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명 재판 회부…전국서 가장 큰 항일농민운동
형제봉 현장 영암농민운동의 성지로 승화시켜야
기념사업회 20일 창립총회…학술세미나 개최

‘영암농민항일독립운동’이 역사적으로 재조명되어 선열들의 고귀한 뜻과 희생정신이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형제봉 만세사건 현장을 영암농민운동의 성지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암농민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는 지난 20일 창립총회와 함께 학술세미나를 개최, 일본의 수탈에 항거한 선열들의 고귀한 항일독림운동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명예회복이 반드시 돼야 한다며 이 같이 주장했다.

이날 최윤호 영암농민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 준비위원장(유족회장)은 기념사에서 “86년 전인 1932년 6월4일, 의인의 고장 영암의 농민들이 분연히 봉기하여 일본에 항거했던 ‘영암농민항일독립운동’의 역사적인 재조명을 위해 우리는 이 자리를 함께 했다”면서 “당시 영암의 농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면서 ‘일본은 물러가라. 일본의 앞잡이인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농토매입 수탈을 중단하라‘”고, 수백 명의 농민들이 바쁜 농번기에도 농사를 포기하고 일본수탈에 항거했다“고 밝혔다.

최 준비위원장은 이어 “이제 역사를 바로잡는 차원에서 ‘영암농민독립운동’사건을 재조명하여 당시 만세를 불렀던 선열들의 고귀한 뜻과 희생정신을 월출산이 살아 숨 쉬는 기(氣)의 고장, 의인의 고장답게 영암의 정신으로 승화시켜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강조했다.

유인학 4.19혁명공로자회 회장은 “당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형제봉 만세사건을 ‘영암농민데모사건’으로 대서특필 했다”며 “당시 영암·강진 경찰서에 150여명이 연행됐고 재판 기록상으로 보면 항소법원에 74명의 숫자가 재판을 받았는데 이 기록은 전국적으로 가장 큰 항일농민운동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영암이 대한민국에서 1등으로 자랑스러운 것은 ‘영암농민독립운동’으로 선열들의 고귀한 항일독립운동의 희생정신이 헛되지 않도록 명예회복이 반드시 되어야 한다”며, “선열들의 피눈물 나는 항일투쟁이야 말로 민족정신을 기리고 영암을 의인의 고장으로 승화시키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고귀한 역사유산”이라고 강조했다.

유 회장은 또 “송기숙 소설가가 ‘암태도 소작쟁의’, 문순태 작가가 ‘타오르는 강’으로 장흥의 소작쟁의가 알려졌지만 영암농민운동은 전국적으로 가장 큰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알려져 있지 않아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또 김종술 전남서부 보훈지청장은 “영암농민항일독립운동은 1932년 6월4일 영암 형제봉에서 일제의 잔혹한 압박과 주민수탈 정책에 맞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항거하다 100여명이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농민독립운동이었다”며, “오늘 항일독립운동 기념사업회 창립총회와 학술세미나는 영암농민 항일독립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하여 그동안 역사의 그늘에 묻혀 있었던 형제봉 만세사건의 공적을 되살리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평가했다.

김 지청장은 이어 “국가보훈처는 여성, 의병 등 그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분들에 대한 포상기준을 완화하여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기준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며, “광주고등재판소 수형기록 조사 등 일제강점기 수형기록에 대한 전수조사, 수집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학술세미나에서는 전남대 김홍길 교수가 ‘1930년대 초반 영암항일농민운동의 재인식’, 민족문제연구소 박수현 소장은 ‘일제강점기(1920~30년대) 농민운동과 영암지역’을 주제로 발표했다. 토론에는 안종철 교수(전남대), 황민영 전농고문 등이 참여하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세미나가 끝난 뒤 행사에 참석한 4.19혁명공로자회 등 일행은 당시 형제봉 만세사건 현장을 둘러봤다.

한편 창립총회에서는 회장에 최윤호 유족회장, 감사에 오수근·한봉희, 사무국장에 최규옥 씨를 선임하고 8월 중에 보훈청에 법인설립을 추진, 본격적인 기념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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