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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강산의 국제공항…조국의 땅을 밟자 가슴 뭉클현의송 북한농촌 방문기<1>
북한 지도원이 앞뒤 탑승해 사진촬영 금지 당해
남북이 4월 정상회담 개최를 비롯해 정상 간 핫라인을 설치하는 등 한반도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획기적인 합의가 이뤄져 그 어느 때보다 남북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앞서 열린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사상 첫 올림픽 개회식 남북한 공동 입장과 27년 만에 결성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평화 올림픽’을 상징했고 세계에서 환호를 보냈다.

본지는 이 같은 평화를 향한 여정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과 북한농촌의 실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차원에서 학산면 광암마을 출신 현의송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공동대표의 ‘북한농촌 방문기’를 연재한다. 현 대표는 지난 2007년 3월 한 종교단체의 ‘남북나눔운동’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편집자 주> 

 

2007년 3월 하순 북한 3박4일 여행길에 나섰다. 내가 다니는 남서울은혜교회에서 ‘남북나눔운동’의 일환으로 북한 농촌주택 개량과 어린이를 위한 분유를 지원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었다. 또 일반 교인도 함께 북한의 농촌현장을 수차례 다녀왔다는 말을 현직에 근무할 때는 참여하지 못해 못내 아쉬웠으나 이제 퇴직도 하고 시간도 여유가 있어서 참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남북나눔운동’은 1992년 한국기독교회협의회 총무였던 권호경 목사 일행이 방북해서 평양 주석궁에서 논의하면서 부터 시작되었다. 통일을 염원하던 믿음의 사람들이 이 운동으로 통일운동의 불을 지폈다. 그리고 구호에 머물지 않고 남북 교류의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사단법인 남북나눔운동은 1992년 12월 7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남서울교회에서 기독교계 중심으로 발기인대회를 열면서 출발했다. 1993년 홍정길 목사의 주도로 보수와 진보 가운데 온건한 분들이 중심이 되어 통일만큼은 교회가 통일된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하고 이 모임을 시작하였다.

심양공항

인천공항을 출발한 대한항공기는 1시간 반 만에 심양공항에 도착했다. 바로 심양에 있는 칠보산호텔에서 북한사람이 운영하는 중국요리 식당에서 점심을 했다. 북한 여종업원들은 한결같이 모두 미인들이다. 점심 후 심양 동관교회를 방문하고 기념예배를 마친 뒤 환영공연을 관람했다. 교회라고 하지만 경건한 분위기와는 조금 거리가 먼 듯했다.

이 교회를 설립한 선교사 죤로스 목사는 스코트랜드 사람이다. 1872년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 스코트랜드 장로회의 파송 명령을 받고 사모와 함께 엔타이를 경유 잉코우 지구에 도착하여 중국 동북지구의 전도와 선교사역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1년여 간 중국 지식인들로부터 중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그들에게는 복음을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다. 교회의 발전과 신도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죤로스 목사는 중국인 유전약에게 목사 안수식을 했다. 그리고 교회의 치리와 복음사역을 중국인들에게 맡겨 자체적으로 선교활동을 하도록 했다. 그래서 영국의 장로회는 죤로스 목사를 바울과 같은 전도자로 칭송을 하고 있다고 한다.

1882년부터 죤로스 목사는 한글로 성경을 번역하여 인쇄해서 한반도로 보내 조선의 전도사역을 전개했다. 그는 1910년 쇄약한 몸으로 영국으로 귀국했으나 1915년 스코트랜도 고향에서 소천 했다. 심양 동관교회는 죤로스 목사를 추모하기 위해 예배당 강대상 중앙에 기념비석을 세웠다.

그날 오후 심양공항에서 소지한 핸드폰은 모두 중국에 파송된 선교사에게 임시 보관하고 고려항공 비행기에 탑승했다. 입국 탑승권의 좌석 번호 등 기재는 모두 수기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륙하여 30여분 지나 압록강을 지난다는 기내 방송이 나오고, 30분 정도 더 지나자 평양공항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공항에는 또 다른 소형 항공기가 한 대 보일 뿐 국제공항이라고 하지만 적막강산이다. 공항 청사를 향해 걸어가면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잃어버렸던 조국의 땅을 밟은 감회가 뭉클했다. 공항에서는 우리 일행을 VIP(5명)와 일반으로 나누어 입국 심사를 받았다. 그리고 귀빈 대기실로 안내를 받았다. 귀빈은 어떤 절차와 검색도 없이 통과되고 일반인은 매우 철저한 검색을 받아야 해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노트북 컴퓨터는 매우 심한 검색과정을 거쳤다.

1시간 이상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중형 버스 두 대에 분승한 우리 일행은 평양 시내를 30분 정도 통과한 뒤 보통강 호텔에 도착했다. 시내에는 버스가 가끔 보이고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버스 두 대의 앞과 뒤로 벤츠 승용차 두 대가 호위를 하며 따라왔다. 버스 한 대에 북한 지도원이 앞과 중간, 맨 뒤에 3명이 탑승하고 감시한다. 일어나지도 못하게 하고, 사진 촬영도 금지 당했다.

보통강 호텔

공항에서 30분 정도 걸려 보통강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평양시 평천 구역 보통강 기슭의 안산다리 옆에 위치해 있다.  김일성 주석이 ‘보통강여관’이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연 건축 면적은 2만7천500여㎡이고 9층짜리 건물이다. 1층은 행정 관리용으로 사용하고, 2층은 책방, 상점, 당구장 등을 비롯한 봉사시설과 문화오락시설이 있고, 3층 이상은 대부분 객실로 되어 있었다.

호텔의 수용능력은 320여 명이라고 한다. 호텔에는 현대적 설비를 갖춘 식당이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연회도 열린다고 한다.

호텔 밖으로 나가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호텔 1층에 있는 편의점 비슷한 매장은 제품 대부분이 일본산 과자와 식음료로 채워져 있었다.

북한 측은 이 호텔에서 오후 6시경 우리 일행 모두와 북한 측 인사들 포함해서 환영회를 개최해 주었다. 그런데 환영회 비용은 모두 우리가 부담을 하였다. 지도원 일행 10여 명과 민화협 대표 김씨가 참석했다. 중심 테이블에 민화협 대표 김씨와 남측 대표로 홍 목사 일행 8명도 함께 앉았다. 필자의 바로 옆에 앉은 김 씨는 남측에 젖을 짜는 유산양이 있을 것인데 북쪽에 초지가 많으니 유산양을 보내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호기심으로 거리로 나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른 시간임에도 지도원들이 감시하면서 멀리는 못 가게 한다.

그 당시 우리나라 대북지원 관련 민간단체는 56개가 있었는데 이들 단체는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었다. 대부분 평양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나 ‘남북나눔’ 만은 농촌지역과 농민을 찾아 나섰다. 아마 농촌지역을 찾아 지원하는 남쪽의 최초의 민간단체이었을 것이다. <계속>

학산면 광암마을 生
전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
전 농민신문사 사장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공동대표

현의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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