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출신 문영오 동덕여대 명예교수

전서, 예서, 해서, 행서로 쓴 논어(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중국에도 없는 세계 첫 작품 9년 걸려
‘6만4000자’…작품 길이만 380m 달해
청빈한 삶, 장학금 조성해 후학 양성도


영암읍 장암리 출신의 서예가인 일여(一如) 문영오(77) 동덕여대 명예교수가 유교의 대표적인 경전인 논어(論語)를 서예의 네 가지 서체(書體)인 전서(篆書), 예서(隸書), 해서(楷書), 행서(行書)로 담아낸 작품이 9년 만에 완성했다.

논어 전문은 약 1만6천자로 네 가지 서체로 완성한 작품 전체의 글자 수는 약 6만4천자에 달한다. 작품을 이은 전체 길이는 380m가 넘는다.

2008년 1월 작업에 들어가 전서 2년 1개월, 예서 3년, 해서 1년 8개월, 행서 1년 6개월 등 최근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총 9년이 걸렸다.

문 교수는 논어 전문을 사체로 완성한 작품은 국내는 물론 중국에도 없는 세계 최초의 작품이라고 밝혔다.

문 교수는 당대 최고 서예가로 이름을 날렸던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1927~2007) 선생을 사사했다. 당시 대학원 시절이었다. 50여년 필력의 서예가인 문 교수는 동덕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해왔으며, 동 대학원장과 인문대학장 등을 지냈다. 2016년 영암신문 ‘낭주골’ 컬럼진으로도 참여했다.

지난 2001년 해남군이 고산 윤선도를 기려 제정한 제1회 고산문학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또 같은 해 이순(耳順)을 맞아 노자의 도덕경 전문 5천300여 자를 해서체 작품으로 완성하기도 했다. 고희(古稀)를 맞은 2011년에는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논어 작품을 비롯해 5가지 서체 작품을 고루 엄선, 총 100여점을 선보이는 ‘종심(從心·일흔살) 기념 서예전’을 열기도 했다. 전시 수익금은 후학양성을 위한 장학기금으로 내놓았다. 2006년 대학 정년퇴직 때도 퇴직금 일부를 장학금으로 내놓아 후학양성을 위한 그의 열정을 엿보게 한다.

교수의 신분으로 평생 학문의 길을 걸으면서도 결코 선비정신을 잃지 않았던 그의 삶은 문명시대인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자동차와 휴대폰, 컴퓨터의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철저히 거부하고 청빈한 삶을 고집해 온 그의 생활은 아직도 조선시대의 삶, 그와 다를 바 없다. 자신의 호를 딴 일여(一如) 장학금을 조성해 해마다 어려운 학생들에게 물질적인 후원자로 나서면서 정작 자신은 내핍생활을 해오고 있다.                                
 
■ 문영오 교수

△동국대 국문과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 취득 △청주대 한문교육과 교수 △동덕여대 국문과 교수 △동덕여대 인문대학장 △동덕여대 대학원장 △동덕여대 명예교수 △수필공원 창간호 동인(1981) △창조문학 신인상(1992·수필) △펜클럽 회원 △서울시 서예부문 초대작가(1994~1999) △동방연서회 자문위원  △한국문화연구원 원장 <저서 및 논문> △고산문학상론 외 8권 △고산의 한시연구 외 80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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