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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처럼 화사한 모습을,
덕진면 노송리 송외마을生
전 광주시교육청 장학사
전 광주 서광초등학교 교장
한국전쟁피해자유족 영암군회장

지난 겨울은 우리 고장에도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혹한이 오기도 했다. 그렇게도 추웠던 시련을 봄의 화신은 결국 이겨냈다. 섬진강 매화축제, 영취산 진달래축제, 구례 산수유축제, 진해 군항제는 오는 봄을 재촉했는지 이젠 완연한 봄이다.

구림으로 꽃구경 가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보기드믄 장관이다. 고목에서 핀 연분홍 벚꽃은 자연의 신비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금년 스물여덟 번 째 맞는 「영암왕인문화축제」는 한층 더 성대하다. 꽃 축제 중의 으뜸은 벚꽃 축제이리라. 그것은 어떤 꽃보다 화려하기 때문이다. 벚꽃의 꽃말은 순결, 절세미인, 연인의 매혹을 상징한다. 이 꽃은 일제히 피었다가 눈처럼 흩날리면서 미련 없이 나무 잎에게 자리를 양보하면서 뒤끝 없이 아름답게 낙화함 또한 일품 아닌가?

축제의 주인공 왕인박사는 백제 14대 근구수왕 때에 영암군 군서면 성기동에서 출생하였다. 여덟 살 때에 월출산 주지봉 기슭에 있는 문산재에 입문했고, 문장이 뛰어나 18세에는 오경박사에 등용되기도 했다. 약관 32세 때, 일본에 초청되어 태자의 스승이 되었고, 도공(陶工), 야공(冶工), 와공(瓦工) 등 많은 기술자들과 함께 가서 그들에게 기술을 전달케 하였으며, 논어와 천자문 등을 전수하여 일본의 비조(飛鳥)문화(가시어 아스카)의 원조로 그들 문화예술을 꽃피우는데 공이 크다.

왕인박사 탄생지 구림(鳩林)의 ‘鳩’는 도선 전설에 비춰보면 비둘기이다. 그러나 ‘鳩’는 ‘모인다. 편안하다’의 뜻도 있다. 풍요로운 들판, 조수가 열어 주는 뱃길과 수산물, 아침 해가 천황봉에 솟고 저녁노을이 상은적산(장천리에 있는 산)을 적시는 천혜의 승지 구림은 편안한 땅이다. 월출산에서 달돋이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도 벚꽃이 만발한 밤의 도갑사 골짝에 흐르는 쾌청한 물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그날 밤의 별은 유난히 빛났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봄바람은 꽃잎을 날려 진눈깨비로 변화시켰으나 춘설이라는 낭만의 느낌은 들지 않았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은 점점 흘러 초조해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꽃길을 외롭고 쓸쓸히 걸었다. 매일 보내는 연서(戀書)가 배달 사고라도 났다는 말인가? 나는 그 여인에게 된 바람을 맞았다.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도 얄밉게 느껴졌다. 

나는 첫 눈에 그 여인에게 반했었는지? 달을 쳐다봐도 그 여인의 얼굴이고, 별을 쳐다봐도 그녀였다. 밥을 먹으면서도, 잠을 자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그 여인의 얼굴이 아른 거렸다. 금방 만났는데도 또 만나고 싶었다. 나와 결혼은 해 줄까?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 밀당을 했다. 우리의 데이트 장소는 지금 벚꽃이 만발한 꽃길이었다. 데이트가 끝나는 시간은 하숙집에 키우는 거위울음이 신호가 되었다. “아, 어제 저녁에도 그들은 데이트를 했는가 보네.” 아침이면 우물가 빨래터에서 그런 이야기가 회자되었던 모양이다. 조그마한 초등학교의 유일한 총각선생이 동네에 살고 있으니 아가씨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기를 3년, 우리의 사랑은 결실을 맺었다. 나의 벚꽃 길에서의 추억거리다. 아내와 지금도 그때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이렇게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과 사랑을 안겨 준 고향에 많은 향수를 느끼고 있었지만, 공직생활은 그렇지를 못했다. 지난날을 회상하며 고향에서 얽힌 나의 이야기들을 고향신문에 올려 독자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한국전쟁 당시 피해자들의 모임인 영암군유족회에 참여하여 4년 동안 관심을 가졌었다. 작년 1년 동안에는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짬을 내서 고향 마을의 유족들을 만났다.

금년 3월에 한국전쟁피해자 영암군유족회 창립총회가 열려 유족들이 나를 회장으로 선임해 주었다. ‘유족들을 위해서 어떤 일부터 할 것인가?’ 고민거리가 생겼다. 170여 명이 넘는 회원들의 부모님, 형제·자매님의 진실을 규명하는 일을 돕겠다는 결심을 했다.

앞으로 광주 트라우마(심한 충격을 받아 생긴 마음의 상처)센터의 상담원들을 초청해 유족들의 한풀이 방법을 연구하기로 하고 유족들끼리 진실규명의 절차와 방법도 논의할 계획이다.
나의 미력한 힘이나마 한국전쟁으로 인한 유족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 벚꽃처럼 화사한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신중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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