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면 장천리 生 전 전남도지사 전 국가보훈처장관 왕인박사현창협회 회장

누구나 좋아하는 꽃이 있다. 나는 동백꽃을 좋아한다. 우리 마을 종가집 뒤란에 동백숲이 있다. 초봄이면 동백꽃이 만발해 몰래 나무에 올라가, 꽃을 따서 꿀을 빨아 먹기도 했다. 동백 씨로는 아랫마을 기름 짜는 집에서 동백기름을 짜서 어머니들이 머리에 바르고 가르마를 타 참빗으로 윤나게 단장을 했다. 그 시절의 모습이 아련하다.
 
동백은 늘푸른 나무로 잎사귀가 유난히 깨끗하고 반짝인다. 빨간 꽃은 우아하며, 피었다가 질 때는 꽃 이파리들이 하나하나 흩어져 떨어지지 않고, 꽃송이 그대로 미련 없이 툭 떨어진다. 그래서 절개 있는 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땅바닥에 떨어진 꽃은 마치 땅에 피어 있는 꽃처럼 얼마동안 싱싱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하기에 시인 이혜인 수녀는 동백처럼 한결같은 삶을 꿈꾸면서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이라는 새 시집을 펴냈을 것이다. 그는 한 송이 동백꽃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동백꽃은 전라남도를 상징하는 ‘도의 꽃’으로 지정되어 있다. 한기에 약해서 남도에 많이 피는 꽃이다. 내무부 지방개발국장으로 있을 때, 서해5도 개발과 관련된 일로 백령도에 가는 길에 대청도에 들린 적이 있다. 대청도는 아름다운 섬이다. 통일이 된다면 관광지로 각광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섬에 ‘동백 북방 한계선’이라는 돌로 된 팻말이 서 있다. 동백이 살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 대청도라는 표지였다.
 
동백은 전남지역에 많고, 남해안과 제주도를 비롯한 섬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전국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일곱 군데 동백숲 가운데 세 군데가 전남지역에 있다. 1천500여 그루의 강진 백년사 동백림, 도선국사가 땅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심었다는 광양 옥룡사지 동백 숲, 500년 수령을 자랑하는 나주 금사정 동백 숲이 그것이다. 이밖에도 장흥 천관산과 여수 오동도 동백 숲, 강진 무위사 주변과 해남 대흥사 입구의 동백 혼합림 등이 유명하다. 우리 영암에도 볼만한 동백 숲이 가꾸어졌으면 싶다. 훗날 도갑사 입구 동백 숲 같은 사례 말이다.
 
내가 아는 화가 가운데 동백을 잘 그리는 화가는 소송 김정현(1915~1976)이다. 소송은 서호면 화송리 출신이다. 구림초등학교를 다녔고,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川端畵學校) 동양학과를 졸업했으며 의제 허백련 선생에게서도 사사했다. 그는 전통적 수묵 필치와 채색 표현으로 향토적 풍경을 다양하게 다루었고 치밀한 채색화로 화조그림도 잘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5년 서울 정착 때까지 목포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목포여자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임 했다. 1957년 서울에서 김기창·김영기 화백 등과 함께 한국화의 현대적 지향을 꾀하는 백양회(白陽會) 창립에 참여했다. 1961년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추천작가, 초대작가로 활동했고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서라벌예술대학 등 여러 대학출강도 했다. 그의 ‘녹음’ ‘귀로’ ‘임(稔)’ ‘동백’ 등이 대표작이다.
 
나는 소송의 동백을 좋아한다. 그의 동백은 내가 전라남도 관광운수과장으로 있을 때 발간한 ‘전남관광자원(1966)’ 책자 표지의 그림이기도 하다. 가지에 탐스러운 동백꽃 봉오리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고 나비 세 마리가 주변에 날고 있다. 이따금씩 동백을 보고 싶을 때 펼쳐보곤 한다.
 
광주시장 재직 시에는 광주에서 소송의 전시회가 열려 관람하고, 좋아하는 동백 그림 한 점을 구입했다. 그 그림을 영구히 간직할 생각으로 우선 시장실에 걸어 놓았다. 어느 날, 밖에 나갔다 돌아와 보니 동백 그림이 보이지 않았다. 비서실장에게 물었더니 도청 기획관리실장이  시장실에 들렸다가 좋은 그림이라면서 가져갔다는 것이다. 그와 나는 고등고시 동기로 가까운 사이다. 나는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니 다른 그림과 바꾸자고 했다. 그는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좋아하는 소송의 동백 그림이 내 손에서 영구히 떠나버리고 말았다. 지금도 그 그림이 아쉽기만 하다. 그 뒤로 소송 선생이 타계하시어 다시는 동백 그림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얼마 전, 장흥에서 오찬 모임을 마치고 일부러 하정웅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영암출신 다섯 분 화가의 추모전을 관람하는 기회를 가졌다. 소송의 동백 그림 한 점도 전시되어 있었다. 소담하게 피어 있는 동백꽃 가지와 참새 두 마리가 화폭을 채우고 있었다. 오랜만에 대하는 소송의 동백이라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영암미술의 이름을 드높인 고향작가 문동식, 녹설 이상재, 도촌 신영복, 이강하의 작품도 함께 관람할 수 있어서 흐뭇했다.
 
하정웅미술관이 있어 고향에서 이러한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다. 살기 좋은 고장이 되기 위해서는 생활환경도 중요하지만 문화환경도 필수 요건이다. 하정웅미술관이 문화적 욕구를 충족해주고 문화적 소양을 높여 주는 역할을 끊임없이 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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