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면 장천리 전 전남도지사 전 국가보훈처장관 왕인박사현창협회 회장

역사적 인물은 출신지인 고장을 빛나게 한다. 왕인박사가 그러하고 도선국사가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출신지역에서는 이분들을 기리고 현창하면서, 고장의 긍지로 승화시키는 일을 한다.
왕인박사께서는 교통이 불편한 1,600여 년 전 응신천황의 초청을 받아, 천자문과 논어 등을 가지고 낯선 일본 땅에 건너가, 황태자의 스승이 되어 글을 가르쳐 깨우치고, 문자를 전달하여 문학의 시조로 추앙받고 있다.

당시 일본에는 말은 있으되 표기하는 글자가 없어 어려움이 있었다, 왕인은 한자의 음을 빌려 일본 말을 표기할 수 있는 이두문자 같은 만요가나(萬葉假名)를 창출해 냈다. 얼마나 고마워 할 일인가. 또한 난파진가(難破津歌)를 지어 일본의 정형시인 와카(和歌)의 효시로 알려져 있으며, 왕인박사를 가부(歌父)라 부른다. 이와 같이 척박한 터전에 문화의 씨앗을 뿌려 향기 그윽한 문화의 꽃을 피워내게 했으니, 왕인박사야말로 일본 역사에 큰 획을 그은 학성(學聖)이라 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일본사를 만든 101인’(1995년)의 첫 번째에 왕인박사의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인물일본사’(2012년)에는 왕인박사께서 437년에 돌아가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405년 일본에 건너가셨으니 32년간 눈부신 활동을 하신 것이다.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히라가다시(枚方市)에는 왕인박사가 영면하고 계시는 분묘가 있다. 왕인박사의 묘지는 1731년 교토의 유학자 나미가와 세이쇼(竝川誠所)가 히라가다시의 화전사(和田寺)에 보관된 고문서를 면밀히 조사하여 왕인박사의 묘임을 확인하였고, 당시 번주(영주)에 의해 묘비가 세워졌다. 왕인묘 아래쪽 수림에는 1927년 주민들이 돈을 모아 세운 ‘박사왕인분(博士王仁墳)’이라는 비가 우뚝 서 있다.

왕인묘는 1938년에 오사카부의 사적지로 지정되어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 현지 주민들은 왕인묘를 관리하기 위하여 1985년 자발적으로 왕인총환경수호회를 구성하여 시설물 보호, 녹지조성과 정비, 청소, 자료수집과 보존, 전시 등을 정성껏 하고 있어 현지에 가서 보면 마음속 깊이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왕인묘에서는 1984년부터 문화의 날인 11월 3일에 매년 묘전제가 열리고 있다. 금년으로 34회 째의 묘전제가 개최되었다. 제향을 모시는 일은 오사카 일한친선협회가 주관한다. 행사에는 일한친선협회 임원과 회원, 히라가다 시장과 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시 관계관과 지역출신 중의원의원, 오사카 한국총영사, 거류민단 단장을 비롯한 회원, 왕인총환경수호회 회원과 주민, 현지 초등학교 학생들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왕인박사의 업적을 기린다.

우리나라에서도 영암군수와 군의회 의장 및 의원, 왕인박사현창협회 회원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성스러운 제향에 함께 참여하여 한마음으로 왕인박사를 추모한다. 나도 왕인박사현창협회 회장의 자격으로 군수 일행과 함께 행사에 참석하였다.묘전제에서 현지 초등학교인 스가하라 히가시(管原東) 초등학생들이 나와 ‘고향의 봄’을 또렷한 우리말로 2절까지 부를 때,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리고 우아한 한복 차림의 교포 부인들이, 고려차 다완을 받들어 묘전에 올릴 때는 왕인박사의 거룩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왕인박사께서 우리고장 출신이라는 긍지가 마음속에서 솟구쳐 오르기도 한다. 금년 행사에는 전동평 군수께서 왕인박사가 일본에 가지고 간 종요 천자문을 액자에 넣어, 왕인총환경수호회 사무총장에게 박수를 받으며 전달하였다.

가을에 개최되는 왕인박사 묘전제와 봄에 열리는 왕인박사 춘향제는 한국과 일본의 민관 문화 교류 자리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열리는 묘전제에는 영암군에서 민관이 참여하고, 성기동에서 열리는 춘향제 때는 일본의 히라가다시와 왕인박사가 도착한 곳으로 알려진 간사기시(神崎市)에서 시장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친교를 하면서 우의를 두텁게 다지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이와 같은 교류행사는 오로지 이 왕인 제전뿐이다. 이러한 교류의 다리를 놓은 것은 왕인박사이시다. 그래서 왕인박사를 모두가 가슴에 품고 한마음이 되어 그를 기리고 추앙하면서 격의 없이 교류를 해오고 있다.

묘전제에 갈 때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곳이 사카현 간사기시이다. 거기에는 왕인천만궁이 있고 사당 안에 왕인 영정이 걸려 있다. 그 입구에는 왕인박사가 도착했다는 ‘왕인박사상륙전승지지(王仁博士上陸傳承之地)’ 표지가 우뚝 서 있다. 대숲 앞 넓은 공간에서는 왕인박사현창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거기에 백제문이 들어서고, 종요 천자문이 돌판에 새겨져 세워질 것이며, 문화교류의 시설물이 자리잡을 것이다.

아득한 옛날 왕인박사는 한류의 물결을 일으키시어 지금도 물살 짓고 있다. 그의 발자취를 꾸준히 찾아 탐구하여 체계화하면서, 그의 업적을 선양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