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북면 행정리生  법무법인 이우스 대표변호사  전라남도 행정심판 및 소청심사위원,  민변 광주전남지부장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을 국가적인 불행이고 안타까운 일이라는 일부의 시각이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은 한비자에서의 ‘법불아귀’(法不阿貴)나 헌법교과서의 ‘법앞에 평등’이 공허한 명목상의 내용이 아니라 우리사회 현실에서 실질적으로 확인된 것이고, 더 성숙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사회로 가기 위한 진통의 과정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한비자에서 귀한 사람은 고귀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춘추전국시대 당시의 특권층인 귀족 등을 말하는데, 이를 현대적 의미로 해석한다면, 법은 특권층, 전직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아첨하지 않고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의미로 새겨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가’는 서민을 올려 귀족과 마찬가지로 ‘예’로써 다스리자는 것이고, ‘법가’는 귀족을 내려 서민과 마찬가지로 ‘형’으로써 다스리자는 것인데, 법가의 출현이전에는‘예'는 서민에게 내려가지 않고,‘형'은 대부에게까지 올라가지 않는다는 특권의 논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지난 몇 년간의 대한민국은 기원전 춘추전국시대의 법가출현 이전의 상황이 먼 과거의 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2012년 12월 18대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발생한 국가정보원의 불법적인 정치개입 사건은 우리사회 민주주의 미성숙성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국정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정치개입은 맞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라는 제1심의 판결을 두고, 당시 현직 모 부장판사는 지록위마 판결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지록위마의 출전은 사기 진시황본기이다. 중국 진나라 진시황이 갑작스럽게 죽자 환관 조고는 당시 황태자였던 부소를 죽이고 어린 호해를 2세 황제로 옹립하고,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하였는데, 신하들이 조고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하지 못하였다는 데에서 유래된 고사성어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제로 인정하게 만든다는 의미의 ‘지록위마’는  흑백이 뒤바뀌고 진실이 숨겨지는 상황에서 어김없이 인용되는 문구이다. 오죽하면 교수신문이 우리사회에 온갖 거짓이 진실인양 가득하고 정부가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을 비판하는 의미에서 2014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를 선정했을까 싶다. 국정원 직원들의 조직적인 댓글 등 정치개입 사건과 그에 대한 수사와 재판상황은 권력자의 뜻에 따라 거짓이 진실이 되는 모습이었지만, 진실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부단한 노력과 우여곡절 끝에 최근에는 그동안 가려졌던 은폐된 진실들이 조금씩 햇빛을 보고 있다.

필자는 지난 18대 대선 과정에서 제기된 국정원의 댓글공작사건 수사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다는 양심선언을 한 당시 수서경찰서 권은희 수사과장이 오히려 모해위증으로 기소된 사건을 변호하였다. 2015년 8월경 처음 변호를 시작할 때는 마음이 무거웠다. 당시 현직 대통령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통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건일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의 보수화 흐름이 팽배하고 합리적인 문제제기가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유무죄에 대한 결론을 떠나서 권은희 수사과장이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기억과 다르게 허위를 증언한 사실이 없기에 더더욱 모해의 목적은 인정되기 어렵다는 기본전제에서 역사의 법정에 기록을 남겨놓는다는 마음으로 변호를 시작했었다. 현재 권은희 수사과장은 이 사건이후 현실정치에 입문하여 재선 국회의원이다.

현실 정치인으로서 권은희에 대해서는 호불호와 공과에 대하여 평가가 엇갈릴 수 있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필자는 수사과장 권은희의 양심선언으로 인해 자칫 은폐될 뻔했던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이 진실을 마주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오롯이 평가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제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재판정과 광주사무실을 1년 동안 스무 번에 걸쳐 왕복하면서 경찰청장, 서울경찰청장, 서울경찰청 경찰관, 수서경찰서장, 수서경찰서 경찰관 등 13명의 증인신문을 하고 장시간의 프레젠테이션을 거친 최후변론 끝에 지난 2016년 8월26일 검찰이 기소한 4가지 공소사실 전체에 대해 무죄선고를 받았다.

최근 밝혀지고 있는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를 전용해 댓글 아르바이트를 고용하여 국정원이 댓글공작을 조직적으로 하고 이를 은폐한 정황을 보면서 국가정보원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와 국가정보기관으로서의 올바른 위상 찾기는 프랑스 계몽사상가 몽테스키외가 국가와 정부를 구별한 이후에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가 당연한 갖춰야 할 품격의 문제이다.

오히려 국가정보원의 올바른 자리매김은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기저에서 진보진영보다는 보수진영에서 더 지켜야 할 가치일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한‘정부'를 지탱하는 '정부'정보원이 아니라, 영속하는 '국가'인 대한민국를 지키는 '국가'정보원이어야 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가치이다.

국정원의 불법적인 정치개입, 박근혜정부에서의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 사태 등을 보면서 2018년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도 한비자에서의‘법은 귀한 사람이라고 하여 아첨하지 않고(법불아귀), 먹줄은 나무가 휘었다고 하여 굽혀가며 잴 수 없으며(승불요곡), 잘못을 벌하는데 있어서는 대신도 피할 수 없고(형과불피대신), 선행에 상을 줄 때는 필부도 빠뜨리지 않는다.(상선불유필부)’는 특권층이나 사회적 강자에 대한 예외없는 법치, 형평, 신상필벌의 필요성은 우리사회에 여전한 숙제로 남은 이유이기도 하다.

국정원 정치개입사건의 사법부 최종적인 판단이 만시지탄이지만 사필귀정으로 마무리되어서 참으로 다행이고, 변호인으로서 보람이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