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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火魔)를 이겨낸 모녀
 덕진면 노송리 송외마을生  전 광주시교육청 장학사  전 광주 서광초등학교 교장  한국전쟁피해자유족 영암군부회장

제천 화재사고 뉴스가 연일 보도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드, 북한의 핵무기, 지진, 낚싯배 사고, 중국과의 외교마찰 등으로 가뜩이나 나라 안팎이 어려운  처지인데, 29명의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간 대형화재 사고까지 터져 온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했다. 수능시험이 끝나 홀가분한 기분으로 외갓집에 들렀던, 피어보지도 못한 꽃다운 나이의 고등학생과 효녀 딸, 외할머니, 3대를 앗아 간 무지막지한 화마가 너무나 야속하고 우리들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리고 높지도 않는 2층 목욕실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해 연기에 질식해 발버둥 치면서 죽어갔을 피해자들을 생각해 보면 안타깝고 아쉬움이 남는다. 

불난 소식만 들으면 우리 식구가 겪었던 아찔했던 화재사고가 생각나 현기증이 나고 속까지 울렁거린다. 사고 전날 밤, 딸과 외손녀가 우리 집에 왔다. 외손녀와 딸이 함께 해서인지 반찬 가짓수가 늘어 평소보다 아침상이 풍성했다. 정담을 나누며 아침을 먹고 각자 일터로 나갈 준비에 바빴다. 딸은 식사를 마치고 외손녀(S사립초등학교 3학년 재학)의 책가방을 챙겨 통학버스 시간에 늦을까 봐 잰 거름으로 현관문을 나섰다. 나는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막 시작했는데, 갑자기 아내가 악을 쓰며 발을 동동 굴렀다.

“불이야! 불이 났어! 빨리, 나가잔 게! 빨리요! 얼렁얼렁 나오란 게!”

예삿일이 아님을 직감하고 황급히 나와서 옷을 입으려니 발이 걸려 제대로 입을 수가 없었다. 유리 창문을 보니 순식간에 시커먼 연기가 기어 들어오고 천둥소리 같은 굉음이 귀청을 때렸다. 정신이 아찔했다. 아내는 현관에서 대피명령을 내린 것이다. 나는 아내도 팽개치고 혼자 나가려 했다. 아내가 내 손을 잡았다. 시커먼 연기는 아파트 통로를 덮치고 우리들을 삼키려 했다. 나는 딸과 외손녀를 구하려는 일념으로 앞뒤도 생각지 않고 아래층 계단으로 달리려 했다. 그러나 아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내려가시면 다 죽습니다!”

“아니다! 죽더라도 내려가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

아들과 우리 내외는 실랑이를 했다. 순간적으로 몇 년 전 근무했던 학교 화재사고 때 연기로 말미암아 동료가 숨졌던 생각이 뇌리에 스쳐 자식 말을 우기지 못했다. 도리 없이 옥상으로 대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런데 옥상 철문이 자물쇠로 채워져 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래된 옥상문의 녹슨 경첩은 죽을힘을 다한 아들의 괴력에 버티지 못해 슬그머니 풀렸다.

굴뚝에서 품어져 나오는 연기로 앞이 보이지 않는 옥상도 지옥이기는 마찬가지였다. 6층에서 시꺼먼 연기와 불길이 함께 분출하니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아침 출근 전, 소방도로까지 막아 세운 차들 때문에 수많은 소방차는 먼 곳에서 앵앵거리며 우리들의 애간장을 녹일 뿐이었다. 그렇게 공포의 30여 분이 흘러 허겁지겁 숨을 몰아쉬며 소방관이 옥상으로 올라왔다. 딸과 외손녀를 물으니 못 봤단다. 앞이 아찔하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이 무슨 꼴인가?

우리들만 살고 생때같은 자식들을 죽이다니...’ 소방관의 도움으로 주차장에 내려와 구경꾼들에게 딸 소식을 물었으나 본 사람이 없다. 아내는 정신 줄을 놓고 말았다. 그때 사위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달려와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며 황급히 딸과 외손녀의 생환을 알렸다.

무서운 연기 속에서도 무사히 대피하여 죽지 않고 살아준 딸과 외손녀가 감사할 뿐이었다. ‘얼마나 뜨겁고 힘들었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공포 속에서 허덕였을 모녀를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되었다. 그런 위험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용감히 살아 주었다니…, H병원 응급실 담당의사가 당부를 했다.

“이 환자들은 독성이 강한 연기로 인해 폐가 많이 상했습니다.”

모녀의 겉옷은 타기 직전이었고, 온몸은 개 끄슬러 놓은 것처럼 검붉은 화상으로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상태였으나 숨을 쉬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악몽에서 깨어나 숨을 몰아쉬면서 딸은 횡설수설했다.

“현관에서(우리 집은 12층) 나와 계단을 살피니 연기가 별것이 아니기에 9층까지 뛰어 내려갔는데, 불길과 연기 때문에 더 이상 내려 갈 수 없어서 창문으로 기어올라 걸터앉아서 살려 달라고 악을 썼는데…,”

딸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불길이 거세게 올라와 옷을 태우니 밑으로 뛰어 내리고 싶었단다. 밑에서 사람들이 ‘뛰어 내리면 죽는다.’고 함성을 쳤을 때, 엄마의 한 손에 안긴, 외손녀가 손으로 얼굴 앞에 부채질했다며 울먹였다. ‘침착하고 용감했던 어린 내 새끼가 어미까지 살리다니.’ 아파트 유리창 난관에 올라가 모녀는 서로 손짓으로 격려하며 위기를 넘기는 모습이 MBC 저녁뉴스에 보도되었다. 7층에 사는 할머니는 구명줄을 타고 내려오다가 6층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와 불 때문에 떨어져 그 이튿날 운명하시고 말았다. 불난 6층 아주머니도 아파트 앞 화단으로 뛰어내려 생사가 불분명했다.

모녀는 몇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진 뒤에 퇴원했다. 딸은 폐가 상했는지 지금도 이따금 기침을 하지만 외손녀는 건강한 고등학생이 되었다. 생사의 갈림길에 걸린 위급한 상황에서 여자는 모성애를 발동한다고 한다.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식구들을 대피시키고 맨 마지막으로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뛰어 나가려 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번 제천 화재처럼 엄청난 사건이 될 뻔했던 순간을 잘 판단한 아내와 아들의 지혜에 우리 식구가 최소한의 피해를 입지 않았을까…,

신중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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