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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례사
구림서 낳고 영보에서 자람
전 KBS광주총국 아나운서 부장
전 호남대학교 초빙교수
국제로타리3710지구 사무총장

남의 청탁 가운데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 혼인예식 주례 부탁이다. 신랑 신부가 혼인하기로 하고 예식장을 정한 다음 첫 일이 주례를 정하는 것 아닌가. 시작의 중요한 자리에서 거절이 있다면 그 시작이 어떻겠는가. 하여간 나는 “나보다 더 덕망 높으신 분이 많을 텐데…”하면서 신혼부부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응락(應諾)을 한다.

요즘 예식장을 가면 “주례사님이십니까?”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사회자 혹은 예식장 종사원의 말이다. 주례사(主禮辭)를 하는 사람에게 웬 주례사? 가만 생각해보니 주례사(主禮士)를 말하는 것은 아닌지. 건축사·변호사 하듯 주례를 맡아 보기에 사(士) 자를 넣어하는 말이 아닐까. 어원이 묘연한 말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주례를 맡을 때 ‘결혼’(結婚)이란 말을 하지 않는다. 혼인(婚姻)이라고 말한다. 혼(婚)은 남자가 장가를 가는 것이고, 인(姻)은 여자가 시집간다는 뜻이다. ‘혼인신고’라 하지 ‘결혼신고’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혼인서약’이라고 말하지 ‘결혼서약’이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결혼’이라는 말은 일본 사람들이 쓰던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 남성 중심의 말이다.

나는 신혼부부에게 혼인의 의미로 늘 로마 궁정의 제사장(祭司長)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날, 제사장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무엇을 훔쳐 갔는가?”라는 황제의 말에 “여러 벌의 은수저”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제사장은 도둑을 맞았는데도 희색이 가득했다. 도둑이 딴 집에서 훔친 황금잔을 모르고 은수저 있던 자리에 놓고 갔던 것이다.

결혼은 그런 것이다. 결혼을 하면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많이 잃게 된다. 혼자 살던 때의 자유와 수입 그리고 자기 시간을 잃게 된다. 그 대신 자기에게 없던 황금잔 하나가 들어오게 된다. 평생을 함께하는 반려자를 맞이하는 것이라고 일러준다.

혼인에 있어 주례는 예식의 전반적인 과정을 주재할 뿐 아니라 신랑 신부가 부부생활을 하는데 필요하고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다. 주례사는 주례가 신랑 신부와 혼주, 내빈에게 드리는 축하와 당부의 말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신혼부부에게 혼인의 의미를 일러주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들려주어야 한다. 혼주에게는 양가 가문의 인연을 말해주고, 내빈에게는 “여러분이 혼인의 증인으로 신랑 신부를 잘 지켜보며 보살펴줄 것”을 강조한다.

주례사는 상투적인 말 또는 판에 박힌 말을 해서는 신랑 신부에게 큰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이다. 간략하면서도 참신하고 감동적인 예화와 함께 평생 가슴에, 마음에 남을 수 있는 말을 전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주례사에서 고정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하나는 혼인서약을 받기 전에 혼인의 특성을 일러주고 이에 동의하는지를 신랑 신부에게 각각 묻는다. 혼인의 특성은 이것이다. 혼인은 신랑 신부만의 유일한 계약이라는 단일성과 합법적인 예식을 치른 부부는 영원하다는 영속성, 혼인은 오직 하나 되고자하는 신성한 결합을 뜻하는 신성성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선남선녀 중에 이처럼 한 짝을 이루는 신비성을 들려준다.

또 나는 “̀혼인예식을 치르는 이 순간의 감동과 다짐을 평생 잊지 말고, 해마다 오늘이 오면 마음을 새롭게 잡을 것”을 강조한다.

경우에 따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는 성경 구절도 들려주고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는 서양 속담도 말해준다.

신랑 신부가 긴장하여 주례사를 모두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 A4 사이즈의 화선지에 주례사를 요약하여 붓으로 써서 건네주면 깜짝 놀라는 모습에 재미를 느낀다.

신혼부부의 행복을 비는 주례사는 정성이 넘쳐야 하고 예절을 갖추며 평생 기억하고 간직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고 믿으며 그동안 내가 주례를 섰던 모든 신랑 신부에게 다시 한 번 행복을 기원한다.

최경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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