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홍

‘뼈다귀’는 ‘뼈’의 속어이기도 하고 ‘뼈’의 낱개를 가리키는 표준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뼉다귀’는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이지만, ‘뼉다귀’에 ‘개’를 붙여 ‘개뼉다귀’라 하면, ‘별 볼일 없으면서 끼어드는 사람을 경멸하는 태도로 속되게 이르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바로 ‘개뼉다귀’와 같은 뜻의 말이다.
뿐만 아니다.
높임말(존댓말)과 ‘∼스럽다’와 같이 명사 뒤에 붙어 ‘그러한 성질이나 느낌이 있다’는 뜻의 형용사를 만드는 말은 외국인에게는 더욱 어려운 표현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지나쳐서 존댓말을 잘못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회사의 고객 담당 직원이 “궁금한 점이 계시면 전화로 문의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존대법에 어긋난다.
이때에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전화로 문의해 주세요.”로 말해야 한다.
‘있다’를 높여 말하면 ‘계시다’가 되는데, ‘계시다’를 잘못 쓰는 경우가 많다.
‘갖고 계시다’라는 말도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있다’란 말이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는 “방에 계십니다.”처럼 ‘계시다’로 높이게 되지만, 어떤 사물의 소유를 뜻할 때에는 “갖고 있으십니다.”처럼 ‘있으시다’로 높여 말해야 한다.
이를 “갖고 계십니다.”라고 하면 틀린다. 높임말을 쓸 때에는 무엇을 높여서 말해야 하는가에 주의를 기울여서, 올바른 존대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직장 상사가 지시하는 말에 대하여 “알았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손하게 존대해야 할 자리에서는 “잘 알았습니다.”, “괜찮습니다.”처럼 말해야 한다.
요즈음 우리 젊은 세대가 ‘-요’체 말을 손윗사람에게 너무 쉽게 남발하는데, “알았어요.”나 “괜찮아요.”에서 ‘-요’를 떼어 버리고 나면 “알았어.”, “괜찮아.”처럼 완전한 반말이 된다.
완전한 반말에 이렇게 ‘-요’ 자만 붙여서 상대를 높여 준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한국어는 거꾸로 읽어도 똑 같은 문장이 되도록 표현할 수 있다.
‘다시 합창 합시다’ ‘자꾸만 꿈만 꾸자’ ‘다 좋은 것은 좋다’  ‘여보게 저기 저게 보여’ ‘여보 안경 안보여’와 같은 말처럼…. 그렇게 우리 한국어는 뒤에도 눈이 달리고 입이 달린 융통성과 위트가 있으니, 매력이 넘치는 언어다.
외국어에 비해 한국말의 유연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다음과 같은 문장을 예로 많이 드는데, 모두 같은 뜻인 것 같으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국어에서 아래의 문장들은 그 의미가 모두 다르다.
너 나랑 지금 장난하냐? / 너 나랑 장난 지금하냐? / 너 지금 장난 나랑하냐? / 너 지금 나랑 장난하냐? / 너 장난 나랑 지금하냐? / 너 장난 지금 나랑하냐?
한국어는 끝에 나온 단어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끝에서 바로 앞의 단어가 그 다음으로 중요하다.
즉, 끝으로 갈수록 중요도가 올라간다.
그러므로 첫번째 문장은 ‘장난’을 했다는 것에 가장 기분이 상한 것이고 다음 ‘현재’ 그런 짓을 했다는 것에 기분이 상한 것이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했다는 것에 기분이 상했다는 뜻이다.
이해를 위해 마지막 문장도 설명하자면, 그 장난을 ‘나에게’ 했다는 게 기분이 가장 나빴고, 다음 ‘현재’ 했다는 것에 기분이 상했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현재 행한 것이 바로 ‘장난’이었다는 게 기분이 나빴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국어를 매우 잘하는 줄 안다.
하지만 그것은 ‘생활영어’처럼 ‘생활국어’에만 한정된 것이고 그것마저 그다지 잘하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출처: http://diary.virlit.com/14 [대우주시대]>
기후, 환경, 관습, 생활방식에 따라 발전한 문화에 따라 언어도 세분화되고 발전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세세하게 분류되어 있는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아 설명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언어로 나타내고 언어로 담은 세상이 우리의 생각, 관념을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각의 언어는 그 언어를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며 그 사람들은 그 언어 속에서 생각을 이어받는다.
다양한 민족의 문화가 그대로 언어에 녹아들다 보니 언어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되었다.
문화 중 무엇이 발달 되었는지에 따라 언어가 발달하므로 언어의 차이로 설명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려움 끝에 한국어를 어느 정도 터득한 한 외국인 젊은이가 드디어 자신감을 가지고 거리에 나섰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이 간판 저 간판을 읽던 이 젊은이가 그만 어느 간판을 보고 기절초풍했다.
‘할머니 뼈다귀 해장국’, 젊은 외국인은 ‘할머니 뼈다귀 해장국’이라는 간판을 보고 ‘오랜 전통’과 ‘맛깔스런 할머니의 손맛’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고, 잠시 혐오스러운 음식으로 오해(?)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한편, 영어 회화체에서 “I‘m coming”은 “나 가고 있어”라는 뜻이다.
영어 문화권에서는 상대방을 기준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I'm going”이 아닌 “I'm coming”으로 표현한 것이다.

     영암읍 역리 生
  전 동강대학교 교수 (경영학박사)
  늘빛 문화교육연구소 이사장
  영암군 노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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