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와 영암(2)-

2002년 6월 14일(금) 나는 평양 여행길에 올랐다. 앞서 ‘6ㆍ25와 영암’이라는 글에서 우리 어머님, 곧 ‘예수 믿는 죄’ 밖에 없는 45세의 무식한 촌부(村婦)를 처참한 방법으로 죽여야 했던 공산주의와 공산당의 실체를 찾아 알고자 죽기 전에 북한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했었다.

남한의 기독교 신자 297명이 KAL기를 전세 내어 평양을 가는 길에 합류했다. 14일 오전 11시 55분 비행기에 올랐다. 좌석번호가 ‘31A’여서 북한의 산하를 내려다 볼 수 있다는데서 “참 행운이라.” 여겨졌다. 우리 일행의 평양 여행 목적은  ‘6ㆍ15선언 2주년 기념 남북 연합예배’를 평양 봉수교회에서 드리기 위해서였다.

사상 최초로 평양으로 직행하는 우리 비행기는  출발 예정시간(12시 25분)을 훨씬 넘겨 오후 1시 10분에야 동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어 이번 여행의 책임을 맡고 있는 한민족복지재단 사무총장 김형석 박사의 안내방송이 시작되었다. 

“어제 북한 실무자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기독교 선교사 1명만 들어와도 긴장을 하는 나라인데 남한의 목사 52명을 비롯 200여명의 장로, 권사, 전도사들이 오는데 대단히 조심스럽다며 개별행동을 가급적 삼가고 돌출행동이 없도록 해달라면서 통일원에서 교육받은 대로 성경은 1권, 휴대폰도 1개만 갖고 특히 이를 두고 오는 일이 없도록 하는 등의 지침을 꼭 지켜 달라”고 했다. 

비행기는 어느새 인천공항을 떠나 서해 쪽으로 나가더니 이내 기수를 오른쪽으로 꺾어 대동강 입구가 보이는 내륙으로 향했다. 북한의 산하는 푸른빛이 전혀 없는 민둥산이었다. 연평도와 백령도, 북한의 장산곶, 진남포가 발아래 그림처럼 펼쳐졌다. “우리 비행기는 지금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모시고 북한을 다녀와서 두 번째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평양에 간다는 기장의 안내방송이었다.

하늘에서 보는 북한을 눈에 담기 위해 창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데 어느새 다 온 듯‘Follow Me’라 새겨진 자동차가 우릴 유도했다. “우리 비행기는 곧 순안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는 안내방송에 이어 “덜커덩!”하고 비행기 바퀴가 땅에 닿는 소리가 들렸다. 인천공항 이륙 후 30분만이었다. 순안공항의 활주로는 하나 뿐인 듯 했다. 순안공항 청사 옥상엔 김일성 주석 사진이 걸려 있었다. 공항에는 프로펠러가 둘 달린 비행기 1대와 소형 여객기 3대 뿐이었다.

김일성 사진이 걸린 청사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고 얼른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 사회의 문화를 보려면 화장실의 관리 상태를 보면 안다는 말이 생각이 나 찾은 것이다. 세면기가 5대, 대변기가 3개, 소변기가 5개였다. 한 나라의 수도 공항치곤 너무나 초라했다. 손을 씻으려고 수도꼭지를 틀었더니 흙탕물이 쏟아졌다. 어느 미개한 나라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내 얼굴이 붉어져 수도꼭지를 얼른 잠궜다.

대기 중인 8대의 버스에 나눠 조별로 차에 올랐다. 나는 우릴 안내하는 북한 사람에게 궁금한 것들을 자주 물었다. 공산당의 실체를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버스에는 길을 안내하는 직원과 국정원 같은 기관원이 타고 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21세기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 등등 수많은 김씨 왕조 부자 찬양 플래카드를 뒤로하고 우리 차는 어느덧 평양 역전에 있는 고려 호텔(45층)에 도착했다. 22층에 있는 객실로 배정이 됐다. 창문을 여니 평양의 한 중심가인 듯 호텔 맞은편에 4∼50층 높이의 아파트들이 즐비했다.

우선 북한을 안내하는 책을 사려고 1층으로 내려가 책 2권을 사고 20달러 짜리 2장을 줬다. 50대 여직원은 남한 사람들의 방문에 긴장을 한 듯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거스름돈으로 5달러를 내줬다. 내가 백지를 달라 해서 볼펜으로 20달러짜리 2개 40달러에서 책 두 권 값 37달러를 빼면 3달러만 주면 되는데 왜 더 주느냐 했더니 대답이 걸작이었다.
“일 없습네다. 우리는 한 핏줄 이야요 _ .” 풀어 해석하면 ‘남한에서 온 사람이 북한 사람을 속여 먹기야 하겠느냐’ 그래서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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