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북면 행정리生 법무법인 이우스 대표변호사 민변 광주전남지부 지부장 전라남도 행정심판위원 소청심사위원

세상을 살다보면 애써 모른 척하고 넘기면 편할 상황을 만나게 된다.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의뢰인을 위해 변호하는 과정에서도 애써 모른 척하고 넘어가면 구체적 타당성에는 어긋날지라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는 경우를 접할 때가 있다. 실정법과 일반국민의 법 감정이나 상식에 괴리가 있을 때가 그런 경우이다.

물론 가장 안전한 방법은 법대로 하는 것일 것이다. 법률과 판례에서 벗어나게 되면 자칫 어설픈 정의감으로 사실관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편견에 기해 일처리를 그르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법적인 권리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변호하거나 대리하면서 기계적으로만 법을 해석하고 변론하기에는 너무도 난감한 상황에 직면하여 법과 도덕 사이에서 갈등할 때가 종종 있다.

몇 해 전에 자동차를 운전하던 중 교통사고를 내어 오토바이 운전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의 변호를 맡은 적이 있었다. 교통사고로 인한 형사사건은 피해자나 피해자의 유족과의 합의가 피고인의 양형에 참작할 가장 중요한 정상관계인데, 이 사건의 합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 교통사고로 사망한 피해자는 부인과 이혼하고 자신의 어머니 집에 기거하면서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어린 딸을 키우고 있었는데,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어린 딸은 하루아침에 생계가 막막한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피고인이 형사합의금을 지급하고 합의를 해야 할 사람은 실질적으로 피해자의 어린 딸을 부양하고 있는 할머니가 아니라, 피해자와 이혼하여 어디에 사는지도 잘 모르고 몇 년 동안 딸과 연락도 두절되어 살아왔던 부인이라는 점에서 변호인으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법적인 친권자인 이혼한 피해자의 부인과 합의하고 재판부에 피해자의 유족과 합의되었다는 정상자료만 제출하면 편할 일이다. 그런데 갑작스런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망연자실한 피해자의 노모와 당장 학비와 생활비 걱정을 해야 할 피해자의 어린 딸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혀 마음이 괴로웠다. 번거로움을 감수하고서 이혼한 부인과 피해자의 어머니를 모두 만나서 여러 차례 설명도 하고 읍소를 한 끝에 합의금을 양측이 서로 적정액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원만한 합의가 이뤄졌다.

이 사건에서 변호인이 주선하고 노력한 합의는 법적인 합의와는 거리가 먼 사회윤리적인 합의라는 생각이 든다. 이와 같은 사회윤리적 합의시도는 이 사건에서처럼 합리적인 양보가 이뤄지면 아름다운 일이 되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변호인으로서 주제 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양쪽으로부터 모두 욕만 얻어먹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이 사건에서처럼 생존부모의 양육능력, 자녀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단독친권자가 사망한 경우 이혼 당시 자녀의 복리를 위해 친권자가 되지 못했던 전 배우자의 친권이 당연 부활하여 친권자가 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다행히 민법이 개정되어 단독친권자가 사망하거나 친권을 상실한 경우 가정법원이 필수적으로 생존하는 전 배우자의 양육능력과 양육상황을 심사하여 친권자를 지정하고, 친권자로 부적절한 경우에는 조부모 등 적합한 사람을 미성년자의 후견인으로 선임하도록 개선되었지만, 법 개정 이후에도 가정법원이 생존하는 전 배우자의 양육능력이나 양육상황을 객관적으로 심사하는 기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남는다고 하겠다.

생존 배우자가 지금까지는 사망하기 전의 단독친권자 때문에 미성년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생존하는 유일한 친부모로서 잘 돌보겠다고 주장한다면 그 주장이 사망보험금이나 위로금을 노린 인면수심의 행위인지 진정한 양육의사의 표현인지 심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친권상실의 판단기준과 더불어 단독친권자의 사망시 생존하는 전 배우자의 양육의사와 능력, 양육상황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구체적 사실관계에서의 고민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변호사로서 구체적 사건에서 당사자들과 상담하다보면 법률의 규정에 대한 해석이나 현재의 대법원 판례의 내용에 비추어 패소가 예상되지만, 구체적 타당성의 측면에서는 판례변경의 필요성이 있거나 최소한의 합리적인 조정이라도 이뤄졌으면 하는 사건을 만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변호인이 법의 형식논리에만 매몰되지 않고, 주변의 어려움이나 구체적 타당성을 애써 외면하지 않고 수고로움과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는 노력이 이어진다면 법조인에 대한 신뢰도 높아지고 우리사회의 건강성이 회복되고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당사자의 구체적 사정을 귀담아 들어주는 것은 번거롭고 법률과 기존의 판례대로만 접근하는 것은 편리한 일이니 부지불식간에 편리함에 익숙해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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