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의 송

영산강 지류인 영암군 학산면의 망월천 최상류에 ‘광암’이라는 마을이 있다.
필자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까지 살다가 인근 목포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물론 방학을 하면 광암마을로 돌아와 거의 매일 깨복쟁이 친구들과 마을 앞 냇가를 쏘다니며 놀곤 했다.
어머니는 방학 동안이나마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기 위해 애쓰셨는데,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바로 토하젓이다.
어머니가 대바구니나 조랭이를 들고 앞도랑과 샛도랑에 우거진 수초의 물에 잠긴 부분을 몇 군데 훑으면 펄떡펄떡 뛰는 토하가 한 보세기 넘게 잡혔다.
이 토하에 고추·마늘 따위의 양념을 넣고 찰밥에 섞어 절구로 찧으면 즉석 토하젓이 만들어졌다.
“배고프지잉? 아나 언능 묵어라.” 하며 토하젓 반찬을 곁들인 점심상을 들이미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수십 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생생하다.
이 토하가 꽤 오래 전 망월천에서 사라져버려 두고두고 아쉬웠는데, 최근 들으니 요즘 다시 잡히고 있단다.
바로 유기농업 덕분이다.
망월천 상류지역의 유기농업은 천해교회 박윤제 장로가 13㏊의 논에서 유기농 쌀을 생산하며 본궤도에 올랐다.
지금은 광암·용산·샘바데 들과 용소리들 등 모두 500㏊에서 유기농 쌀을 생산해 생협 등의 유통채널을 통해 전량 판매한다.
유기농업은 농가소득 증대 뿐만 아니라 망월천 수질정화와 함께 1급수에서 사는 토하가 다시 돌아오는 기적을 가져온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경험한 농민들은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더 열심히 유기농업으로 쌀을 생산하기로 의기투합했다.
누가 지시하거나 권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유기농업과 관련해 사전교육을 하고 선진지 견학길에도 올랐다.
특히 젊은 농민 박다니엘씨는 인터넷을 검색해 충남 홍성군 문당리의 유기농업공동체 모범사례를 PPT 교육자료로 제작, 그곳으로 견학을 가는 2시간 동안 버스 안에서 동료 농민들에게 자료화면을 보여주면서 사전교육을 하기도 했다.
‘여행은 노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학문이며,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마음으로 문당리를 찾은 농민들은 주형로 선생으로부터 ‘문당리 지역농업발전 100년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사전교육 덕분에 대부분의 농민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들었다.
그런데 견학을 마치고 홍성에서 영암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의 분위기가 무거웠다.
선진지 견학이라고 하면 으레 술잔도 오가고 왁자지껄하기 마련 아닌가. 하지만 이날 농민들은 평소와 달리 진지하기만 했다.
“우리도 한번 해보자”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진지 견학을 다녀온 농민들은 10여일 후 뒤풀이를 겸해 다시 모였다.
이 자리에는 박윤제 장로 내외와 그의 아들 다니엘, 20여 명의 농민부부, 군청과 농협직원, 필자 등 모두 30명가량이 참석했다.
토론에 나선 농민들에게서 쉽게 자포자기하던 예전의 모습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길이 보이니 한번 해보자는 의욕이 뚜렷이 느껴졌고, 우리고향 농촌지역 발전을 정부나 행정에 의존하기보다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해보자는 자발적인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이미 경험에서 우러난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망월천과 학산천 일대 500㏊나 되는 면적의 유기농업 정착, 수십년 만에 돌아온 토하 등에서 이들은 자신들은 물론 후손들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망월천을 넘어 본류인 영산강도 살려보자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영산강을 낀 전남은 전국 쌀 생산량의 20%를 차지하는 곡창이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200만t이 넘는 쌀 재고량 때문에 영산강유역에서 행해지는 관행적인 벼농사가 그다지 희망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마당에 생명을 중시하는 농업이 망월천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확산된다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비추어 겨자씨보다 더 큰 희망의 싹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영산강유역 광활한 들녘에 유기농업이 정착되면 영산강이 회복되고 팔뚝만 한 숭어와 농어도 돌아오지 않겠는가. 영산강이 살아나고 마한과 백제의 전통에 기반한 이 일대의 문화가 다시 꽃피면, 영산강유역은 전국 어디서나 부러워하는 축복받은 녹색의 땅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이러한 확신은 유명한 학자의 제안 때문도 아니고, 행정기관의 지도에서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땅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애향심 강한 민초들이 나선 것이기에 더욱 믿음이 간다.
사실, 유기농업을 통해 영산강유역을 살리는 것은 1석3조의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남아도는 쌀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지구환경 문제와 국민의 건강문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더욱이 이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 UN이 선언한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지속가능한 개발목표)에도 부합하니, 결코 대한민국 서남부 조그마한 지역에서 펼쳐지는 움직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꿈은 그냥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더 많은 농민들이 함께 꿈꾸는 유기농업은 토하가 돌아온 망월천을 넘어 숭어와 농어가 뛰노는 영산강을 현실로 반드시 실현할 것이다.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자그마한 겨자씨는 이미 뿌려졌다.
 환경과 생명을 중시하는 우리 영암 농민들의 협동과 상생의 정신이 이 씨앗을 소중하게 가꾸어 창대하게 꽃피울 것임을 믿는다.

     학산면 광암마을 生
  전 농협중앙회 신용대표
  전 농민신문사 사장
  한일농업농촌연구소
     공동대표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