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초창기 지역민 중심의 다양한 기사
군민 의식개혁과 지역사회 변화 모색해

영암신문은 2017년 7월 7일 창간 기념일을 맞아 2001년 6월 21일자 창간 준비호부터 200호까지의 기록된 기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영암 지역의 다른 언론사와는 다르게 매우 방대한 기록을 가지고 있어 올해에는 200호까지 정리하고 나머지는 다음 창간기념일에 맞춰 연재할 계획이다.
창간부터 200호까지 바라본 영암신문은 말 그대로 비판정신을 가지면서 지역신문의 본질을 지켜나가고 지역민에 밀착한 보도로 언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지역신문 본연의 역할에 다소 미흡한 점도 없지 않았지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는 역동적인 모습들이 보인다. 
또 지역발전을 위한 지역민들의 다양한 생각과 의견들이 결집돼 미래를 향해 승화해가는 모습은 고향발전을 염원하는 지역민과 향우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편집자 주>  

2001년 7월 7일 창간호

지방화시대, 군민과 향우의 신문으로

영암신문의 창간은 2001년 4월 10일 법인설립등기, 그해 4월 17일 ‘전남 다 00148’ 21세기 영암신문으로 정기간행물 등록, 4월 20일 사업자 등록을 완료하고 창간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6월 12일에는 영암군립도서관에서 창간발기인대회를 갖고 교육자 출신인 문창집씨를 창간발기위원장 및 명예대표이사로 추대했다. 이때 발기인은 총 123명이 참여했으며 발행인·편집국장에 문배근(현 영암신문 대표이사), 편집인은 김한남(현 영암문화원장)씨가 맡았으며 이후 대표이사 직은 2004년 문창집 명예대표이사가 퇴임하고 현재까지 문배근 대표가 맡고 있다.

창간 당시 21C영암신문으로 사명과 제호를 정한 것은 기존에 나왔다가 폐간한 영암신문이 전남도에 등록돼 있어 동 제호를 사용할 수 없게 된데 따른 것으로, 이후 전남도의 일제 정리로 2002년 11월 29일 영암신문으로 제호를 바꿨다.

첫 지면 발행은 2001년 6월 21일 창간 준비호이다. 대판 4면을 발행하면서 첫 시작을 알렸는데 이때에는 제호와 전체적인 디자인 틀을 정했으며 신문 인쇄소와의 편집시스템 조율을 통해 신문인쇄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간이었다. 이러한 시간을 거쳐 7월 7일 창간호를 발행했다.

문창집 대표이사는 창간호에서 ‘철저한 영암인의 신문이 되겠다’고 밝히고 ‘우리 지역의 작은 이야기까지도 소중히 다뤄 군민의 공감을 받겠으며 지역발전 논리를 개발하고 지역문화 발전과 계승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창간호에는 정계와 지역 각계각층의 축하글과 기고가 있었는데 특히 당시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이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축사가 눈에 띤다. 노 전 대통령은 영암신문이 대안을 제시하는 언론이 되기를 바라면서 ‘언론의 본질과 사명에 충실하고 지역민에 친근한 신문, 서민과 농업인의 애환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신문이 될 것’을 당부했다.

2011년 창간 10주년을 맞아 지역신문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지면을 쇄신하며 제 2의 창간을 다짐하는 차원에서 기존 8면에서 12면으로 증면하면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영암신문을 약속했다.

2012년 3월에는 문화관광부 산하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우선지원대상사로 선정된 이후 올해까지 6년 연속으로 선정되는 위업을 이뤘다. 특히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지면개선을 실시해 가독성이 높은 편집디자인으로 개선, 기자 대상 저널리즘 등 이론과 현장을 오가는 교육을 통한 자질과 능력향상, 지역학교에 대한 NIE교육, 언론 소외계층에 대한 구독료 지원, 각종 공모를 통한 지역사업 등 지역언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영암신문은 지역 정치사를 장식한 인물들의 흥망성쇠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 행정에서 실시한 각종 사업의 성패, 각 읍면의 역사문화·인문 지리적 변화까지 기록된 기록문화로서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디지털화와 4차혁명에 대응하며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더불어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언론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지역민과 함께 꿋꿋이 걸어가고 있다.

지역여론 선도, 지역발전 꾀해

영암신문 창간 당시는 1995년 6월 27일 지방자치가 시작되고 6년이 흐른 김철호 군수의 민선3기 시대였다.

당시 지방자치의 본래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중앙 또는 지방 세력가에 지역여론이 묻혀 따라가는 형세였다. 이에 영암신문은 지역민의 의식개혁에도 많은 부분을 할애했으며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영암사람 중심의 지역발전을 모색했다.   

창간과 더불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영암 사람들의 심중을 읽어 그 방향대로 지역발전이 이뤄지도록 지역민들과 함께했으며 이는 본지가 지역발전을 위해 걸어온 길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 내용은 ‘영암이 타 지역에 비해 발전이 늦어지는 원인으로 공동체의식 결여 및 이기주의가 41%, 지역여건부족 37%, 인물 및 단체장의 능력부족이 각각 11%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영암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지역특산물을 개발해야 한다(41%), 관광지 개발과 지역 축제를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31%), 대형 국책사업을 유치해야 한다(24%)라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그만큼 영암 사람들이 지역발전에 대한 열망도 컸겠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기에 더 현실적인 의견과 방안을 제시한 것이었고 본지를 통해 보도되자 공론화됐다.

지역신문은 단체장의 홍보의 장이기도 했지만 지역민들의 욕구가 지상에 표출되고 여론화되면서 선거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기에 지자체장과 정치인은 더욱 열심히 지역발전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뛰어야 했다. 이밖에도 영암발전을 위한 여러 사업에 대해 지역민 의견이 반영되도록 제안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면을 밝힌 각종 기획시리즈

영암신문의 첫 기획시리즈는 ‘영암인물사’였다. 고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인물사를 정리 및 발굴해 게재했는데 도선국사, 왕인박사, 최지몽, 최덕지, 최경창, 김완 장군, 현준호, 김준연 선생 등의 행적을 그려내 독자에게 영암역사에 대한 지식을 제공했다.

이후 ‘월출산 야생화’, ‘내고장 전설을 찾아’ 등의 시리즈로 영암 알리기에 앞장섰으며 스토리텔링 개념을 선보였다.

특히 ‘클릭 이사람’은 현재까지 유지해오고 있는 가장 오래된 시리즈로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영암관련 사람들의 성공담, 봉사정신 등의 이야기를 전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그때와 지금의 영암은

시민의식을 높이고 행정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온 본지의 발자취도 보인다.

영암 내의 여러 읍면 지역 경관을 해치는 쓰레기 불법투기, 방치되거나 관리가 미흡한 공원과 길거리 등 시민의식이 낮은 우리 지역의 민낯이 그대로 지면에 노출되고 관련 공무원의 업무태만도 지적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길거리는 다소 산만하고 지저분하며 잘 가꾸어지지 않았다. 쓰레기 불법투기가 많은 곳엔 CCTV가 설치돼 불법투기 행위가 적발된 사람에게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여전히 성행하고 있어 CCTV가 설치되는 곳은 더욱 많아지고 있다.

또 군민과 관광객에게 쾌적한 환경과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하려는 민관의 노력도 부족해 보인다. 물론 가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2018년 4월에 열릴 도민체전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가꾸지 않고 방치된 길거리와 각종 시설은 최근 본지 기사로 지적돼 영암이 더욱 분발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환경적인 문제에서도 삼호 지역에서의 석산개발 등으로 지역주민이 소음과 먼지 피해를 본 기사 등이 있는데 허가를 내주고 현장을 감독하는 부분에 있어 지금도 행정의 미숙함을 보이고 있으며 아파트 공사현장, 퇴비공장 등은 여전히 민원이 많은 곳이다. 

교육 분야에 있어 2002년 학교 통폐합을 통한 명문고 육성에 대해 본지 지면을 통한 각계의 의견이 지상토론 등의 형식으로 표출됐지만 뜻을 모으지 못하고 결국 지금까지 수면 아래에서 논의조차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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