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법무법인 이우스 대표변호사 민변 광주전남지부 지부장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 보상심의위 전라남도 행정심판위원 소청심사위원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은 작품 자체가 함의하고 있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 공감하게 되는 대작이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 비참한 사람들, 불행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연민, 바리케이드로 상징되는 자유와 정의를 향한 끊임없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 미제라블>에서 주인공인 ‘장발장’은 돈 없고 사회적 배경도 없어서 가혹한 옥살이를 하는 사람들의 상징으로 통한다. 그러나 장발장은 소설 속에 있는 허구의 존재가 아니라 현재 우리사회에서도 현대판 장발장이 실재하는 현실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경미한 생계형 범죄를 저질러 벌금형을 선고받고 벌금을 감당하지 못해 교도소에 수감되는 ‘현대판 장발장’들이 적지 않게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심장질환을 앓던 사람이 벌금 150만원을 납부하지 못해 노역장에 유치된 지 이틀 만에 숨지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평생 장발장을 추적하는 인물이 자베르 경감이다. 자베르는 범죄에는 사정이 있을 수 없고, 법의 집행에는 동정이 있을 수 없으며, 범죄자의 갱생은 있을 수 없다고 믿는 냉혈한으로 그려진다. ‘현대판 장발장’을 낳는 안타까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법의 집행에는 동정이 있을 수 없다는 자베르 경감과 같은 대응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현재 우리사회가 ‘현대판 장발장’을 막는 제도개선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전체 벌금형 중 500만원 이하가 97~98%에 이른 사정을 감안하면 노역장 유치처분을 받은 상당수가 벌금을 납부할 형편이 되지 않은 경미한 범죄자들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난 1월 7일부터 형법과 형사소송법이 개정되어, 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대한 집행유예의 도입, 벌금 분납과 연납의 법제화, 신용카드사 등 납부대행기관을 통한 납부방법이 새로 도입된 것은 의미 있는 제도개선의 노력이라고 하겠다. 징역형을 선고할 사건보다 경미한 범죄라는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한 것이, 벌금을 낼 형편이 안 되는 피고인들에게는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하는 것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하는 불합리가 있었다. 피고인들은 벌금형보다 차라리 징역형(집행유예)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는 것이 슬픈 현실이었다. 벌금형의 집행유예 제도 도입으로 벌금형이 징역형보다 가혹한 결과를 초래하는 문제점을 개선하고, 적절한 형벌권 행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시민단체 인권연대가 중심이 되어 2015년 2월경 설립한 ‘장발장은행’도 현대판 장발장을 막기 위한 사회적 노력의 반영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싶다. 개인과 교회 등 민간단체 4천여명의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장발장은행’은 기존 은행과 달리 담보, 신용조회, 이자가 없이 사회적 취약계층인 벌금 미납자들에게 최장 6개월 거치, 1년 균등상환 조건으로 최대 3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레 미제라블>은 장발장이 굶주린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쳤다는 이유로 19년의 감옥살이를 하고도 차별과 냉대에 시달려야 하는 시대를 고발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와 무전유죄로 상징되는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삶의 현실은 비단 19세기 프랑스에서 있었던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21세기의 세계 곳곳에서 현재하는 현실이다.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를 세상에 내놓은 지 한 세기 반(약 1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시대상황이 바뀌고 사법제도가 발전되어 왔음에도 우리 사회에서도 ‘레 미제라블’로 호칭되는 사회적 약자들의 소외와 고통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벌금형은 부자들에게는 형벌로서의 의미가 전혀 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필요 이상의 가혹한 형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계속적으로 벌금형과 노역장 유치제도에 대한 개선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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