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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서면 서구림리 生
전 조선대·광주교대강사 (문학박사)
전 전라남도문인협회장
아시아문화전당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작가(소설가)

그 동네도 여느 동네처럼 머슴들이 모여 사는 사랑방이 있었다. 그러니까 대여섯 명의 떠꺼머리총각들이 하루내 일하고 나서 잠자리로 찾아드는 곳이다. 마치 날이 어두워지면 새들이 숲 속 둥지로 찾아 들 듯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히 잠만 자는 것은 아니다. 초저녁에는 새끼도 꼬고 가마니도 짠다. 그러면서 그 날 있었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가 하면 다음날 품앗이까지 맞히곤 한다. 뭐니 뭐니 해도 그 중에서 그들의 입맛에 가장 맞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동네 처녀들에 관한 얘기다. 이장 집 딸 순이가 어떻고, 호랑이 털보 영감 댁 딸 영이가 어떻고, 하지만 그들은 그만한 이야기로는 이제는 낮 동안의 피로를 풀기에 역부족이다. 그래서 그들은 엽기적인 얘기를 곧 잘하곤 했다.

“오늘 나 점심 먹고 나무하러 가다 순이가 우물에서 목욕하는 걸 봤다.”
이 한 마디에 방안의 모든 떠꺼머리총각들이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머슴을 쳐다본다. 그만큼 그들의 호기심을 끈 화두인 셈이다.
“그래서?”
누구랄 것도 없이 그들은 합창하여 묻는다.
“근데 말이야 순이 가슴이 세 개더라.”
“뭐야?”
그들은 숫제 일손을 놓아버린 채, 그 머슴 주위로 모여든다.
“야 임마, 너 똑똑히 봤어?”
“야 얼른 훔쳐보느라고 잘못 봤겠지.”
“아니야 진짜라니까.”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한 쪽 구석에서 조용히 새끼만 꼬고 있는 종철이는 과부댁 깔뚱이다. 그는 조금 어리숙한 데가 있어서 항상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어떻하면 저들처럼 이야기의 중심에 서서 뭇 머슴들의 주목을 한 번 받아 볼까.’ 그게 그의 소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얘들아 나 오늘 선녀 봤다.”
“응”

떠꺼머리총각들은 단숨에 그의 주위로 모여 들었다. 그는 속으로 매우 흐뭇했다. 나도 이야기의 중심에 설 수 있구나. 그는 성공한 것이다.

“어쩌디?”
“예쁘더라!”

그들은 얼마나 예쁜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기가 어려워서 다소 모호하기는 했어도 그 한 마디에 어떤 황홀함에 빠져 있는 듯했다. 다음 날에는 떠꺼머리총각들이 먼저 종철이 주위로 모여들면서 ‘너 오늘도 선녀 봤냐?’고 캐묻기 시작했다. 재미를 맞본 종철이는 이제 제법 자신감 찬 목소리로 ‘응 봤어.’라고 대답했고 연이어 ‘어쩌디?’를 묻자, 거의 반사적으로 ‘예쁘더라.’라는 대답이 튀어나왔지만 왠지 예쁘다는 느낌이 어제 만 못했다. 이와 같은 질문과 대답은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이어졌지만, 날이 가고 예쁘다는 대답이 거듭 될수록 예쁘다는 생각은 점점 희미해져만 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들은 다시 종철이를 왕따와 놀림감으로 되돌려 놓았다. 이제는 아무도 그에게 관심이 없다. 다만 종철이 버금가는 깔뚱이가 놀림 삼아 묻는다.

“야 너 오늘도 선녀 봤겠지?”

그런데도 종철이는 이제껏 하던 ‘예쁘더라.’는 대답을 하지 않고 묵묵부답이다.

“야 요것 봐라. 요새 요것이 많이 컸네. 내 말이 말 같지 않다 이 말이지.”

버금가는 깔뚱이가 다그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종철이는 대답이 없다. 부아가 치밀러 오른 버금가는 깔뚱이가 이제는 곧 패줄 듯이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종철이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 끄덕’ 거렸다. 그때 심상치 않다는 낌새를 알아차린 떠꺼리머리총각들은 바짝 긴장하여 다시 모여들었다.

“어떻게 생겼디?”

또다시 종철이는 대답이 없다. 몇 번이고 을러댐을 당한 끝에 종철이는 ‘예쁘다.’는 지금까지의 대답 대신 ‘달덩이 같대.’라고 외마디만 던지고 말았다. 그가 다른 머슴들의 관심을 끌고자 했던 거짓말과는 달리 이번에는 진짜로 선녀를 본 것이다.

보통 이미지라고 하면 오감(五感)을 통해 되떠올려지는 것이지만, 보다 본격적인 시의 이미지는 주로 비유를 통해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위의 이야기에서도 ‘예쁘다’는 말에는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지 않지만 ‘달덩이 같대’는 머리 속에 달덩이를 연상시켜주는 이미지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미지(心象, image)에는 가장 기초적인 지각심상(知覺心象, mental image)과 보다 본격적인 이미지인 비유적 심상(比喩的 心象, figurative image), 상징적 심상(象徵的 心象, symbolic image)이 있다.

조 수 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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