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3때부터 50여년간 일기장 꼼꼼히 기록
5·18때 처남 계엄군 총탄에 슬픈 역사도
농사일지 등 해묵은 일기장 소중히 간직

1960년대에서 현재까지, 소소한 일상에서 역사적인 순간까지, 소년에서 노년까지, 평생을 빠짐없이 일기장을 써온 60대 중반의 이춘기(66·군서면 오산마을)씨. 그가 애지중지 아끼며 간직해온 일기장을 공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씨는 “신문에 공개하면서 부끄러운 마음도 있으나 내게는 소중한 추억들이 적혀져 있고 미래에는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의 시대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일기 쓰기를 영암중학교 3학년(1966년) 때부터 시작했다. 집이 가난해 할머니와 아버지를 따라 남의 집에 품을 팔러 가던 길, 8남매의 맏이로 동생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상경해 옷 장사를 시작한 이야기, 틈틈이 공부해 대학까지 공부하려고 했으나 좌절된 날들의 일은 지금까지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한다. 또 서울에서 옷 장사를 하면서 손님들과 이야기할 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그 때 자식을 본다고 올라온 아버님에게 못된 모습을 보여 죄송스러웠던 일, 장사하면서 함께 있어준 시간이 별로 없어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지 못했던 두 아들에게 미안하고 짠한 마음을 적어둔 날은 잊지 못한다고 한다.

1971년 서울 중부시장의 한 식당에서 30원 짜리 식사, 쌀밥에 보리밥이 섞여 까칠한 싸구려 밥을 먹으며 일을 찾지 못해 식비를 아끼려고 하는 초라한 신세를 한탄하던 일, 같은 해 제7대 대통령 선거를 바라보며 아직 소년이라 선거권이 없어도 정치에 관심을 보였던 일, 처남인 문영동 씨가 1980년 5·18 마지막 날인 5월 28일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숨을 거둔 일 등도 기록했다.

이 씨는 한 때 옷장사로 가게를 6곳 이상 가졌을 정도로 성공한 적도 있지만 실패를 맛보고 광주로 내려와 떨이 장사를 할 때의 씁쓸한 기분을 안고 건강까지 무너져 1980년대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몸을 추스르며 현재까지 일기를 작성하고 있다. 이러한 50여년 동안에 유지해온 기록의 습관은 농사일지, 경운기 일지 등을 꼼꼼하게 작성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이 씨는 “그동안 일기를 쓰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뀐 적이 많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다. 남은 삶에서도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을 일기에 적고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좀더 윤택하고 보람찬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병들고 찌든 나를 다시 받아준 고향, 이곳에서 향기로운 인생을 가꾸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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