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구림서 낳고 영보에서 자람 전 KBS광주총국 아나운서 부장 전 호남대학교 초빙교수 국제로타리3710지구 사무총장

곧 5월이다. 눈록(嫩綠)이 점차 짙어져 사방이 신록으로 청신하면 고을마다 축제가 잇따라 펼쳐진다. 지방자치제가 되면서 시·군마다 경쟁적으로 열리고 있다. 어떤 축제는 향토성을 잘 살려 의미 있는 판을 마련하지만 여기저기서, 너도나도 개최하다 보니 벼라별 축제가 열리고 있다.

5월 5일은 누구나 ‘어린이날’을 생각하지만 영보 사람들은 지금 ‘풍향제-영보의 날’을 먼저 떠올릴 것 같다. 내 나이 30대 중반, 10년 가까운 방송경력에 활발한 활동을 하던 때 마을의 상록수 같은 지도자이던 고 최규용 회장(초대 풍향제추진위원회)과 의기투합하여 ‘풍향제’의 깃발을 올렸다. 고인은 뚜렷한 소신과 필생의 사업으로 풍향제를 생각했다.

풍향제를 발의(發意)한 뜻은 첫째가 형제봉 독립만세사건을 기리는 것이고, 그 다음이 효도와 쇠락해가는 미풍양속의 진작, 셋째는 애향심을 고취하는 데 있었다. 40여 년 전의 기억으로는 고인과 뜻을 함께 한 또 다른 분은 교직자였던 고 신용승 선생님(전 덕진면장)이었다.

영보는 5백여 년의 역사가 있는 전통의 고장이다. 동성동본을 중심으로 한 혈연공동체를 형성한 영보는 예부터 미풍양속이 오롯하고 전통문화가 찬연했으나 근대화의 여파로 자꾸 쇠락해 가는 현실을 타개하고자 이 제전을 고안했다. 5월로 때를 잡은 것은 농민운동에서 발원한 영보의 형제봉 만세사건이 유산(遊山)을 가장해 영보의 뒷산 형제봉에서 일어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영암군에서 영암농민 항일독립운동 기념사업회가 발족되어 이 활동의 재평가와 함께 관련 인사나 후손들이 의당한 보훈혜택을 받도록 하자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고인(故 최규용)은 구천에서도 이를 반기고 계실 것 같다.

풍향제는 또 학업성적이 우수한 주민자녀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생활이 어려운 세대에는 구휼미를 전달하기도 하였다. 지금이야 사회복지 제도의 폭이 넓어 정부로부터 여러 혜택을 받지만 40여 년 전에는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리라.

가장 큰 표창은 형제봉 독립만세 사건 후손에게 패(牌)를 올리며 높은 뜻을 기리는 것이었다. 영암농민 항일독립운동 기념사업회도 풍향제의 40주년에 때를 맞춰 발기하게 되었다.

풍향제는 1979년 5월 5일에 막을 올렸다. 고향 주민은 물론이고 출향인사들의 열화와 같은 참여가 있었다. 나는 첫 해부터 몇 년간 계속 기획과 진행을 보았다. 어느 해는 서울에서 대절버스로 고향을 찾고, 영보정 앞마당에서는 주민들이 농악을 치고, 밤하늘에는 폭죽이 터지고... 이어서 청사초롱 행진과 노래자랑이 어우러진 5월4일과 5일은 향토축제의 절정이었다. 감격과 감동의 도가니였다.

내 고향 옛 모습 사진전 앞에서 주민들은 떠날 줄 몰랐고 국창 조통달 선생이나 윤진철 명창, 김향순 명창, 최혜정, 김옥란 명창에 아쟁의 명인 김용철 선생 등 광주·전남의 유명 국악인이 훈풍이 부는 영보정 정자에서 토해내는 소리는 모든 이의 가슴에 지금도 진한 추억으로 남아 있으리라. 풍향제는 영보 사람들의 ‘홈 커밍 데이’이기도 하다.

충남대 국사학과 박찬승 교수는 ‘20세기 전반 동성마을 영보의 정치 사회적 동향’이라는 논문에서 “오늘 날 영보는 ‘풍향제’를 통해 마을주민 그리고 심지어 출향민들까지도 하나로 묶는 결속력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영보마을의 공동체적 결속력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그 생명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목포대 홍석준 교수는 2003년 10월 21일 학술심포지엄에서 ‘마을축제를 통해서 본 지역정치와 정체성, 풍향제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통해 풍향제의 의미와 가치를 조명할 만큼 의미 있는 마을축제가 되었다.

대학교수들은 풍향제를 분석 연구하여 논문을 쓰는가 하면 1988년에 KBS에서 발행한 ‘제작 핸드북’에서는 10년 만에 영보 풍향제를 전국의 90대 향토문화축제로 올렸다(p.361) 한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1991년에 발행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전28권)의 제15권 ‘영암군’편에는 ‘풍향제’를 한 항목으로 뽑아 소개했다(p.594)

1979년 제1회 행사로부터 2018년 40주년에 이르기까지 이 행사를 연이어 개최해주신 관계자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하고 올해 40주년과 영보 항일운동 기념사업회 발족으로 풍향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았으면 한다.

지금도 봉독되고 있는 축문은 내가 40년 전 지은 그대로 이어져오고 있다. ‘… 해마다 5월 5일, 제를 올리고 비옵니다. 연년세세 애향애족을 진작하고 풍년을 구가하기를 소원하오니 부디 강림하시어 흠향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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