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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2장 필묵으로 꽃피운 예술혼■ 원로 서예가 류근학
2016년 한국미술명감에 수록
붓을 놓을 때, 욕심을 버리다
  • 김점수 시민기자=시종
  • 승인 2018.04.1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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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작품 ‘견현사제’ 옆에서

8남매의 장남으로 집안을 세우고 결혼해서는 8남매의 둥지가 되어 살다가 하얗게 새버린 인생의 두 번째 자리에서 서예가로 새 인생을 살아온 성은(誠隱) 류근학 서예가(89·신북면 중촌마을)

“살아오면서 남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좋다하더라고 해서 따라가서 한 것도 없지만 서예에는 유독 자연스럽게 마음이 갔다. 처음에는 선생과 글 잘 쓰는 사람의 글자체를 따라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 마음대로 글자의 의미를 되새기며 많은 실패를 거쳐 나만의 글자체를 완성하자 각종 서예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고 류 서예가는 말한다.

그가 75세가 되던 해에 접한 서예는 동생들과 자식들 뒷바라지, 농업에서의 은퇴 등 인생에서 짊어졌던 짐을 모두 벗고 마음이 비어있을 때 찾아온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남아있는 열정을 모두 쏟아 부으며 생기 넘치는 필력으로 각종 미술대전에서 좋은 결실을 거두자 더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이름을 남겨야겠다는 욕심, 유명 작가가 되고자하는 욕심, 추천작가가 돼서 심사위원을 맡는 욕심 등이 생겼다. 늦은 나이에 목표에 닿기 위해 밤을 새며 혼자 자신만의 글씨체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던 수많은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늦은 꿈은 제45~48회 전남미술대전 서예부문 입선 및 특선 다수, 제9회 대한민국아카데미미술대전 삼체상, 2012 대한민국기로미술대전 초대작가, 한국향토문화미술대전 초대작가상, 대한민국국제기로미술대전 초대작가상 등으로 실현됐다. 특히 2016년에는 ‘한국미술 작가명감’에 등재돼 화제가 됐다. 하지만 작가명감에 등재되기 전인 2013년 원로서예가로 남기로 하고 모든 욕심을 지웠다.  

붓을 놓을 때를 알다

그는 왕휘지 필체를 주로 공부했으며 주로 해서, 행서, 초서 3체상에 집중해 실력을 쌓았다.
“해서, 행서, 초서, 예서, 전서 등 5체상을 다 배우고 쓰는 것이 서예의 완성인데 3체상까지 끝내 아쉬움이 남는다”면서 “좀 더 젊었을 때 시작했으면 선생도 되고 작품도 팔면서 생활할 수도 있었겠지만 늦은 나이에 공부하고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으니 만족하는 것도 인생의 맛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80세가 넘으면서 갈수록 정신력과 기력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고 2013년에 들어서며 이제 더 이상 서예를 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먹 갈기를 멈췄다. 더는 써봤자 노필밖에는 안되고 기와 힘이 넘치는 글자체가 안 나온다는 것.

후진양성에도 뜻이 있었지만 노쇠한 필력으로는 누구를 가르칠 수 없고 또 앉아서 가만히 있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중촌마을 인근 반남과 신북의 경로당 등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서예는 한자도 공부해야 하지만 정신력과 체력이 조화를 이뤄야 붓끝이 살아나면서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 이제는 마음의 붓으로 삶을 느끼고 써내려 가고 있다”면서 “더욱 정신과 마음이 건강하도록 항상 움직이며 남들과 함께 하며 자유롭게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류근학 원로 서예가는 신북면 모산마을에서 태어나 중촌으로 이사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나주 반남초, 영암중(1회)을 졸업했으며 영암향교 장의로도 활동했다. 형제 서예가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동생은 광주에서 서예가로 활동하고 있는 류수영 씨다.
 

김점수 시민기자=시종  kjs05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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