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진면 노송리 송외마을生 전 광주시교육청 장학사 전 광주 서광초등학교 교장 한국전쟁피해자유족 영암군부회장

나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입니다. 몇 달 지나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됩니다. 졸업 기념으로 꿈에 그리던 대도시 광주로 수학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서 서툴지만 반 친구들끼리 무더운 여름날에 구슬땀을 흘리며 허리가 휘도록 보리도 베어 돈을 모았습니다. 수학여행 경비를 어렵게 마련했습니다. 우리가 번 돈 말고도 내야할 돈이 없어 같이 가지 못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설빔 같은 새 옷도 엄마가 사주셨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용돈도 받았습니다. 몇날 며칠 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읍내로 나가는 길은 황톳길에 자갈을 깔아놓아 버스가 몹시도 덜거덩거렸습니다.

그러나 모처럼 친구들과 함께 탄 버스는 너무도 신나고 즐거웠습니다. 거의 하루를 달린 버스는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목적지 광주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번쩍번쩍한 도시의 풍경은 뭍에 오른 거북처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연발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시끌벅적한 역전부근 여관에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하기 전에 자유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차 조심, 사람 조심해. 한 시간 후에는 돌아와야 한다.”

담임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선생님 말씀은 듣는 둥 마는둥 하고 거리 구경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수많은 차들, 바삐 오가는 사람들, 길 옆 가게에 진열된 신기한 물건들은 시골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뿐이었습니다. 넋을 잃고 구경하는데 리어카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웅성거리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일까? 호기심이 생겨서 구경꾼들 속에 끼어들었습니다. 한 아저씨가 리어카의 판자 깔판 위, 나무통 속에 있는 흰색 나뭇가지와 검은색 나뭇가지를 빼어들고 두 손으로 요술을 부리듯 휘젓다가 뭉치고선 펴기를 반복하였습니다. 흰색이나 검은색 쪽에 돈을 걸게 한 뒤, 어느 색이 나올 것인지를 알아맞히는 돈 따먹기였습니다. 참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였습니다.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별 장사도 다 있네. 한 번 해 볼까?”

“안 된 당께. 아니 한번 해봐!”

친구들도 덩달아 이 소리 저 소리들이었습니다.

“잘 봤다. 못 봤다. 말이 말씀 마시고, 돈 놓고 돈 먹기요!”

아저씨는 나뭇가지로 재주를 부리듯 움직였습니다.

“자! 어서 걸어보세. 요렇게 좋은 시상이 어디 있어. 돈 한 번 먹어 보세.”

어떤 사람은 나뭇가지 밑에 돈을 붙여 따먹기도 하고 잃기도 하였습니다. 난 곧장 돈을 딸 것 같았습니다. 용돈을 조금 꺼내 검은색 나뭇가지 밑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 밀었습니다.

“수리수리 마술이. 수리수리 마술이.”

통을 흔들어 대더니 아저씨가 눈을 지그시 감고 흰색 나뭇가지를 꺼냈습니다.

‘틀림없이 검은색 나뭇가지였는디, 왜 흰색이야.’ 나머지 용돈을 다시 흰색 나뭇가지에 걸었습니다. ‘이번에는 질 수 없다.’ 흔들어대는 나무통을 눈이 뚫어지게 살펴보았으나 아저씨가 꺼낸 나뭇가지는 검은색이었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어머니께 탄 용돈을 전부 잃으니 눈앞이 캄캄해지고 다리가 덜덜 떨렸습니다. 그 아저씨가 너무 미웠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아저씨를 쳐다보니 딴 돈들을 윗옷 호주머니에 넣고 허리를 굽혀 좌판 위의 나뭇가지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잃은 돈을 찾아야 한다.’ 생각이 순간적으로 여기에 미치자 아저씨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잽싸게 낚아채 뒤도 돌아다보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뛰었습니다.

“저 새끼 잡아라!”

그 아저씨의 외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올 때까지 달렸습니다. 어느 건물 담 사이에서 잔뜩 겁에 질려 숨어있기를 20여분, 담임 선생님의 화난 얼굴이 퍼뜩 떠올라 더 이상 거기에 숨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더듬거리며 왔던 길을 찾아 하숙집으로 가는데 어디선가 그 아저씨가 나타날 것만 같아 두려웠습니다. 가슴을 조이며 하숙집에 들어서니 갑자기 담임 선생님이 두 눈을 부릅뜨며 나의 목덜미를 잡아들고 뺨따귀를 수차례 때리셨습니다.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장교출신 담임 선생님의 무서운 꾸중에 앞이 캄캄했습니다.

“야바위꾼에게 속아 돈을 잃어? 이 병신 같은 놈아! 날마다 반성문 써! 졸업할 때까지 화장실 청소는 네 몫이다!”

담임 선생님은 계속 훈계를 하시다가 빼앗은 돈을 야바위꾼에게 돌려주라는 거였습니다. ‘야바위꾼을 어떻게 찾으라고, 내 돈 내가 찾았는데….’

즐거운 수학여행을 왔는데도 용서할 기색 없는 담임 선생님의 눈초리에 저녁밥은 모래알을 씹는 것 같았습니다. 친구들은 힐끔힐끔 쳐다보며 놀려대니 숨이 막히고 죄인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담임 선생님 말씀대로 이튿날 야바위꾼을 찾아가 돈을 돌려주니,

“야, 이 도둑놈아 가져가! 다음에는 그러지 마라. 잉!”

눈을 부릅뜨며 돌려보내는 거였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고마웠습니다.

훌쩍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제 일 같은데 고희(古稀)가 코앞입니다. 요즈음 자고 나면 깜짝 놀랄 뉴스로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여야할 고위직 간부의 부동산 투기의혹? 탈세혐의? 친인척 비리? 상상하기 어려운 일에 연루되어 그 야바위꾼 같은 진실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걸 모른척하는 사람, 안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싸잡아 검찰에서 조사하는 세상입니다. 확실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 때, 야바위꾼의 부릅뜬 눈이 어른거립니다. 고인이 되신 담임 선생님의 깡마른 화난 얼굴이 보입니다. 선생님!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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