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추석연휴가 끝났다. 명절 때면 유난히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평소에 뜸하던 발걸음도 이 무렵이면 분주해지는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올해의 명절은 더욱 그랬다.

그런데, 한 촌로의 십수년간 이어진 이웃사랑은 이 시대의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성공한 사람들의 나눔과 사회적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공동체 구현을 위해 그들의 부와 재능을 나누는 고귀한 활동이라고 할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주체가 성공한 사람들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라면, 이 촌로는 극히 평범한 우리 주변의 할아버지 일뿐이다. 그럼에도 올해도 추석을 앞두고 어김없이 독거노인, 조손가정 등 저소득층과 경제적으로 어렵고 소외된 주민들에게 햅쌀을 나눠줘 훈훈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학산면 덕수마을 백흥운(90)옹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백옹은 구순의 연세에도 “이제 나이가 많아서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살아있는 한 지역의 어려운 이웃에게 조그만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지역사회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백옹은 지난 2006년부터 해마다 추석 명절엔 손수 경작한 논에서 수확한 햅쌀을 덕수마을은 물론, 이웃마을에도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 전달했다. 마을회관 건립기금으로 500만원을 기부하고 여자경로당 에어컨 설치비 200만원을 지원해주는 등 마을발전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또 봄철 마을노인들에게 관광비 전액을 부담, 효도관광을 시켜주기도 했다.

특히, 2009년에는 서호면 몽해리에 있는 논 10여 마지기를 마을영농회에 무상으로 이전해줘 자신의 사후에도 계속하여 햅쌀을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백옹은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님에도 이 같은 선행을 꾸준히 해왔던 것이다. 주민들은 수년전, 그 분의 뜻을 기려 공적비를 세워 보은했다. 추석 명절, 이 시대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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