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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주거로와 서호로, 학파로 따라 걸었던 마을 순례길은적산 마실길에 나서다 <마지막회>
연재를 마치며

행복한 마을공동체, 대동평화 세상을 염원하며…

 

지난해 3월 4일부터 시작한 ‘은적산 마실길’ 마을순례가 성재리 남하동마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 2009년부터 2010년까지 2년여에 걸쳐 본지에 소개된 ‘영산로 따라 배롱나무 백리길’에 이은 두 번째 마을 기행이었다. 성양리에서 시작된 영산로 순례는 은적산 뒷면 서쪽 기슭을 따라 영산강과 함께 흐르다 종점인 독천리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었다. 

이번에는 영산로의 끝 지점인 독천마을에서 은적산 기슭을 따라 북쪽으로 이어지는 선사주거로와 서호로를 걸었다. 영산로가 은적산 뒤에 있는 반면 이 두 길은 은적산 앞에 펼쳐져 있다. 선사주거로는 독천 삼거리 노정로에서 시작하여 영모정, 신흥리, 괴음마을을 지나 장천리 선사주거지까지 이르는 길이다. 장천마을에서 영풍리, 신풍리, 소산리, 소흘리, 송산리, 남하동을 거쳐 성재리에 이르는 길을 서호로라고 한다.

한편 장천리 이웃마을인 엄길리에서 서호동과 학파동을 거쳐 무송동 마을까지 길이 이어지는데 이 길을 ‘학파로’라고 한다. 이 학파로는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은 들녘을 품어 안으며 북쪽으로 길게 늘어지다가 성재리 무송동마을에서 영산로와 만난다.

10년 만에 마친 은적산 둘레 한 바퀴 답사

이번에 답사한 은적산 마실길을 다시 살펴보자면 크게 선사주거로와 서호로 둘로 나누어진다. 선사주거로는 장천마을과 엄길마을에서 서호로와 학파로 두 갈래로 나뉘었다가 성재리 무송동 마을에서 다시 영산로와 합류하면서 하나가 된다. 여기에 접한 마을들을 모두 만나면서 10년 만에 은적산을 중심으로 앞뒤에 펼쳐진 청정한 시골길을 전체 한 바퀴를 돌게 되었다. 서호강 들녘을 사이에 두고 은적산을 마주한 지역에 50년 넘게 살았지만 이렇게 빠짐없이 마을들을 둘러본 적은 없었다.

그 과정에서 어른들이 잘 말해주지 않았던 여러 사실들과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그 마을 고유의 이야기들을 알 수 있었다. 때로는 신비스러웠고 때로는 가슴이 절로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때로는 기쁘고 자랑스러웠고 때로는 슬프고 안타까웠다. 이제 은적산 마실길 연재를 마치면서 그동안 느꼈던 소회를 잠시 토로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보다 더 알찬 내용으로 다시 만나고 싶다.

무너져 가는 우리들의 고향, 농촌마을공동체

은적산 마실길을 다니면서 무엇보다 안타깝고 슬펐던 것은 역시 늘어만 가는 빈집들과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가 끊긴 마을 골목길 풍경이었다. 제법 융성했던 문중이 살았던 마을조차 고풍스런 종택 기와지붕에 풀이 솟아 있고 초입부터 폐가가 흉물스럽게 뒹굴고 있을 정도였다.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70·80대 노인들이었다. 10여 년 전 ‘영산로 따라 배롱나무 백리길’을 답사하던 때와 비교해도 마을들은 눈에 띄게 노쇠해졌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공부하고 돈 벌러 간 자손들은 되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귀농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봐도 고향으로 가겠다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고향마을로 돌아가는 것을 오히려 겁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왜 그런지 물어보면 일가친척들과 엮이기 싫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특히 여성분들의 반대가 더 심하다. 도시생활의 편리에 젖어서 그러기도 하지만 시댁 고향으로 귀촌하여 시어른들을 모시며 살거나 손발에 흙을 묻혀가며 농사일을 하는 것이 덜컥 겁이 나서 반대하는 경우도 제법 있는 것 같다.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 은퇴한 남성들이 혼자서 귀향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인은 대도시에 자녀들과 함께 있고 남편만 홀로 귀향 귀촌하여 이산가족으로 지내게 된다. 반쪽짜리 귀향 귀촌인 셈이다. 가족이 함께 힘을 합해도 농촌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힘든 일인데 남성 홀로 감행한 귀촌생활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지, 또 이것이 본인의 행복이나 가족공동체의 행복지수에 얼마만큼 도움이 될 것인지 회의감이 든다.

유행처럼 번지는 마을공동체 복원 운동

한편 서울과 부산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개발이 덜 된 지역을 중심으로 마을재생사업, 문화생태마을 만들기 등 공동체마을 가꾸기 운동이 무슨 유행처럼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도시화와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개인의 이기주의와 이웃 간의 단절이 심화되면서 인정이 넘치는 따뜻한 마을공동체를 꿈꾸는 시대가 다시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도 만만치 않다. 마을공동체 가꾸기를 통하여 뭔가 살만한 곳이 되고 특화된 지역으로 명성을 얻게 되면 주변의 땅값과 임대료가 덩달아 오르고 그렇게 형성된 자본의 강력한 힘이 원래 살고 있던 주민들을 마을 밖으로 몰아내는 결과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구도심이 번성하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쫓기는 현상)이라고 부른다. 필자는 늘 도시를 ‘욕망의 소용돌이’라고 불러왔다.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 보자면, 인간의 욕망과 돈이 결합되어 평범한 상식과 이성으로는 통제하기 힘든 단계에 도달한 상태가 바로 도시-특히 대도시-이다. 소용돌이 속에 한번 휘말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오기가 얼마나 힘든 다는 것을.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일한 방법은 꿈을 꾸는 것이다. 상쾌한 공기와 깨끗한 물과 따뜻한 인정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 다 함께 잘 사는 고향마을 공동체 구현의 꿈을 지속적으로 꾸는 일, 그것만이 해결책이라 감히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도시 생활은 21세기 대안이 아니다.

꿈이란 무엇인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꾸고 꿈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 청소년들에게 꿈을 꾸라고 권한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그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실 ‘꿈’이란 말을 처음 대할 때는 막막하고 막연하다. 얼른 머리에 그려지지 않는다. 많은 경우 꿈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받을 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직업을 말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원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에 꿈에 대한 다양한 선택지가 있을 수가 있겠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꿈이 직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좀 더 깊숙하게 들어가 보면 모든 인간의 꿈은 한 가지로 압축된다.

즉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승에 머무는 동안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모든 이의 꿈이다. 취미생활을 하고 직업을 얻고 돈을 벌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봉사활동을 하고 정치활동을 하는 것, 이 모든 것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직업은 이 ‘행복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직업을 통한 자아실현과 경제적 자립은 행복을 얻기 위한 필요 조건이지 필요충분 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직업도 꿈이라고 한다면 작은 의미에서의 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 모두의 공통된 꿈,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은 무엇이며 나 자신만 별 어려움 없이 잘 살면 행복이라는 꿈을 달성한 것일까? 여기에서 필자의 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다. 23년 전 신혼 시절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2년 동안의 열애 끝에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결혼을 한 지 3개월 되던 때였다. 서울의 단칸방 셋방살이였지만 서로 얼굴만 보고 있어도 그냥 좋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세상이 다 내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런 행복감은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는 내용의 전화 한통으로 깨지고 말았다. 신혼의 꿈이 아무리 달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아파 쓰러졌는데 마음의 동요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나의 행복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행복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다.

세상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곳이다. 그러니 내가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내 가족, 친구, 이웃들이 모두 행복해져야 한다. 좀 더 확장하면 우리 민족이 진정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다른 민족과 다른 국가도 행복해져야 한다. 민족과 국가 간 불화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고 테러가 일어나지 않는가? 전쟁과 테러의 공포 속에서 누가 행복해질 수 있는가? 개인의 행복은커녕 생명마저 위협받는 처지에 놓이고 만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우리의 분단 현실 또한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 민족 공통의 꿈인 평화통일의 꿈이 생겨난다. 지난 5월에 큰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나니 더욱 더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우리 ‘개인의 꿈’은 결국 ‘모두의 꿈’과 만나고 만다. 즉 ‘모두가 다 함께 행복하게 사는 세상’ 말이다. 그러한 세상을 작게 말하면 공동체마을이고 좀 더 크게 말하면 국가공동체이고 아주 확장해서 말하면 지구촌공동체이다. 큰 틀에서 꿈을 이해하고 그것을 구체화하면 목표가 된다.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워 실천에 옮기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과 지역을 살만한 세상으로 가꾸는 것, 그렇게 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것, 이것이 진정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해서 가꾸어진 행복한 마을 공동체는 서로 연대하고 화합하여 보다 크고 넓은 세상으로 확장되어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개인의 꿈이 모두의 꿈과 만나 대동평화 세상에 도달하는 방식이다. 결국 각 개인의 가치는 그가 추구하는 꿈과 이상이 이러한 행복공동체를 이롭게 하는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믿는다.                

 

김창오 시민기자  wangin6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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