내려 가야하는데 손자들이 보고 싶으셨던지 겸사해서 올라오시겠다고 하시며 약속 날을 잡으셨다. 어머니와 만날 약속을 한 날 미리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두 시간이 넘게 기다렸는데도 오시지 않으니 걱정이 되었다. ‘혹시 오시다가 교통사고라도 나신 것이 아닐까?’ 시골에 계신 작은 어머니께 전화를 해보니 오전에 버스를 타고 서둘러 올라 가셨다고 했다.

시골에서 광주까지는 여러 번 차를 갈아타는 번거로움이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속으로 화가 났다. “어쩌다 봉께, 버스시간을 놓쳐 늦어 부렀다.” 어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버스 짐칸에서 약초 담은 자루를 꺼내라고 하시며 연발, 늦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진두찰환을 먹으면서도 매월 한번 씩 내과를 갔다. “스트레스 받을 일이 있으셨나요? 혈압이 좀 높은데요. 약을 바꿔야 하겠습니다.” ‘술 때문이었을까?’ 어머니가 지워 주셨던 진두찰환이 떨어져 먹지 않아 혈압이 높아졌을까?

내가 한 번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머리에 번뜩 스치자 마음이 급해져 즉시 건제국으로 차를 몰았다. 건제국 아저씨는 “혈압에 좋은 치료약을 드셨네요.” 라고 하면서 진두찰환의 효험에 대해 말하며 약초의 성분이 알코올에 용해되어 혈액에 잘 흡수되게 하려면 반드시 약초를 그늘에 잘 말려 막걸리와 섞어 찌고 말리기를 아홉 번 거듭하는 구증구포(九蒸九曝)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 후, 아내와 함께 어머니 어깨 너머로 배웠던 진두찰환 만드는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건제국에서 사온 진두찰 약초를 깨끗이 씻어 그늘에 말리고 찹쌀막걸리는 주막에 주문을 했다. 찜통위에 시루를 놓고 막걸리 묻힌 진두찰 잎, 줄기, 꽃을 찐 후, 그늘에 말리기를 아홉 번. 거실과 베란다에 말리니 막걸리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 찼다. 밀밭에도 못 가는 아내는 술이 취한다며 얼굴이 벌게졌다.

그렇게 한 달여 동안을 그 일에 매달리며 신경을 썼다. 찌고 말리기를 거듭할수록 검은 색깔로 변해 갔다. 막걸리와 약초가 발효되면서 제법 구수한 한약 달이는 냄새가 나면서 고운 알갱이로 만들어져 갔다. 마지막으로 햇볕에 한 번 더 말렸다. 제분소에서 밀가루와 꿀을 잘 버물어 일정한 크기의 정제로 만들었다. 토끼 똥처럼 매끈한 진두찰환이 제분기 입에서 계속 쏟아져 나왔다. 그걸 보고 있는 내 혈압은 이미 안정되어 갔다.  

꿈에라도 보고 싶은 그리운 내 어머니는 19년 전에 귀천(歸天)하셨지만 진두찰환을 조손(祖孫)에게 처방해 주셨던 명의(名醫)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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