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읍 여성의용소방대장

11월 중순이던 13일, 낙엽마저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에 못다 한 사연을 남긴 나뭇잎 몇 개 88세의 일기로 세상을 마감하신 저의 어머님의 일생을 적고 싶습니다.

저의 어머님은 강진읍 학명리 초동이라는 고을에서 8남매의 4번째 딸로 태어나서 그 당시 초등교육을 받으시고 부모님의 슬하에서 엄중한 가정교육을 받으시며 잘 성장하여 강진읍 서산리 발산부락의 5남매의 장남이신 아버님과 22세에 결혼하여 일평생을 소리 없이 시할머니를 모시고 시어머와 시동생 4남매의 대 가정을 이루시며 살았다.

시댁의 많은 시집살이 속에 때로는 칭찬과 꾸중을 들으시며 살아오시다 6남매를 모두 출가시켜 11남매의 손자녀를 두시고 크고 작은 일과 명절 생신날에는 모두가 모여서 떠들썩하게 즐거움과 선물을 받으셨던 그날을 생각하면 오래오래 계실 것만 같았던 어머님. 동네의 크고 작은 일에 누구 먼저 할 것 없이 손 붙이며 보살피고 집집마다 찾아오는 행상을 보시면 적은 밥이라도 나누어 먹어야 하신다고 끼니를 책임졌던 어머님.

그렇게 좋은 모습으로만 남아 있으면 좋으련만 세월이 지나니 한 추억뿐이다. 항상 자리에서 무엇인가 아무소리 없이 묵묵히 일 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님 이야기 나누면서 해요”라고 하면, “소리가 요란하면 안된다. 말없이 조용 조용하는 일이 일이지.”라고 하신다. 그런 어머님의 모습은 답답하지만 그게 몸에 배어서 모두가 완성되면 웃으셨다.

시할머님 시중과 시어머님에 시집살이는 지금의 나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많은 50년 세월을 묵묵히 헤쳐내신 우리 어머님의 일생은 우리 자녀들의 본보기가 되었으며 많은 지역민들에게 감동이 되었던 지난 세월들이다.

20년 전, 아버님과 어머님이 고향에서 적은 소작의 농사를 지으시며 타지에 있는 자녀들에게 식량을 모두 전담하여 보내주시는 기쁨으로 살아오시다 어느 날, 나이에는 못 이긴다는 옛 속담이 몸으로 찾아와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쉬어가면서 이웃의 도움과 자녀들의 보살핌으로 겨우 살아 오셨지만 틈틈이 찾아가 부모님을 찾아 뵐 때는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모습을 볼 수 있어 마음 한구석에는 얼마나 사실 수 있을지 많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 어려운 시기를 헤쳐가면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강진군에서 연락이 왔다. 가까이 사는 딸이라는 저에게 어머님 모시고 군민의 날에 나올 수 있느냐고 했다. “무슨 일인데요”라고 물었더니 “군민의 날에 효부상을 수상하신다고요” 했다. 난 정말 깜짝 놀랐다.

누가 이야기를 했기에 나의 엄마 마음을 헤아려 주셨는지! 정말로 눈물로 한을 품어서도 못다 한 나의 어머님의 성품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 많은 일들과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만 일생을 바치신 나의 어머님. 병상에 있으면서도 딸이 달려가 손을 잡으면 화목해야 된다는 말뿐, 어머님의 목숨은 생각도 못 하시면서 입술을 깨무시는 어머님의 모습 속에 나는 펑펑 눈물을 흘려야 했다.

다시는 찾아볼 수 없고 마지막 가시는 길에 하얀 종이 검은 싸인 펜으로 “엄마, 아부지 보고 싶어요?”라고 써보여 드렸더니 고개만 끄덕이시던 모습이 너무도 그립다. 91세의 연세에 홀로 계시는 아버님. “아들 며느리와 사랑스럽게 잘 사실 겁니다”라고 속삭이며 어머님의 귓가에 들려드렸다.

어머님! 하늘나라에서 모든 것 잊으시고 편하게 쉬십시오. 막내 딸이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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