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림서 낳고 영보에서 자람 전 KBS광주총국 아나운서 부장 전 호남대학교 초빙교수 국제로타리3710지구 사무총장

인생-70대, 교직과 방송직으로 34년을 지내고 정년한 뒤 16년이 지났다.

나의 전일방송(全日放送, 국명 약칭-VOC) 시절, 1971년 4월부터 1980년 11월 30일까지 9년 7개월에 엿새를 더한 내 인생의 빛나는 젊은 날에 잊혀지지 않는 것 가운데 가장 으뜸인 것은 공개방송 'VOC 장학퀴즈'이리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퀴즈 프로그램이었다.(후일 중학생 대상으로 바뀜)

이 프로그램을 창안하신 분은 당시 전일방송의 초대 국장이었던 김종태(金宗太) 회장이었다. 그 분은 신문이나 방송에서 어린이(청소년)의 이름을 많이 내주라고 권고하셨다. 어린이가 성장했을 때 자기 이름이 났던 신문이나 방송을 잊지 않기에 매체의 이미지를 오래오래 간직하게 된다는 것이다.

1972년쯤에 퀴즈 프로그램은 쇠락한 때였다. 그러나 지방 방송국에서 불쑥 솟아난 퀴즈 프로그램은 신선했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VOC 장학퀴즈'의 스폰서는 엘리트 학생복지를 생산하는 '제일모직'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이 프로그램의 사회자였다. 서른의 나이에 감청색 양복을 입고 손을 높이 쳐들고 박수를 유도하며 낭랑한 목소리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나는 방청객을 울렁거리게(?) 할 만큼 꽤 인기가 있었다고들 한다.

이 프로그램은 나중에 스마트 학생복지를 생산하는 선경합섬이 이어 받았다. 선경은 이 프로그램에 어떤 확신이 있어서인지 프로그램 테이프를 갖고 여러 방송사를 찾아다니며 프로그램 편성을 제안했다. 대전의 한 민방에서 먼저 받아들였다. 서울의 어느 방송사는 “지금은 퀴즈 프로그램이 먹히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듣기로는 1973년에 MBC에서는 선경의 뜻을 받아들여 프로그램을 편성하기로 했다. 타이틀도 그대로 '장학퀴즈'였다.

선경과 MBC는 당시 VOC에 프로그램 명칭 사용을 양허(亮許)해 달라고 요청했다.김종태 회장은 쾌히 응낙하여 MBC 장학퀴즈는 20주년 1,000회를 돌파할 만큼 장수를 했다. 스폰서는 젊은이들에게서 ‘기업 이미지 최고’의 성가도 얻었다고 한다. 차인태 아나운서는 17년 2개월간 진행을 했고, 이후 손석희 아나운서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장학퀴즈는 이어서 EBS로 건너가 2016년 5월에 1,000회를 돌파했다. 전일방송의 ‘장학퀴즈’는 이렇게 40여년을 이름을 떨치며 건재했다. 현재도 ‘세계로 가는 장학퀴즈’라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것을 보았다.

나는 VOC 장학퀴즈의 진행자이자 나중에는 섭외와 출제, 제작까지를 맡아보면서 수 십 권의 고교 참고서와 여러 질(帙)의 백과사전을 모아 놓고 출제를 위하여 머리를 싸맸던 기억이 새롭다. 참신하고 재밌는 문제, 유익하고 상식이 되는 문제, 누구나 나도 한 번 맞춰보고 싶은 문제의 출제로 얕으나마 상식의 부자(?)가 된 것이 마이크를 잡은 이상의 보람과 가치가 있었다고 본다.

지금도 우연한 자리에서 공개방송에 출연을 했거나 방청했던 1970년대 초반의 중고등학생을 만난다. 광주상고 2학년 때 출연했던 유모 군은 나중에 유명한 민방의 보도국장으로 정년을 맞았고, 백운동에서 병원을 차린 전문의도 있다. 서울 지상파 방송의 해설위원도 있다. 실업인도 있고 고위 공직자나 교육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이도 있다.

나는 이 프로그램에 출연(제작)한 지 40여년이 지나 고 김종태 회장의 깊은 뜻을 헤아리게 되었다. 고인은 아마도 천상에서 이 프로그램 출연자를 만나서 은연(隱然)히 애초의 뜻을 헤아리셨을지도 모른다.

'VOC 장학퀴즈'는 VOC 초대 국장이셨던 김종태 회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어 전국 방송계에 50년 가까이 장학퀴즈의 선풍을 일으킨 효시가 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고장 중고등학생들에게 폭넓은 지식과 교양을 심어 유능한 사회인으로 진출하게 하여 각계 각층에서 우리고장, 아니 나라의 밝은 미래를 위한 역군으로 성장하게 한 것은 한 선지자의 뛰어난 판단의 거창한 결과의 하나이다.

또한 기업과 방송의 멋진 동행의 소산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따뜻해진다. 지금도 30대 때의 내 이미지가 그때의 출연자나 방청객에게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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