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서면 서구림리 生 전 조선대·광주교대강사 (문학박사) 전 전라남도문인협회장 아시아문화전당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작가(소설가)

“선생님! 저희들이 잘못을 저질렀거나 일기를 쓸 때는 늘 솔직히 말하고, 정직하게 쓰라고 가르치시면서, 왜 소설을 쓸 때는 자꾸만 그럴싸하게 꾸미라는 거짓을 시키세요?”

 “우리의 삶은 원래 무질서 하단다. 온갖 잡다한 요소가 뒤섞여 있는, 일정한 형태가 없는 혼돈의 연속이란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무질서, 즉 혼돈 속에 섞여 있는 무의미한 한 요소로 남지 않으려고, 그 가운데 어떤 질서를 찾는단다. 그러기 위해서 본래는 아무런 형태도 없는 사건이나 사물에 어떤 모양을 만들어 꾸며준단다. 그러니까 소설은, 여름내 잡초가 무성한 마당에 그 잡초를 뽑고 길을 내며 화단을 만들어 아름답게 꾸미는 것처럼, 잡다하고 무질서한 그리고 우연한 현실세계에 어떤 통일과 질서와 필연을 부여하는 것이란다. 그러므로 소설은 어떤 특정한 실제인물의 이야기인 척하면서, 보편적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이도록 꾸민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까 우리가 학년 초에 교실 환경정리 하는 것처럼 말이야.”

 “선생님, 그렇게 어렵게, 길게 설명하시면 어떡해요? 제 질문의 요지는요, 왜 그럴싸하게 꾸며 대는데, 거짓뿌렁을 하는데, 꾸중은 못할망정 잘했다고 칭찬하느냔 말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잘 아는 ‘춘향전’ 이야기를 해보자. 너희들 중, 춘향전이 우리 고전소설 중에서도 고전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예, 저희도 그 정도는 다 알아요.”

 “그래 그럼 춘향전의 시대적 배경이 언제지?”

 “......”

 “이놈들아, 그것도 몰라 다 안다면서… 조선 숙종조 시대야. 그땐 한 고을의 원님이란 삼권을 한 손에 거머쥔 절대자나 진배없었지. 그래서 탐관오리라도 만나노라면, 인권을 유린하며 재산을 빼앗고, 반반한 젊은 여자들을 모두 불러들여 수청 들라며 수도 없이 괴롭혔지. 요즈음으로 말하면 성희롱을 한 셈이다. 그렇지만 그땐 저항은커녕 한 마디 대꾸도 못하고 고스란히 당하기만 한 거야. 얼마나 억울하냔 말이다. 얼마나 분통이 터졌겠냔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가엾은 많은 사건들은 실제로 벌어진 ‘사실’임에도 오늘날 하나도 전해지지 않을 만큼 사람들의 관심 밖이고, 설령 전해졌다한들 아무도 그 이야기에 감동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순전히 꾸며진 그와 비슷한 이야기인 ‘춘향전’은 지금껏 소중히 전해 내려와 우리의 고전이 되고, 하도 많이 읽어 그 줄거리를 훤히 알 정도지만, 매번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가 뭐겠니? 그건 말이야, 허구가, 거짓뿌렁이 그 시대의 어떤 실화보다 그 시대를 더 진실하게 말해줬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그 시대의 진실을 말해줬는지 궁금하지? 춘향전에는 같은 시대에 벌어졌던 실화에는 없는 동시대인들의 이상적인 꿈이 담겨져 있고, 그 꿈이 오늘날 거의 현실적으로 성취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지. 생각해봐. 그 시대 미녀들은 원님께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었는데, 춘향전에서는 ‘암행어사 출도요!’를 통해 가스명수 먹은 가슴처럼 시원하게 해주고, 또 그 시대에는 엄두도 못 냈던, 양반집 자제와 퇴기의 딸 간의 계급을 초월한 사랑을 이뤘잖아. 이 대목에서 우리는 진실한 사랑은 그 어떤 장벽도 넘을 수 있었음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 것 아냐. 이제 알겠어?”

 “그러니까, 이치에 맞지 않거나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믿지 않는, 소위 합리적인 생활을 하는 이 시대 사람들이 전적으로 꾸며낸 이야기인 소설을 읽고 감동하는 까닭이, 바로 이 소설적 진실에 있다 그 말씀이군요.”

 “그래, 이제야 말뜻을 제대로 알아듣는 구나.”

 “그럼 <매혹의 인문학 사전>(앨프, 2009, p334)을 펴서 다른 각도에서의 ‘소설적 진실’을 더 알아보자꾸나!”

 「욕망이 주체와 대상을 똑바로 맺어준다는 생각은 있을 법한 거짓(낭만적 거짓)을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개인주의 신화의 기만이 담겨 있다. 사람이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은 ‘매개자’라는 제3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어떤 남자에게 한 여자가 가장 매력적인 것은 어떤 경우일까? 그 여자가 청순한 성모(聖母)처럼 혼자 존재하는 경우가 아니라 그 여자를 사랑하는 경쟁자가 있는 경우이다. 그 경쟁자가 ‘매개자’가 되어 남자의 욕망을 부추긴다. 근대소설에 간통을 다룬 작품이 많은 것은 간통이라는 연애의 삼각형이 주체-매개자-객체라는 욕망의 삼각관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지라르에 따르면, 숨겨져 있는 매개 구조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이 ‘소설적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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