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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송편’ 빚으며 하나 된 마을…지역특성 살려 연간 3억원 소득위기의 농촌-6차 산업이 희망이다
<1>서천 달고개 모시마을
달고개 모시마을 전통테마관

“안 팔리던 모싯잎 1kg으로 떡 만들었더니 1만5000원 수입 생겨”

6차 산업의 롤 모델로 떠올라

일본 보다 6차 산업화가 늦었지만 한국적 6차 산업화를 실현하고 있는 충남 서천군의 달고개 모시마을은 6차 산업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

충남 서천군 월산리의 옛 이름은 월령(月嶺, 달고개)이다. 한 갑자 이상을 줄곧 월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온 이 마을은 2000년대 중반부터 다시 옛 이름을 별칭으로 갖게 됐다. 푸릇푸릇 쫄깃쫄깃한 모시송편으로 이제는 전국에서도 꽤나 유명세를 타고 있는 ‘달고개 모시마을’로 재탄생한 것이다

제조장에서 모시 송편을 만드는 달고개마을 부녀자들

추석을 10여일 앞둔 지난 9월 22일, 서해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충남 서천군 화양면 달고개 모시마을을 찾았다. 마을 입구에 자리한 떡 가공공장에는 예닐곱 명의 50~80대 부녀자들이 부지런히 손을 놀려 떡을 빚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방금 쪄낸 송편을 상자에 담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한 아주머니는 “추석이 코앞이라 주문량이 폭주해 힘들지만 즐겁다”며 “마을 사람들이 모여 송편을 빚은 뒤 마을이 더 화목해졌다”고 말했다.

남원 양씨의 집성촌인 달고개 모시마을은 과거 ‘한산모시’로 유명했다. 모시옷 기능 보유자만 10명이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시옷이 사양길로 접어든 뒤 한때 이곳은 서천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로 꼽혔다. 마을 주민들은 어떻게 하면 마을 주요 생산품 중 하나인 모시풀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하다 2009년부터 모시송편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모시풀을 옷감뿐 아니라 떡으로도 만들어 먹었던 것에 착안한 것이다. 처음 7가구만 모시송편을 만들었지만 현재는 마을 전체 55가구 중 45가구가 모시송편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2011년 8천만원이던 연간 매출은 지난해 3억원을 웃돌았다. 옷감으로만 여겨졌던 모시풀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마을이 활력을 되찾은 것이다.

양만규 모시체험마을 추진위원장(75)은 “5천원짜리 모싯잎 1㎏으로 모시송편을 만드니 1만5천원 정도의 수입이 생겼다”며 “주민들의 소득도 생기고 모시가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접었던 모시농사 다시 시작

농진청 선정 '살고싶고 가보고싶은마을 100선' 인증패

모시는 원래 옷감 재료로 쓰였지만 남부지방에선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쌀과 함께 갈아 떡, 식혜, 한과 등을 해먹었다. 

경제가 발전하며 자취를 감췄던 모시송편은 ‘칼슘과 항산화물질이 많이 들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인기 특산물로 되살아났다. 달고개마을의 모시송편은 모시잎 함량을 40% 이상 크게 늘려 색이 진하고 향이 짙은 게 특징이다. 특히 주재료를 모두 주민이 직접 재배한 것만 사용해 신뢰를 높여 재 구매율이 100%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간 ‘돈벌이가 안 된다’며 접었던 모시농사도 다시 시작했다. 양만규 위원장은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모시잎을 이용해 송편 등을 해먹었다”며 “맥이 끊어진 모시송편을 되살려보자며 시작한 것이 마을의 중요한 소득원이 됐다”고 설명했다.

달고개마을 주민들은 지난 2006년 호당 30만원씩 공평하게 출자해 ‘월산리영농조합법인’을 만들었다. 이곳 영농조합에선 마을에서 재배하는 모싯잎으로 마을 주민들이 모시송편을 빚는다. 만들어진 송편은 인근 판매장과 인터넷, 택배 판매를 통해 전국으로 나간다. 어느덧 입소문을 꽤나 타면서 지역의 명물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마을 사람들은 두 조로 나눠 당번제로 송편을 빚는다. 

작업은 성수기인 명절을 제외하면 기껏해야 사나흘에 한 번 꼴이다. 보통은 개인 농사를 하면서 틈틈이 작업장에 나와 일당을 받는 식이다. 작업이 드문 만큼 대단한 돈벌이가 되는 건 아니지만, 모두가 자기 당번 순서를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 송편을 빚으면서 돈도 벌지만 두런두런 피어나는 이야기꽃도 재미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건강이 썩 안 좋은데도 송편 빚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김분예(84) 할머니는 “허리가 아파 지팡이를 짚고 댕겨도 송편 빚기는 힘든지 몰라. 혼자 집에 있으믄 심심한데 젊은 사람들하고 얘기도 하고 좋아”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일자리가 생기니 마을도 화목해져

달고개마을의 전체 가구수는 55가구다. 이 가운데 45가구가 모시가공(2차)에 참여하고 있다. 농사를 짓지 않는 고령화 농가는 전체 농가의 65% 수준이다. 이곳도 농촌 고령화가 심각한 실정이다. 현재 모시 생산에서부터 가공판매에 이르기까지 50세 이상 참여자는 전체 55명 중 45명에 이른다. 

사실상 마을의 전 구성원이 사업에 참여한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지난 2006년 체험마을 시작과 함께 고령 농가들의  소득에 기여하고 노령층의 자존감 회복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난 2010년에는 농촌진흥청이 선정한 ‘전국에서 가장 살고 싶고, 가보고 싶은 농촌마을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달고개 모시마을이 농업의 6차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도·농 교류를 통해 마을지도자가 적극적으로 판로를 확대했기 때문이다.
 

문배근  mbg11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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