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서

영암사회에서는 ‘6ㆍ25 한국전쟁’에 관한 얘기를 꺼내는 것은 “삼가야 한다.” 는 말들을 들었다.
이유는 그로 인한 피해가 너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좌ㆍ우익 모두가 엄청난 피해를 입었기에 좌익을 얘기하건, 우익을 두둔하건 그때 입은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꼴이라 그런 얘기를 글로도 쓰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
그러나 6ㆍ25 한국전쟁 67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영암에서 낳고 자란 내 경험담을 고향신문에서조차 얘기하지 못할 게 뭐있나 싶어져 감히 그 때의 얘길 꺼내려 한다.
6ㆍ25때 나는 공산당에 부역(?)을 했다.
우리마을 소년단 ‘연락부장’이라는 직함을 지니고 저녁마다 모여서 배우는 노래연습에 개근을 했다.
그래서 북한 국가는 물론, 김일성을 찬양하는 노래를 줄줄 외워 소리 높여 불렀었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 하며 배웠던 노래 말이 하나도 잊혀지지 않고 생각이 나 2002년 6월, 공산주의의 실체(?)를 알고자 평양에 갔었을 때도 김일성 장군 찬양노래로 북한 사람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었다.
평양에 다녀온 얘기는 뒤에 하기로 하고 먼저 6ㆍ25 당시의 체험부터 얘기하고자 한다.
우리 가정은 어머님께서 신앙생활을 하신 관계로 모태신앙이며 어머님께서는 6ㆍ25때 순교를 당하셨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나는 북한이 남침을 하면서 “미국이 남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기독교 선교사를 먼저 보낸 것이므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미 제국주의자들의 앞잡이라.” 해서 무조건 죽인다고 들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은 공산체제에 동화될 수 없는 ‘반동분자’들로 여긴다고 들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부역을 했다.
12살 애가 뭘 안다고 소년단에 뛰어들었겠는가마는 어머님께서 마을에 사는 사상가(당시 좌익 활동하는 사람들을 마을에서는 그렇게 불렀다.) 집에다가 당시에는 귀한 닭백숙을 끓여서 늘 갖다 바치는 것을 보고 난 그렇게 느끼며 살았다.
몇 해 전엔가, 육군훈련소 입소 장병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6ㆍ25란 무엇인가?” 하고 물었더니 상당수가 ‘북침이었다.’고 답해 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6ㆍ25로 인해 우리민족 2백여만 명이 죽고, 죽임을 당했다.
영암에서만 해도 우리 어머님을 비롯, 87명의 기독교인들이 죽었고, 그 명단이 군서면 왕인박사 묘역입구에 세워진 순교비에 올라 있다.
군 단위로는 전남도내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를 낸 곳이 영암이다.
영암이 전남 최다의 기독교 순교자가 난 이면에는 월출산을 중심으로 활동을 한 빨치산들 때문이라고들 한다.
1950년 11월 10일 아침 -. 어머님 심부름을 가다가 온 마을을 둘러 싼 공산군들의 총격과 방화가 시작이 되자 나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한 민가에 숨어들다가 집주인 아들이 “너는 반동분자니까 안돼, 나가!” 하며 숨겨주지 않고 내치는 바람에 도망쳐 살아났고 어머님은 심부름 보낸 나를 찾으러 다니시다가 신분이 밝혀지면서 마을에서 즉결 처분을 당하셨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당일 30여명의 마을 사람들이 포승줄에 묶여 나가 인민재판이라는 형식을 거쳐 기독교인 2명이 추가로 목숨을 잃었지만 우리 어머님은 ‘예수 믿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을 앞에서 죽창으로 무장을 한 자들에 의해 처참한 죽음을 당하셨다.
농부의 아내로 45살의 촌부(村婦)가 무슨 그리 큰 죄를 지었다고 자기네들이 내세우는 인민재판이라는 형식의 민주적(?) 절차도 없이 현장에서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는지…. 성인이 되어가면서부터 어머니를 한번 “어머니!” 하고 불러보지 못하고 자라야 하는 설움이 복받칠 때마다, 공산당의 실체가 무언지 꼭 한번 보고 싶었다.
나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부끄럽게 생각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독일처럼 전범 국가를 쪼개 나누는 국토분단의 아픔을 일본이 당해야 하는데도 우리가 대신 당했다는 사실 -. 더욱 분한 것은 패전국가인 일본이 경제적으로 폭삭 망했어야 함에도 6ㆍ25로 인해 오히려 경제가 살아나 지금은 세계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또 다시 한반도에 분쟁이 일어나길 기대하며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 -. 이러 저러한 의문점들을 풀기위해 1991년부터 북한에 의약품을 보내온 한민족 복지재단의 일원으로 평양에 가기로 했다.
공산주의와 공산당이 뭐길래 한반도를 이리도 괴롭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계속> 

     학산면 매월리 生
  전 한국일보 기자
  5·18광주민중항쟁 관련
     강제해직 (민주유공자 포상)
  전 무등일보 주필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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