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수 웅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는 이야기를 되새겨 보자.
신라 48대 임금인 경문왕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귀가 갑자기 커지기 시작하여 흡사 당나귀 귀가 되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왕후도 궁인도 아무도 모르고 오직 한 사람 복두(귀한 신분의 사람이 쓰던 모자) 만드는 장인(匠人)만이 알고 있었다.
얼마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꺼리인가.
하지만 상대가 천하의 권력을 한 손에 쥔 임금님이라서 차마 그 소문을 퍼뜨릴 수가 없었다. 정말로 그 이야기가 하고 싶어 입이 간질간질하였지만 복두장이는 이를 억지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복두장이는 원인 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앓아눕기 시작했다.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물론 명의들이 온갖 비방을 모두 써가며, 진찰을 하고 처방을 내렸지만 이 또한 허사여서 마침내 죽기로 내놓았다.
그때 한 의사가 마지막으로 진찰하면서 내 보기에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서 이런 병이 생긴 것 같으니 기왕지사 죽을 거라면 하고 싶은 말이나 한 번 실컷 해보라고 일러주었다.
그래서 복두장이는 아무도 안 보는 도림사의 대숲으로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목청껏 외쳐댔던 것이다.
그러고 나자, 복두장이는 거짓말 같이 시나브로 병이 낫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나만이 알고 있는 신기한 이야기를 남에게 들려주고 싶은, 사람의 과시욕(이런 것까지 알고 있다는 자기 확인)이라는 본능은, 생명도 초월할 만큼 강하다는 말이다.
아라비안나이트 즉 천일야화 이야기도 되새겨 보자.
아라비아에 늙은 임금님과 젊고 아리따운 왕비가 있었다.
어느 날, 이 젊은 왕비가 궁중지기인 건장한 젊은이와 정사를 벌리고 있는 것을, 늙은 임금님이 목격하게 되었다.
이를 본 임금님은 크게 진노하여 두 남녀를 즉석에서 목을 베어 죽이고, 그래도 분이 안 풀린 임금님은 날마다 예쁜 처녀들을 하나씩 불러 한 밤을 지내고나서 새벽에 죽이곤 하였다.
천하의 권력을 한 손에 쥔 임금님이 하는 일이라, 그 누구도 이를 막지 못했다.
그대로 그냥 놔두었다가는 나라 안, 처녀들의 씨를 말릴 지경에 이르렀다.
그 때 한 대신의 딸 셰혜라자데라(샤라자드, Chahrazade)가 용감하게 나섰다. 스스로 자청해서 임금님 방에 들어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물론 그 부모는 펄쩍펄쩍 뛰었다.
임금님 방에서 하룻밤만 새고 나면 차디찬 시신이 되어 나올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셰혜라자데라의 결심은 너무 비장해서 결국은 그의 부모도 말리지 못했다.
그녀는 예사 여인이 아니었다.
평소 독서량이 많고 언제나 자기 주관이 뚜렷했으며, 매사에 남다른 안목을 가진 매우 사려 깊은 여인이었다.
그 처자는 임금님 방에 들어가자마자 이야기부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야기는 참으로 재미있었다.
임금님은 ‘그래서야, 그래 갖고야’를 연신 되뇌이며, 셰혜라자데라의 이야기 속으로 점점 빨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임금님은 그녀를 죽일 짬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에이 내일 저녁에 죽이면 되지’하고 임금님은 다음 날 저녁을 기약했지만 셰혜라자데라의 다음 날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했다.
그래서 임금님은 다음 날도 그녀를 죽이지 못했다.
그러기를 천일 밤! 임금님은 마침내 죽일 생각을 버리게 되고 그 나라 처녀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처럼 사람의 호기심(남이 알고 있는 것을 자기도 알고 싶다는 일종의 소유욕을 말한다.)은 살의(殺意)까지도 녹이는, 목숨보다 더 원초적인 본능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본능적 욕망이 있는데 이를 실현함으로써 심리적인 확장의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렇듯 소설이란 작가의 과시욕과 독자의 호기심이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희랍문명에서 근대문명으로 발전함에 따라 우리에게 준 쾌락의 발명은 담배밖에 없다.’고 갈파한 피에르 루이스 말에 티보오데가 소설 하나를 덧붙였음이 틀림없다.

    군서면 서구림리 生
 전 조선대·광주교대강사 (문학박사)
 전 전라남도문인협회장
 아시아문화전당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작가(소설가)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