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면 장천리 전 전남도지사 전 국가보훈처장관 왕인박사현창협회 회장

도지사로 부임할 당시 목포와 영암이 하구둑으로 연결되고 나불도에 공원이 조성되고 있었다. 나불도는 삼호에 속한 바다 속의 낙도로서 토질이 척박하고 암반으로 이루어진 낙후지였으나, 미래를 내다본 듯 나불도(羅佛島)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 섬이 하구둑 축조와 함께 훌륭한 국민관광지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대불(大佛)이라는 명칭도 방조제 종점에 있는 대아산(大牙山)의 ‘대’자와 시점 부근에 있는 나불도의 ‘불’자를 합쳐 창조된 것이며 대불방조제, 대불산단도 여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나불도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전라남도 산하에 영산강관광개발사업소를 두고 있었다. 당시 사업소장은 장흥출신 김복수씨 였다. 그는 업무에 열정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공무원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퇴임 후에는 ‘박물관 전시법’이라는 저서도 출간했다.

도지사로 부임한지 닷새 만에 대통령을 모시고 기공한 주암댐 수몰지역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많았다. 나불공원을 조성하는데 이들 나무 중 일부를 옮겨 심어, 역사 오랜 나무들이 숨을 쉬는 공원이 되도록 하라는 지침을 주면서, 필요한 사업비를 영달해 주었다. 김복수 소장은 직접 주암댐 현지를 돌아보고 나무를 골라 옮겨 심는 등 고담스런 공원 조성에 진력했다. 공원공사가 마무리 된 다음, 공원에 무엇을 조성할 것인가를 소장과 상의했다. 공원기본계획은 이미 수립되어 있었다. 그는 도면을 펴놓고 수족관과 농업박물관 중 하나를 선택해 추진할 것을 건의했다. 그 자리에서 전남은 농업도이고 농기구도 사라져가고 있는 실정이었음으로 영산강 주변에 농업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 아래 농업박물관을 건립하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농촌은 생활환경이나 농업환경이 엄청나게 변화해가고 있었다. 경지정리로 인한 농토의 규격화, 농로와 용배수 시설의 확충, 경작규모의 확대. 농업인구의 감소, 농기구의 기계화에 따라서, 오랫동안 농촌을 지켜온 농기구가 차츰 사라져 가고 생활도구도 바뀌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농업박물관을 건립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 주변에서 차츰 모습이 사라져가는 애환 서린 농기구와 손때 묻은 생활용구를 모아 전시하고 지난날의 생활상을 되살려 농촌의 발전 과정을 재현함으로써 젊은 세대들에게는 선대의 발자취를 알게 하고, 이를 체험한 세대들에게는 거쳐 온 고개 길을 되돌아보게 하는 자리가 바로 농업박물관이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농협중앙회가 구 농협중앙회 건물에 조성한 농업박물관이 유일했다. 지방에 농업박물관을 건립하게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박물관은 역사, 예술, 민속, 산업, 자연과학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여 보관하고 전시하여 교육적 의도를 기지고 일반인의 이용에 제공하는 시설이다. 따라서 이용자에게 교양과 조사연구, 여가선용 등에 필요한 뒷받침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러한 박물관은 그 설치 목적에 따라서 자료 수집과 보존, 전시, 교육 기능을 하게 된다. 새로 건립될 농업박물관은 하나의 문화공간으로서 농업과 농촌생활에 관련한 자료를 수집 보존하고 체계적으로 연구, 정리, 전시하며교육활동을 하는 특색 있는 박물관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영산호 농업박물관은 이와 같이 특정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전시관과 관련건물 1천80평의 규모로 건립이 추진되었다. 이 사업의 추진에는 김정호, 이종철, 지춘상, 최계원 등 이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크게 힘을 보태주었다

농업박물관은 나불공원의 건립 현장에서 1987년 10월 29일 기공식을 가졌다. 이날 따라 하필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옥외행사를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농업박물관은 내가 떠난 뒤인 1993년 5월 19일 본관 전시실이 완공되어 1993년 9월 24일 개관하였으며, 지금은 남도생활민속관과 쌀문화테마공원을 추가로 조성하였다. 그리하여 사라져가는 농기계와 생활용구를 보존 전시함으로써, 농촌의 과거를 아는 이에게는 회상과 향수의 장으로, 새 세대에게는 우리 농촌의 발자취를 알리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우리 주변에서 없어져 가는 용품들을 수집하여 빈 공간에 보관, 전시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도지사 시절 고흥 어느 마을에 안내를 받아 갔더니 농기구와 생활용구를 수집 전시하고 있었다. 자랑스럽게 설명을 해주어 깊은 감명을 받았다. 마을단위에서 관심을 가지고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