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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쌀과 바꿔먹던 황실이의 추억 사라지고■ 영암천의 추억 ①
고운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졌던 영암읍~덕진면 사이에 흐르던 영암천에는 멀리 목포·광주에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단오날에 모래찜을 즐겼다.(주) 왼쪽 사진은 영암천의 옛모습을 가상한 합성사진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영산강 수질개선을 위한 대책으로 죽산보와 승촌보를 상시 개방하기로 했다. 환경단체는 보를 설치하여 물 흐름을 막아버림으로써 강이 호수화 되었고, 이에 남조류 세포증식이 심화되고 생태계를 파괴할 정도로 수질이 오염되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영산강 하구둑을 개방해서 바닷물이 들어올 수 있게 복원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한다.

1970년대까지도 덕진까지 이어진 영산강에는 낙지, 짱뚱어, 운저리, 숭어 및 각종 어패류가 가득했다. 지금은 농업용수로 사용하기에도 꺼려질 정도로 오염된 상태이다. 수백 년 동안 영암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바다가 없어지자 생존을 위한 수많은 직종들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바다를 잃어버린 영암사람에게 주어진 것은 새로운 간척지였다. 과거 천수답에 의지해 가뭄 때면 굶주려야 했던 사람들에게 벼를 심을 수 있는 간척지는 거부할 수 없는 대안이었을 것이다. 영암사람들은 기꺼이 과거 어업인의 삶을 포기하고 농업인으로 탈바꿈을 시도했다. 결국 배부름을 선택한 대신 삶의 추억을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황소가 죽으면 며느리를 얻어라

과거 시집온 며느리는 매서운 시집살이에 시달려야 했다. 며느리가 감당해야 할 일은 황소 한 마리가 할 일에 버금갈 정도의 중노동이었다. 뙤약볕에 쪼그리고 앉아 하루 종일 밭을 매고, 집에 오면 저녁을 차려 대령하고, 다음날 먹을 보리방아를 찢고, 자정이 넘어 머리를 눕히면, 날이 밝기 전에 아침밥상을 차려내고, 새벽같이 밭으로 나가야 했다.

시아버지는 호랑 새
시어머니는 꾸중 새
시누이는 뾰족 새
남편은 미련 새
나는 썩은 새

시가집 식구에게 오죽이나 시달렸으면 위와 같이 노래했을까. 썩은 새, 며느리는 관절염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인산인해를 이뤘던 단오 모래찜

영암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 영암읍과 덕진면 사이에 흐르는 영암천 강변에는 고운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월출산 동쪽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속에는 월출산 맥반석 모래가루가 섞여 내려와 바닷물과 만나는 지점에 쌓였다. 덕분에 덕진다리에서 망호2리 배날리 마을 앞까지 약 2㎞ 길이의 모래사장이 생겼다.

이곳 모래 속에 몸을 묻고 누웠다 일어나면 잔병이 없어지고 산후에 좋으며, 특히 관절염에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이 오랜 생활경험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소문이 퍼져 해마다 단오절이 되면 영암군은 물론 인근 목포·광주에서까지 몰려온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곤 했다. 단오 날 만큼은 호랑이 같던 시아버지도 며느리의 외출을 특별히 허락하는 풍습이 생겨났다.

다리 다리 묻어라 돌아갈까 넘어갈까
복다리 묻어라 나비같이 쉬어가자

                     -모래찜 노래-

이 노래는 뱃마터 모래 속에다 몸을 묻으면서 여인들이 부르던 노래다. 몸을 묻고 누운 모래무지 주위를 얼씬거려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아이들도 자기들끼리 모래찜 시늉과 장난을 하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돌아갈까 넘어갈까 나비같이 쉬어가자” 부분을 관심 있게 살펴보면 상고시대부터 있었던 주술적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다. 즉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여인에게 있어서 자신의 복다리 위로 나비처럼 쉬어가는 신의 영험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영험의 교접으로 아이를 갖게 해 줄 수 있으리라는 소망이 담긴 노래인 것이다. 복다리의 복은 행복이라는 의미의 복복(福)자일 수도 있으나 인체의 하복부라는 뜻의 배복(腹)자일 개연성이 크다. 어느 경우이거나 복다리는 여인의 자궁을 상징한다.

인정이 넘쳤던 뱃마터 모래사장

보릿고개를 지나 새로운 희망으로 씨앗을 뿌리고 난후 단오 날이 되면 고단한 몸을 이끌고 뱃마터 모래사장으로 모여든다. 가족끼리 올 때면 밀개떡을 도시락 삼기도 하고, 마을 사람이 여럿이 모이면 닭을 잡아 솥단지까지 가져와 장작불을 놓기도 했다. 마을 사람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노래하며 춤출 때면 그간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었다.

밤이면 씨름대회가 열렸다. 누구나 참여하는 모래판 씨름장에는 힘깨나 쓰는 남자들이 모여들었다. 최종 우승자에게는 황소 한 마리가 주어졌다. 우승자 주변에는 왁자지껄 술판이 벌어졌다.

당시 모래사장에는 갖가지 먹을거리도 많았다. 엿장수는 거의 만물상이었다. 갱엿, 가락엿은 물론 각종 잡화도 함께 팔았다. 사람들은 돈 대신 철조각이나 유리병, 고무신은 물론 심지어 헌옷까지 내다 엿과 바꿔먹었다.

오랜만에 놀러 나온 김에 먹을거리도 뺄 수 없는 재미였다. 당시 덕진 오일장과 우시장 주변에는 주막과 국밥집이 여러 채 있었다. 선술집에서는 별다른 안주 없이 막걸리에 김치면 족했다. 여유 있는 어르신들은 마른 명태에 소주를 찾기도 했다. 한참 놀다 주린 배는 돼지국밥이 인기 메뉴였다.

황실이(황강달이) 배의 풍요

70여 년 전 이맘때, 영암읍 배날리 선착장에 황실이 배가 도착하면 선원은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황실이 배가 왔음을 알렸다. 돈이 있는 사람이나 돈이 없는 사람이나 앞 다퉈 배날리로 달려갔다. 돈이 없는 사람은 막 거둬들은 겉보리를 이고지고 바닷가로 향한다. 선원은 기쁜 마음으로 보리를 황실이와 바꿔준다. 보통 보리의 두 배에 달하는 양을 황실이로 바꿀 수 있었다. 쌀이 귀했던 당시에 보리쌀은 인근 섬 사람들에게 높은 가격으로 팔렸던 모양이다.

가져온 황실이는 감자를 밑에 깔고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물기 자박하게 끊여 낸다. 당시 황실이 찌개는 최고의 만찬이었을 것이다. 남은 황실이는 말려서 구워먹거나 소금에 절여 젓갈로 담았다. 말리는 과정에서 더러 구더기가 생기기도 했으나 털어내고 먹으면 그만이었다. 오염된 고기에 비해 오히려 구더기는 친환경의 산물이었던 듯하다.

그리운 옛 영암천을 고대하며

영암천을 포함한 영산강 수질오염에 대해 바닷물을 막은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이 만들어 낸 오염된 하수와 각종 쓰레기가 더 큰 원인이다. 고여 있는 저수지라도 오염원이 없는 경우 자연정화 능력으로 깨끗한 물이 유지된다.

영암군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100억 원 가량을 투입해 영암천 5.3㎞에 대한 생태하천 복원사업을 추진했다. 사업의 주요내용을 보면 하천 내 수질개선을 위해 제내지에 하루 2만 톤 처리용량의 수질정화 습지와 수질 정화수로 등을 조성했다.

하지만 인간이 사용하고 버린 하천수를 다 막아내기는 역부족이다. 아직도 오염된 생활하수가 곳곳에서 영암천으로 유입되고 있다. 오염원에 대한 정화 노력 없는 하구둑 개방은 해결책이 안 된다. 대기오염을 막기 위해 화력발전소를 닫은 것처럼 수질오염을 막기 위한 특단의 정책이 시급하다. 우리 후손들이 영암천에 발을 담그고, 고운 모래 속에 몸을 찜질할 수 있는 날을 학수고대한다. 

영암문화원  yasinmoon@hanmai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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