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서

나는 우리교회가 운영하는 ‘사랑의 식당’에서 점심 때 밥을 푸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매 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회 밥을 푼다.
‘밥 퍼 봉사’가 1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그만 쉴까도 생각해 보지만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점심 한 끼를 위해 먼 길을 걸어오시는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그래서는 안 되지…” 하고 생각을 접는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를 하며 살자….
‘사랑의 식당’은 나라와 교회가 함께 운영하는 무료급식소다.
광주광역시 동구청과 우리 광주계림교회가 재정과 일손을 보태어 동구지역 내 점심을 거르시는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에게 점심 한 끼를 대접하는 것이다.
8년 째 이어오는 우리교회 ‘사랑의 식당’은 동구지역에서는 꽤 소문이 나 있다.
우리교회와 같은 시기에 많은 교회들이 이 제도에 동참을 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중도에서 그만뒀다.
가장 큰 어려움은 교회에서 봉사해야 할 일손이 부족한데다 감독관청의 간섭(?)이 심하다는 것이다.
음식을 만들고 요리하는 분 등의 인건비와 음식 재료비는 국가에서 지원하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지만 식재료의 위생·청결·봉사자들의 일손 등으로 교회가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게 이 ‘무료 급식소’ 운영이다.  
유난히도 더웠던 지난해 여름-. 매일 100여명의 어르신들에게 밥을 푸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닌 줄은 알면서도 나이 들면서 누군가를 위해 봉사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일에 뛰어들었다.
무료급식은 국민소득 3만 달러시대를 사는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노숙인·노약자·공공근로로생활하는 할머니, 연탄가게 아저씨 등등 밥을 먹기 위해 줄지어선 어르신들의 표정은 갖가지다.
프라이팬에 가득 담아준 밥과 국을 들고 돌아서는 어르신들의 표정 또한 여러가지-.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날마다 새 반찬이니 정말 고맙습니다.” 등등….
하나님이 주신 일용할 양식이니 그런 말씀 하시지 않아도 된다고 몇 번이나 강조해도 막상 주린 배를 채운다는 현실 앞에서는 고마움을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운가 보다.
에어컨이 식사하러 오신 어르신들 쪽으로 향하다 보니 밥을 푸는 곳엔 등 뒤의 털털거리는 벽걸이 선풍기가 고작이다.
가스로 하는 밥솥 뚜껑을 열면 밥솥에서 확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에 얼굴에서는 땀이 줄줄 흐른다.
등 뒤의 털털거리는 선풍기의 더운 바람까지 가세하면 온 몸이 땀에 흠뻑 젖곤 한다.
밥이 질게 되면 프라이팬에 밥을 담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대개는 두어 번의 주걱 질에 밥을 담긴 하지만 밥이 질면 3~4번 주걱을 털어가며 밥을 담아도 주걱에 붙은 밥이 담으려는 양만큼 담아지지가 않는다. 밥 푸는 게 손에 익숙하지 못한 남정네의 전형적인 서투름이다.
그걸 지켜보며 기다리는 어르신이 “아따 밥 적게 줄라고 엄청 애쓰네.”하거나, “아따 밥 쪼깐 더 주제 그라요. 원!”할라치면 나도 몰래 화를 낸다. 
“내가 밥 작게 줄라고 그라요? 밥을 남겨서 버링께 그라제! 밥 버리면 천벌 받아요, 천벌?”  어릴 때 구정물 통에 하얀 쌀밥태기 나가면 난리가 났었던 어른들의 꾸중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내뱉는 말이긴 하지만 “쌀밥을 버리면 천벌을 받는다.”는 말이 지금 세상에도 통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해 보면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나 혼자만의 푸념’이 아닌가 후회가 된다. 
물에 주걱을 적셔 가면서 밥을 푸면 수월하게 밥을 푸는 방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는 물속에 떨어지는 쌀밥태기가 아까워 가급적 물을 안 적시고 밥을 푼다. “화를 내려면 차라리 봉사하러 나오지 말았어야지…”하고 후회하는 마음이 생긴다. 
‘식사는 드실 만큼 충분히 드십시오.’  ‘그러나 버리지는 마십시오.’
식당 곳곳에 큰 글씨, 작은 글씨, 예쁜 색동 글씨로 써놓고 아무리 말로 강조해도 소용이 없다. 눈뜨고 지켜도 밥이 남으면 국에 말아서 어느 틈엔가 쓰레기통에 몰래 버리고 나간다.
그걸 보면 쫓아가서 “내일부터 당장 나오지 말라”하고 싶지만 못 본체 하고 참아야 한다.
그러려니 하고 꾹꾹 참아내야 한다.
점심을 거르는 어르신들에게 점심 한 끼라도 대접한다는 심정으로 봉사하면서 ‘장로’라는 내가 참지 못하고 어르신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으니 나는 참 못된 사람인 듯하다.   

     학산면 매월리
  전 한국일보 기자
  5·18광주민중항쟁 관련
     강제해직 (민주유공자 포상)
  전 무등일보 주필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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