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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현상이 남긴 메시지

나는 앞산에 자주 오른다. 어린 편백나무를 비롯해서 도토리나무, 갈참나무, 소나무들이 아기자기 살아가고 있는 도심 속, 야트막한 숲이다. 산 옆구리 저수지에서는 거위들이 깃을 다듬는 한 폭의 그림, 숲이 터널을 이뤄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 산책로다. 산비탈 끝자락에 올망졸망한 밭에 노부부가 물을 준다. 이 가뭄에도 작물들은 제법 생기를 되찾아 간다. 뻐꾸기들도 6월의 날씨가 너무 무더운지 울음소리가 까칠하다. 평일 오전이라 산책을 즐기는 노인, 주부들이 태반이다. 평소 걷기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라 발걸음이 가볍고 땀방울을 훔치는 모습에서 생기가 넘친다.

오늘은 서류제출 약속 때문에 다른 날보다 서둘러 숲길을 내려왔다. 집에 도착해 땀을 닦으며 현관문 잠금 열쇠번호를 눌렀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 세 번을 연속 눌렀다. 이젠 ‘삐삐삐’ 소리가 난다. 건전지 약이 떨어진 신호음일까? 다시 눌렀다. 그래도 소리가 난다. “이상하네. 이 일을 어쩐 담” 해결할 길이 막막했다. 아내는 한 시간 전에 외출하여 운전 중에 있을 것이어서 전화도 못하고 한 숨을 쉬면서 문자를 보내 보았으나 답이 없었다. 계단에 앉아 어떻게 집 안으로 뚫고 들어갈까? 궁리를 하고 있는데 열쇠 밑 부분에 수리공 전화번호가 눈에 띄었다. “아! 다행이다.” 그 곳으로 급히 전화를 했다. “현관 번호 키가 안 열리고 소리만 나니 빨리 와서 고쳐 줄 수 있어요?” “주소를 알려 주세요. 급히 가겠습니다.”

마음이 급한데 위치를 묻는 전화가 몇 번 더 오고야 도착했다. 수리공구를 현관 문 옆에 놓더니 나에게 현관 키 번호를 다시 한 번 더 눌러 보라고 하며 그는 키에 귀를 댔다. 나는 아까처럼 번호를 눌렀다. “건전지 약이 떨어진 것이 아닌데요?” 그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왜 전화했소? 무슨 일 있어요?” “현관문이 안 열려서 수리공을 막 불렀어.” “몇 번을 눌렀는디 그라요.” “당연히 100400이지” “앵, 그 무슨 소리요.” “내 생일을 먼저로 바꾼 지가 언젠디 그라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된 기분이었다. 400100을 누르니 예전과 변함없이 문이 열렸다. 수리공이 출장비를 주라고 했다. “무슨 수리를 했다고 2만원씩이나 주라고 합니까?” “출장비 2만원은 기본입니다.” “그래도 너무 비싸요.” “안됩니다.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요. 문이 안 열렸으면 30만원 들고도 문을 다 부셔야 해요. 다행인줄 아세요. 그러니 자동열쇠를 승용차 속에 넣고 다니세요. 틀린 번호를 세 번 누르면 소리가 울립니다.”

치매 걸린 노인 취급을 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대꾸할 수가 없었다. 순간의 착각으로 돈을 주고 나니 기분이 떨떠름했다.

저녁 때, 집에 돌아와 아내 볼 낯이 없었다. ‘집에 두고 나가면 걱정 덩어리, 데리고 나가면 짐덩어리’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인가? 이게 치매현상의 시초인가? 순간의 착각 현상이었으면 좋겠다. 컴퓨터 비번을 비롯해서 내 비밀번호는 「sjj100400」이다. 이사 오기 일 년 전의 현관 열쇠번호도 ‘100400’이었다. 순간의 착각에 ‘삐삐삐’ 소리가 나니까 당황해서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이라고 아내에게 변명하며 웃어 넘겼지만 내 기분은 매우 씁쓸했다. 처량한 생각까지 엄습했다. 이런 현상이 또 다른 곳에서 나타난다면 어쩔까? 두려운 생각이 머릿속에서 내내 떠나지 않았다.

치매 증상인지, 착각인지, 기억력의 쇠퇴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즈음 무척 사람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화장실 불을 끄지 않고 외출할 때도 있다. 왼손에 자동차 열쇠를 들고 오른 손에 없다고 순간 착각할 때도 있으니, 아직 칠십도 안되었는데… 그 때, 친구 K에게서 카톡이 왔다. 우연의 일치이었지만 오늘 내 착각현상에 답을 던져 주는 「걷기운동, 치매예방에 효과 확실」이라는 제목이었다. 미국 스미스 운동학 교수는 치매로 이행될 위험이 큰 경도인지장애 노인들이 걷기운동으로 기억력과 주요 뇌 부위의 신경회로 연결이 개선됐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했단다.

와사보생(臥死步生) 즉,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말도 있다. 동의보감에도 약보(藥補)보다는 식보(食補)요. 식보보다는 행보(行補)라고 했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노년에 눕게 되면 약해져서 병들게 되고, 걸으면 건강해진다는 말인 것 같다. 걷는 습관이 식습관보다 중요하기 때문인 것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많이 걸어야 허리둘레는 가늘어지고 허벅지 둘레는 굵어진다고 한다. 오른쪽 허벅지 근육은 노폐물 칼로리를 태우는 소각장이며 다리 근육이 크면 포도당이 많이 저장된다고 한다. 다이어트의 완성은 적게 먹는 것이 아니라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현관 키의 비밀번호 착각현상은 나에게 틈만 나면 자주 앞산에 올라 숲길을 거닐라는 메시지를 남긴 것이지 싶다.

신중재  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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