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정행복마을 풍류연꽃축제 열리던 날

모정은 물이 맑은 곳에 있고
문미에는 백년의 명성이 있도다

도갑사의 저문 종소리
멀리서 들려오고
연당의 가을 달빛이 밝도다

바람과 안개는
온 땅에 다 하려하니
시와 술은 더욱 다정하구나

남쪽 들판은 풍요롭게 익어가고
농부는 태평을 노래하네

<모정마을 원풍정 12경 중에서>

야금병창 원풍정을 품다

제5회 풍류연꽃축제가 열리는 지난 주 토요일, 연일 계속되는 찜통더위와는 어울리지 않게 하늘은 구름이 많아 땡볕이 시들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월출산 봉우리를 타고 넘어 남쪽 들판을 가로질러온 산들바람은 마을 앞 500년 홍련지를 지나면서 연향을 담뿍 머금어다 원풍정 마루에 쏟아놓았다.

원풍정 마루에는 인간문화재 양승희 선생의 어린 제자들이 자신들의 키만큼이나 큰 가야금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연주를 하고 있었다. 색색이 곱게 차려입은 학동들의 자태는 오백년 호수에 핀 연꽃만큼이나 곱고 우아했다. 아이들의 가야금병창 소리가 원풍정에 가득차고 넘쳐서는 이윽고 열 두 기둥 사이를 뚫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이윽고 양승희 가야금 명인이 제자들의 소리를 이어받아 가야금병창 방아타령으로 응수한다. 신기에 가까운 손놀림에 관객들은 숨을 죽인다. 때마침 홍련지 위에서 쉬고 있던 백로들이 가야금 선율에 맞춰 날갯짓을 하며 춤을 춘다.

“이곳 모정마을은 제 스승 김죽파의 스승님인 한성기 선생님이 사셨던 마을입니다. 저에게는 매우 뜻깊은 마을이어서 자주 오는 편입니다. 다음에도 또 오겠습니다.” 연주를 마치고 주민들에게 남긴 양승희 선생님의 인사말이다.

관객들도 민요속으로 뛰어들다

이어서 청해국악원장 최원환 명창이 고수를 대동하고 원풍정 마루에 오른다. “여보시오, 농부님들! 이네 말을 들어 보소, 어~라 농부들 말 들어요. 캄캄한 어두운 밤은 멀~리 머얼리 사라지고, 삼천리 너른 땅은 새 빛이 밝았구나. 산명수렴 이 강산은 우리 농부들 차지로세. 여~여여여~루 상사듸여 어럴~럴럴럴 상사듸여!”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신명나게 농부가를 부르니, 관객들은 모두 추임새를 넣으며 민요 속으로 뛰어든다.

목을 푼 최명창은 곧바로 판소리 심청가 중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을 선보인다. 심봉사가 심황후를 만나 피눈물을 흘리면서 고하는 대목에서 관객들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게 웬 말이요, 누가 날보고 아버지라고 하요? 나는 아들도 없고 딸도 없소. 무남독녀 외딸 하나 물에 빠져 죽은 지가 우금 삼 년인데, 아버지라니 누구요~?” 부녀지간의 눈물겨운 상봉을 지켜보다 마침내 심봉사가 눈을 떠 광명천지를 대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감격해 한다. 모정 저수지 위에 끝없이 펼쳐진 연꽃의 향연 속에 지극한 효성으로 다시 부활한 심청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소리꾼의 소리에 줄꾼이 화답하다

판소리의 감동에 이어 모정마을 주민들의 ‘원풍정 12경’ 모정찬가가 힘차게 울려 퍼진다. “모정마을 달 떠온다. 모정마을 달 떠온다. 아름답고 살기 좋은 우리 마을 으뜸일세. 호수가 원풍정 열두 가지 풍경들은 신선들의 놀이터, 우리 마을 자랑일세...” 이 노래는 원풍정 열 두 기둥에 걸려있는 주련 내용을 가사로 하여 새롭게 만든 창작민요이다. 주민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흥겹게 노래를 부른다.

곧바로 모정 줄다리기 전래 민요가 이어진다. 모정마을은 예로부터 정월 대보름에 줄다리기가 씩씩하게 성행해온 마을이다. 그런데 줄다리기 과정이 좀 독특하다. 본격적으로 줄을 당기기 전에 줄을 메고 노래를 부르면서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줄놀이 과정이 있다. 이때 소리꾼이 줄 위에 타서 선소리를 하면 줄꾼들은 상사소리로 화답한다. 선후교환창이다.

“달 떠오네, 달 떠오네 상사아 듸여어 어듸여.
월출산에 달 떠오네 상사아 듸여어 어듸여.
동쪽 줄은 용의 대장 상사아 듸여어 어듸여.
서쪽 줄은 실비암 꼴랑지 상사아 듸여어 어듸여.
당거나 보세, 당거나 보세 상사아 듸여어 어듸여.
동쪽 서쪽 당거나 보세 상사아 듸여어 어듸여.
동쪽이 이기면 쌀밥 먹고 상사아 듸여어 어듸여.
서쪽이 이기면 보리밥 먹네 상사아 듸여어 어듸여.
상사아 듸여어 어듸여. 상사아 듸여어 어듸여.”


마을 주민들은 용줄을 메고 다니던 옛 추억을 떠올리며 있는 힘을 다해서 상사소리를 한다.
풍물소리에 어깨를 들썩이다

뒤이어 벌어지는 무대는 모정마을이 자랑하는 모정풍물단의 풍물놀이 한마당이다. 올해에는 강진에 있는 대안학교인 늦봄문익환학교 학생들 11명이 함께 했다. 마을 청소 등 봉사활동 뿐만 아니라 농촌공동체마을의 문화를 이해하고 공동체정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역시 우리 풍물놀이는 길놀이이고 판굿이다. 힘이 넘치고 활기가 넘친다. 풍물소리에 맞춰 모두가 어깨를 들썩인다.

뒤이어 마지만 무대인 김성천 향우의 섹소폰 선율이 원풍정과 홍련지 주위를 휘감고 돈다.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신청한다. 더 이상 원풍정 마루에 앉아있지 못하고 마당으로 뛰어나간다. 춤추고 노래하며 시름도 잊고 무더위도 잊는다. 오래된 팽나무 잎사귀들이 춤추듯 한들거린다.

나뭇가지 사이로 시원한 한줄기 산들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이다. 한바탕 잔치가 지나간 자리에 은적산 석양빛이 들고 백로가 지나간 연못 자리엔 빠알간 연꽃 봉오리들이 뾰족뾰족 죽순처럼 솟아난다. 농부들은 다시 들로 집으로 돌아가고, 풍요로운 모정들녘은 농부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나락들이 떼글떼글 영글어 간다. 올해도 풍년이 오려나보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